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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Mar 31. 2024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목디스크와 불안장애 공황장애

오늘 글은 여러분이 읽다가 숨이 턱턱 막힐지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답답하고 불안했던 시기에 일 들이다.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2021년 봄, 그러니까 내가 서른한 살 때였다.

요가지도자과정을 시작했을 때인데, 거의 매일 저녁 두 시간씩 수련했다.

그리고 토요일은 이론 수업을 받았다. 너무 좋아하는 취미였고 한 단계 나아가고 싶었다. 회사 다니면서 무리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하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몸도 따라주지 않고, 일도 바빠지기 시작해서 당황했고 결국에는 어느 것 하나 매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매일 수련을 했지만 몸은 점점 굳어갔다. 


한편,  회사는 봄가을이 제일 바쁘다. 늦게 끝나는 날도 생기고, 주말에도 한 번씩 출근하는 일정들이 추가되기 시작한다.

오늘, 내일, 이번주, 다음 주 계획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그리고 몰려온 갖가지 불안한 생각들..

몸은 점점 피곤하고 힘들어지는데 포기하는 패배자가 되기 싫었다. 그렇게 마지못해 하다 보니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올라왔다.


"요가가 자신 없어졌어 즐겁지 않아"

"이러다간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것 같아"

"나는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까"

"30대가 되었는데도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남들은 이미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아등바등거리고 있어"

.

.

 한번 올라온 부정적인 감정은 더 많은 어려운 현실을 끌어들이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끊임 없이하자, 그동안 외면했던 묵혀놓은 문제들과 책임의 상황들이 연달아 몰려오기 시작했다. 투자를 했던 일이 망하기 일보직전이었고, (결국 망했다) 당시 남자친구와도 곪을 대로 곪은 상태였다. 온갖 이야기를 들먹거리고 응어리들을 쏟아내며 싸웠다. 엄한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자기 보고 푼다고 했다. 내 입장에서는 그 사람도 내 스트레스 원인 중에 하나였다. 나는 점점 더 예민해져 갔다.


 그리고 얼만 전에 남동생이 맡아달라고 했던 고양이 두 마리가 나의 책임감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중 한 마리는 중성화 수술을 시키지 못했었다. 수컷 고양이였는데 밤마다 암컷을 찾아 울었다. 당장은 고양이가 장염으로 아픈 상태라 중성화수술을 못 시키는 상황이 이었다. 그때는 고양이에 대해 잘 몰랐을 때라 하나부터 열까지 공부도 해가고 있었다.


왜 사람은 바쁠 때 우장창 바쁜 걸까. 혹시 이런 건 아닐까? 마음속으로 '너무 바빠서 힘들다'라고 외치니까 '오호라~ 바빠서 힘든 일을 찾는구나?' 하고 내 앞에 계속 바쁜 일을 갖다 주는 것 같다. 그때 나는 하루에 커피를 다섯 잔 이상 마셨었다. 많이 마실수록 밤에 잠을 자기가 어렵지만 '운동하고 몸이 힘들면 괜찮을 거야' 하고 계속 마셨다. 그래야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버티던 어느 날, 어깨와 목에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근육통이 생겼다. 고개도 안 돌아가고 뭔가 불균형이 생기면서 팔에 힘이 안 들어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먹어도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목 주변에서 박동 소리가 너무 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고.. 나의 온몸 전체가 극도의 긴장, 경련 상태가 되고 말았다. 숨 한번 게 쉬는 것도 안될 상태가 되었다. 그러면 심장은 더욱더 빨리 뛰고 숨이 가빴다. 간신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은 계단에서 발을 접질렸다. 아파서 울었겠지만 그때 정말 오랜만에 울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났다.


'나보고 뭘 어쩌라고 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저앉아 점점 일이 꼬여간다는 걸 체감했다. 고작 발목 삐끗 한걸 가지고 그런다고? 할 수 도 있다. 나는 그만큼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발은 퉁퉁 부었고 정형외과에서 반깁스를 했다. 몸이 이 모양 이 꼴이니 요가과정을 제대로 따라가기가 더 버거워졌다.


 나의 판단은 이랬다. 목에 이상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그래서 몸에 컨디션이 안 좋기 때문이라고.  큰 정형외과를 찾았고 경추 MRI를 찍어봤다. 이전에 허리디스크가 약간 터져서 고생했었는데 그때보다 더 심하게 아프니까, 분명 더 심각한 상태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약간의 디스크 탈출이 있지만 신경을 심하게 누를 정도는 아니에요 약  드릴게요."

