세월, 그 설렘과 함께 흐르다

by 김순옥

세월, 그 설렘과 함께 흐르다


<전국 유아인성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25년의 긴 세월을 함께 걸어온 소중한 인연들. 30대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풋풋했던 첫 만남부터 희끗한 머리카락을 서로 바라보는 지금까지, 우리는 늘 같은 곳을 향하며 젊은 날의 추억을 공유해 왔다. 기쁨과 보람, 때로는 힘겨웠던 순간들 조차 함께였기에 더욱 깊고 단단해진 우정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없이 빛나고 있다.


며칠 전, 특별히 내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 경주 보문에서 만남을 가졌다. 울산, 부산, 양산, 포항, 김해 그리고 멀리 경기도 까지, 각처에서 달려와 주신 원장님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반가움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마주 앉아 따뜻한 점심을 함께 나누고 향긋한 차도 마셨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에서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흘러 과거의 눈부셨던 순간들로 향했다. 대한민국 유아교육의 미래를 뜨겁게 고민하며 밤새 토론했던 열정, 더 나은 교육을 갈망하며 몬테소리, 피아제, 발도르포,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을 찾아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세계 곳곳을 누볐던 우리의 젊은 날들은 그 자체로 빛나는 훈장이었다.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했던 순수한 열정들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가슴 벅찬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러다, 현실로 돌아왔다. 유쾌한 젊은 원장님 한 분이 슬그머니 천 원짜리 두 장을 식탁자 위에 놓으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돈이 이것밖에 없어예, 손주 자랑 좀 할라고예.”


우리는 5만 원이 아니면 안 된다고 장난스럽게 옥신각신하였다. 그러자 누군가가,

“요새 얼라 한 번 볼라면 하늘의 별 따기인데 보는 사람이 5만 원 내고 봐야지요.”


한 원장님이 너스레를 떨며 휴대폰을 열었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은 다름 아닌 손주 자랑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마치 깊이 숨겨둔 보물을 꺼내 보이는 양, 조심스레 내민 액정 안에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의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흐뭇한 미소를 짓는 얼굴 위로, 어느덧 세월의 흔적이 서려있었다.

시간이 흘렀음을 실감 나게 했다.


이날, 모든 원장님들이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앞다투어 손주 사진을 들이밀었다. 뱃속의 태아 초음파 사진부터 갓 걸음마를 뗀 아기 사진, 심지어 지금은 자라서 법대에 입학했다는 대학생 손주 사진까지, 연령과 종류를 불문한 자랑이 이어졌다.


한때는 유아 교육만이 전부였던 우리는 어느새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날리며 손주자랑에 여념이 없는 보통의 할머니로 변해 있었다.


“아,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구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우리 단체의 청일점 회장이 수년간 적립해 온 회비를 각자에게 목돈으로 듬뿍 나누어 주었다.


“ 우리가 앞으로 외국여행은 더 가겠습니껴? 건강도 챙겨야 되니, 인자부터는 가까운 국내 여행이나 다닙시더.”


그 긴 여정 동안 맺어진 우리는 교육이라는 소중한 연결고리가 있었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동행을 지속할 수 있었다. 때로는 동료로서, 때로는 인생의 선배이자 친구로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들. 함께 웃고 울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흘러간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는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날, 더욱 아름다운 내일의 삶을 약속했다.


“인생은 미완성 교향곡과 같다.”

는 말처럼 흐르는 세월을 아쉬워 하기보다, 이제 펼쳐질 다음 악장이 아름다운 연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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