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안부의 아쉬움
며칠 전 오후, 휴대폰 너머로 잊고 지내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30여 년 전 우리 가족이 농장을 하던 곳의 이장님이었다. 내가 의회에 근무할 때 업무로 가끔 소통하였으니 3년 만인 것 같다.
"안녕하세요? 잘 계시지요?"
"예, 이장님."
늘 그렇듯이 정겨운 인사에 이어 좋아했던 지인의 근황을 물어봤다. 우리가 진영단감 농사일을 할 때, 필요한 일손을 수소문해 마련해 주었고, 이른 시간에 갈 때는 농촌에서 귀한 굵은 멸치를 듬뿍 넣은 구수한 시래기된장국을 준비해 주시던 따뜻한 분이다.
"범이 엄마, 아버지는 건강하시지요?”
"두 분 다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예?”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우리 집 앞에 돼지 농장하시던 아저씨는요?"
"그 분도요......"
하는 말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진작 한 번 찾아뵐 걸’ 하는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미루었던 만남들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에 ' 이럴 수가'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날 밤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이불을 뒤척이며 생각했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게 우리네 삶이구나.' 사랑하는 이들과의 시간은 영원할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바람처럼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문득,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인,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 일이다."라는 가르침을 떠올렸다.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한 여고친구 세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번개팅할래?"
망설임 없는 답장과 함께 우리는 휴양림에서 1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오랜만의 만남에 설렘이 앞섰다. 음식은 대구에 사는 윤희가 맡겠다고 했다. 숙소는 포항에 있는 경아가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흔쾌히 나서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부분들을 채워나가니 흐뭇함과 훈훈한 마음이었다.
드디어, 금오산 자연휴양림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진녹색의 나뭇잎들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우거진 숲은 생명력으로 가득했고 들려오는 청량한 물소리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맑게 씻어주는 듯했다. 곱게 물든 산딸기들이 나무 사이사이로 얼굴을 내밀었고 파란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도시의 번잡함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숨 쉬는 것 만으로 충분히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저녁 준비는 친구들이 맡아서, 나는 아침식사와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다. 소고기와 함께 종희가 가져온 집에서 기른 싱싱한 무순, 그리고 야채와 과일 등 한상이 차려졌다. 푸짐하게 먹고 같이 누워서 어둑해진 창문 밖의 풍경을 보았다. 멀리서 깜빡이는 작은 별들, 숲 속의 서늘한 바람. 두런두런 옛날이야기, 은사님 소식....
내 젊은 시절의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정 행복했다.
“우리 좀 더 자주 만나자”라고 약속하면서 소중한 짧은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고맙다. 사랑한다. 네가 있어서 너무 좋다.”
서로에게 속삭였다. 미루지 않은 안부가 준 행복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