"선생님.. 약 지금도 먹고 있어요, 제가 허리디스크 때문에 전에 통증이 있어봤는데 그때보다 훨씬 심하게 아파요...  팔도 분적으로 마비되는 것 같고 힘도 빠져요..  혹시 다른 곳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기본 동작으로 보는 간단 테스트들을 해보고 갸우뚱하셨다.

"일단은.... 왼쪽 날개뼈 주변부힘을 못 네요? 불균형이 있기는 한데.. 근육이 굳어서 그럴 수 있어요 , 근전도 검사를 해보고 다시 한번 얘기해 봅시다."


렇게 근전도 검사까지 했다. 왼쪽 등과 팔 근육에 약간의 불균형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그 정도는 엄청 심각한 건 아니라고 했다. 더 심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불편함을 못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운동하면 좋아진다고 한다. 내 간절함을 눈빛으로 읽었는지 의사는 그럼 소견 써를 하나 써줄 테니 대학병원 신경과로 가보라고 한다. 상완신경총에 염증이나 다른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때까지 일상생활을 간신히 붙들고 있던 나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느낌을 받았다. 지쳐갔다.

먼저 요가과정을 그만두기로 했다. 마지막 실기 테스트만이 남은 상황에서 원장님은 너무 안타까워했다. 세 번의 설득에도 나는 결국 중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출근을 하면 1분도 가만히 앉아있기 어려웠다. 숨이 너무 차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내가 그대로 일어나 열흘간 휴가를 내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휴가를 받았다.


그렇게 대학병원에 가서 상완신경총 CT촬영도 했다. 결과는 '이상 없음'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휴가가 끝나면 회사도 복귀해야 하는데, 도대체 왜 이런 걸까..


 어느 날 남동생에게 카톡으로 사진이 한 장 날아왔다. 나무위키 - 공황장애 설명 링크였다.

엄마에게 그간의 일들을 전해 들었는지 누나 증상이 지금 이거랑 똑같은 것 같다고 한다.

 한참을 검색하며 찾아보았다. 뭔가 잘 아는 걸 놓친 기분이랄까?  이상했다. 생각해 보면 그간 내 마음 상태는 너무 불안했다.


 걱정돼서 찾아온 친구에게 불안해하며 손이 떨린다고 좀 잡아달라고 하기도 했다. 밤에 이유 모를 두려움에 울면서 숨이 막히기도 했다. 새벽 3시, 4엄마에게 전화해서 죽을 같다고 숨이 안 쉬어진다고 울기도 했다. 잠을 못 자니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가? 정말 마음에 문제일까?' 하나하나 상황을 대입해서 돌아보았다. 아,, 정말 불안함 자체가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맡겠다고 나섰던 집에 고양이들을 남동생에게 다시 보냈다. 동생이 바빠서 고민하길래 내가 맡겠다 나섰던 책임감이 막중했다. 그렇게 다시 보내기로 결정을 하고 보내는 날 어찌나 울었는지. 책임지지 못한 죄책감은 오래갔고, 그 일은 훗날 내가 길냥이에게 관심을 가지게 했다.  그런 마음은 다시 행동하게 했고  지금의 길냥이 출신 깜이, 사랑이 형제와 가족의 연이 되기도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대학병원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나는 기까지 오게 된 과정과 지금의 증상, 심적으로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뒤죽박죽 늘어놓았다. 의사는 내가 보이는 모습들은 불안장애 증상이라고 했다. 심신이 지치고 너무 과부하가 걸리게 되거나 특정 불안한 상황에서만 심장 박동이 매우 빨라지면서 과호흡이 오고, 심하면 기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는 기절까지는 아니지만 감정이 너무 격해지면서 과호흡이 왔었다.  그리고 스스로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이 바빠졌고, 무리하게 요가 과정을 하다 포기했고, 남자친구와의 상태, 투자가 꼬여 불안했던 일, 엄마 일을 도와야 했던 책임감.. 이런 것들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의사는 이런 증상은 본인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상황이 해결되면 대부분 좋아진다고 했다. 일이 과도했으면 일을 줄이고, 휴식이 없었으면 휴식을 가지라고 했다. 그리고 과도한 책임감은 좀 내려놓아야지만 쉴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시간을 가지며 휴식하는 게 당연한 거라는, 편안하게 쉴 권리가 있다는 말은 와닿았다. 왜냐면 난 최근에 휴식을 취한 기억이 없었다.


