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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pr 23. 2021

너 사업 망해봤어? 난 망해봤다.

스마트 스토어에서 유튜브까지

28살에 사업을 말아먹다.


작년 10월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사업 아이템은 바로 ‘포스터 사업이었다. 인터스텔라의 명장면이 생각난다. 나는  주인공이 되어 사업 아이템을 선정한 ‘에게 “하지 , 안돼...  ...” 이렇게 외치고 싶다.


이때 당시 스마트 스토어 열풍이 불어 너도나도  스마트 스토어를 시작하던 때였다. 나도 물론  후발주자였다.


나는 그래도 사업가라는 명색에 맞게 분당 서현역 근처에 있는 작은 소호사무실 하나를 빌렸다. 이곳에서 나는  성공하리라는 마음을 먹고 사업자등록증도 태어나 처음으로 내보고 통신판매업까지 등록을 마쳤다.


사업명은 ‘올리샵’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했을  홈스테이 강아지 이름이 올리버라 올리샵이라 지었다.


사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갑자기 원인모를 왼쪽 다리의 인대 파열로 인해   동안 목발 생활을 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대만 파열된  아니라 나의 사업도 파열되고 있었다.


깁스를 한 채로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드디어 나의 사업 아이템이 중국에서부터  건너왔다. 보자마자  정도면 사람들이 구매를   같다는 생각에 대량 구매를 하였다. 나의 홈페이지에 올릴 상세페이지도 만들고 돈방석에 앉을 생각에 들떠있었다.


택배용 봉투, 지관통(포스터를 보관하는 ), 포장용 스티커  물건을 팔기 위한 아이템 등을 구매하였다. 드디어 나의 야심작 빈티지 포스터를 스마트 스토어에 개시했다.


결과는???

생각과는 너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루에 10장을 파는 것이 나의 첫 목표였는데 10장이 아니라 1장도 팔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물건은 인터넷에 빈티지 포스터를 검색하면 40페이지 너머에 있었다.


빈티지 포스터를 사겠다고 40페이지까지 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방법은 키워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절박한 심정으로 크몽에서 나를 도와줄 전문가  분을 모셨는데 알고 보니 이분도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냥 나보다 조금   아는 분이었을 .


그렇게 나의 통장잔고는 마이너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라, 이게 아닌데...” 나의 거창했던 계획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창피했다. 사업하려고 회사를 나왔다고 주변에 말을 했는데 사업이 망해가니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물론, 내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원래 사람들은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픈 .


“이대론 무너질 수 없지”


나는 이번엔 빈티지 스티커를 팔기로 결심한다. 나는 심슨을 좋아하므로 심슨 스티커를 중국 사이트에서 구매를 하였다. 물건이 왔다. 사진과는 정말 달랐다.


 사진상으로는 심슨의 피부색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실제로 받아보니 무슨 방사능에 오염이  심슨이 왔다.


 심슨 피부색이 형광색이었나 싶었다. 보자마자 이걸 팔면 나는 사람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을게 뻔했다. 환불도 불가능했다. 젠장.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나눠줄 수도 없었다. 친구에게 이거 가져가도 된다고 했지만 아무도 가져간 친구가 없었다.


아직도 집에 있다. 스티커와 포스터만 보면 PTSD(외상  스트레스 장애) 온다.


물건은 안 팔려 아니 팔 수도 없고, 사무실 임대료는 계속 나가 더 이상 나는 버티다간 통장잔고가 제로가 될 것이라는 미래를 보고 사업을 접기로 마음먹고 사무실을 뺐다.


 통장잔고가 제로가 되는 것은 괜찮았지만 남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분명 “, 그럴  알았어라는 말을  테니 말이다.


통장잔고도 그렇고 자존감도 제로가 되어가고 있었다. 망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는 것을..


구직사이트를 들어가 봤다.

젠장... 회사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은 죽었다 깨나도 없었지만 미래가 너무 불안했다. 어느덧 나는 29살 아홉수를 달리고 있었으니깐 말이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취업을 하여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나만 제자리걸음 아니 빽스탭을 하고 있으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컸다.


나는 이대로 무너질 수 없었다.

다음 도전은 요리 유튜브였다. 회사 다닐  나의 별명은 ‘개복치였다. 몸이 약해 과장님이 지어주신 별명이다. 그래서 개복치라는 이름을 가지고 요리 유튜브를 시작하였다.


결과는..? 아무도 보지 않았다. 조회수가 1이라도 있었으면 그 1을 위해 더 노력했을 텐데 1도 안 나오고 내가 봐도 내 영상이 재미도 없고 전문적이지도 않았다.


이거 이대로 가다간 시간만 다잡아먹고 서른 살이  것만 같았다. 빠르게 나는 다른 주제로 갈아탔다.


다음 도전은 명상 유튜브였다. 이건 그나마 조회수가 1 이상은 나왔다. 그래서 초반에는 재밌게 했다. 하지만 나만의 음악이 아니었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경쟁이 심했다.


저작권 문제가 있어 아무 음악이나 가져다 영상을 만들 수도 없었다. 독창성이 없어 이것도 크게 성공할 자신이 없었다.  이상 삽질은 멈추고 싶었다.


이미 자존감은 땅바닥 아니 내핵(지구 내부구조의 맨 끝)까지 떨어져 있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올라가기엔 너무 멀리 와있었다.


어느 날

친한 후배에게 지금 이 상황이 너무 힘들다고 말을 했는데 그 후배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이 고통은 나중에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함이야” 이것도 못 버티면 되겠냐고..


나는 머리에 뿅망치 한 대를 맞은 기분이었다.


맞다.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버텨야   사람이   있다. 그래서 아직 인생 포기는  했다. 남들보다 느려도 앞으로 가겠다고..


여러분들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죽기 전까지는 희망을 잃지 말자.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의 필명은 행복전도사이다.   


나의 인생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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