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은 공공기관에서 예산 집행과 회계 마감으로 인해 가장 바쁜 시기다. 그런데 오래간만에 맡고 있는 업무의 회계처리가 조금 일찍 마무리되어 처음으로 여유로운 12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B팀 직원이 병가를 내면서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A팀에서 근무하던 나에게 내일부터 B팀에서 일을 하라는 지시였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1년 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B팀에서 A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정기 인사발령으로 인력 문제가 생겨 B팀에서 한 명을 A팀으로 보내야 했고 그렇게 보내져야 했던 사람이 나였다. 출근도 하기 전에 모든 배치가 결정되어 있었다. 팀 변경에 대한 사전 협의는커녕 이유를 설명받을 기회조차 없었다. 나는 B팀에서 A팀으로 팀 배치가 바뀌는 줄도 몰랐던 그 전날까지도, B팀이 어려운 상황이니 업무를 더 하겠다고 팀 선임에게 먼저 말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부서에서는 나를 A팀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이제 와서 B팀의 공백을 땜방하라는 그 태도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A팀장님께 이번 배치가 나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 솔직히 이야기했다. A팀장님 역시 이런 조치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에는 공감했지만, 부서 차원에서 과장님이 이미 결정한 사항이니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B팀 상황이 좋지 않으니 도와줘야 한다는 이유와 과장님이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지시한 것이고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거라며 나를 설득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가기 싫다는 정도였지만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부담 없는 업무"라면, 그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고 결국 시간과 노력의 문제일 뿐이다. 정말로 나를 신뢰해서 맡기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가장 편리한 선택인 것인지 오히려 의문과 반감을 키웠다. 나는 굉장히 조직 친화적인 사람이다. 여태까지 일이 맡겨지면 군말 없이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B 팀장님은 업무 재배치 문제에 대해 적절한 과정과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 먼저 팀원들에게 의견을 묻고, 업무 재배치가 가능한지 1차적으로 확인한 뒤, 나와 A 팀장님께 의사를 전달하고 나서 과장님과 상의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조율 없이, 단순히 “병가 낸 직원이 안쓰럽다”는 감정만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B팀장님은 본인이 선택한 팀원들에게 어떠한 상황도 공유하지 않았다. 나와 A팀장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과장님을 통해서만 의견을 전달했다. B팀장님의 일련의 행동들은 팀원을 믿지 못한다는 태도의 반영이었고 나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강제적인 명령이었다.
어떤 일이든 명확한 이유와 상호 간의 신뢰가 있어야 하며, 특히 개인에게 무리한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이라면 그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본적인 배려조차 느낄 수 없었다. 조직은 개인의 노력 위에 만들어진다. 그 개인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선 안 된다.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사람을 도구처럼 대하는 태도로는 오래 함께할 수 없다. 필요할 때만 찾아와 "신뢰한다"는 말로 포장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신뢰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에서는 나는 대치하는 과정에서 "못된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과장님은 B팀장이 저렇게 일하다 쓰러지면 어떡하냐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표현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상황은 본인들이 자초한 일이다. 팀장은 단순히 많은 일을 스스로 해내는 것만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다. 직원이 협력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조율하는 것 또한 팀장의 역할이다. 책임감과 배려가 없는 구조는 구성원을 지치게 하고, 관계를 무너뜨린다. 결국 조직은 균열을 키우며, 붕괴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