 어쩌면 평소 알고 있는 쉬운 답이지만 그 순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지금 나와 굉장히 먼 이야기. 결론은 난 지금 상황에서 변화를 원했다. 상담이 끝나고 약을 처방받았다. 앞으로 내가 변화하는 데 있어서  정신적으로 이겨낼 힘이 생기게끔 도와주는 거라고 설명했다.

 

 참 신기하게도 약을 먹고 딱 5분 정도 눈을 감고 있으면 바로 잠이 온다. 아니 잠들었다. 그리고 눈뜨면 아침이었다. 어찌 됐든 그렇게 잠을 자니까 몸이 그래도 회복되는 걸 느꼈다.

다만 불안한 상태에서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 잠들기 때문에 부작용으로 악몽이 있을 수 있다고 했었다.

악몽?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진짜 웃기게도 악몽을 계속 꿨다. 전쟁터 같은 곳에서 격전을 벌이는 꿈, 어떤 나쁜 존재가 공격하는 꿈, 쫓기는 꿈, 심장은 계속 빨리 뛰는데 잠들게 해서 그럴까? 그래도 일단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다.




 회사에 복귀하고 나서 얼마간 걸어서 출근해 보기로 했다. 걸으면서 안 좋은 생각을 떨쳐내자 싶었다.

그렇게 정신이 좀 안정되면서 하나하나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 가기 시작했다. 청소를 하고, 홈요가를 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일에도 다시 집중했다.

목디스크 관련 통증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약을 먹고 휴식해야 낫는데, 휴식을 할 수 없어서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받아들이는 마음먹으니 그제야 정형외과 약도 효과가 나기 시작했다.


불안을 낮춰준다는 약은 너무 졸렸다. 약 먹는 기간에는 과격한 운동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해서 과한 운동을 피했더니 살이 좀 쪘다. 그렇게 6개월가량 약을 먹었었다. 점점 양을 줄여갔어서 약 중단 후에 크게 증상이 올라온 적은 없다. 약간 남아있는 마음 한 편의 불안한 마음은 자기 전 수면영양제로 대신하고 지냈다.


나는 나를 몰아쳐 마음의 한계를 확인했다. 그건 어쩌면 또 하나의 족쇄다. 한 번 경험한 일은 트라우마같이 남는다. 비슷한 징조가 보이면 경계를 하게 된다. 비슷한 느낌, 상태, 감정은 그 시기의 어떤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지금은 3년이 지났다. 경계선이 있었다고 한다면 나는 경계선을 지나 아래로 한번 떨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올라왔다. 그러나 결코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하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예민해서 힘든 게 아니다. 힘들어서 예민해진 거다. 나는 살면서 불편한 마음을 이유를 알기 위해 예민해졌고 지금도 알아가는 중이다.

나에겐 예민함이 필요했다.  


뭐든 다 소화하고 싶어서 무작정 다 하겠다고 떠안던 나는, 사실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혹사시켰다. 그 간단한 사실을 몰랐기에 이렇게 큰 경험을 통해서 이제야 자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 경험이 아주 괴롭지는 않다. 지금에 내가 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지금도 무작정 오는 대로 몽땅 소화하려고만 한다면 나를 혹사시키게 되고 또 '과부하'가 올 수 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점을 할고 그 안에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머리에서는 "나 다 할 수 있어, 뭐든지 책임감 있게 해내는 사람이라고!"

마음은 "아니 너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마음에도 없는 걸 억지로 하고 있어."

결국 마음에 없는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두렵다면 왜 두려운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누군가의 질타라던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타인의 실망감이 미안해서일지도 모른다.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대부분 머리가 시킨 일을 할 때가 많다.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를 무시하고 억지로 해나간다면 언젠가 알아차릴만한 일이 생길 것이다.

욕심이 있었고, 다 잘하고 싶었고, 두려움이 올라와도 무시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3년이 지난 지금은 나는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여전히 나다. 단지 좀 덜 하더라도, 남들이 욕하더라도, 그 사실마저도 인정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럴 때 내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우면 안 된다. 나에게 너그러워 지려고 노력하고있다. 가지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이 답답할 땐 방구석에 숨으며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밖에 나가 햇빛을 받고 걷다 보면 세상에는 그래도 행복이 있다는 게 믿어진다.


매 순간 선택에 길목에서 빛을 따라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 자체만으로 빛이나 주변까지 밝히는 존재가 되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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