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화. 인사발령

by 리틀래빗

연간 인사계획에 따라 정기인사발령은 보통 1월과 7월 두 번 이뤄지는데 발령 나기 15일 전쯤, 장기근무(지자체마다 기간은 제각기 다르다) 직원을 대상으로 인사발령 명단이 게시판에 올라온다. 발령 대상자는 자신이 어느 자리로 갈지, 혹은 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발령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팀 재배치나 업무 분장이 다시 될 가능성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2~3일간 고충 신청이나 전출 희망서를 작성할 시간이 주어지고, 인사위원회는 이를 검토해 최종 발령대상자 명단을 결정한다. 가끔 명단이 발표되기도 전에 "이제 옮길 때 되지 않았니?"라는 전화가 오기도 하는데, 대부분 그런 전화는 불면증에 시달리게 할 업무이거나 주말 출근과 야근이 옵션이 아닌 필수인 ‘만만치 않은’ 부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가겠습니다!"라고 답한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약속된 부서로 발령 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 험난한 부서로 보내지는 처지가 되곤 했다. 이쯤 되면 인사청탁을 허용하지 않는 인사팀의 청렴함에 감탄할 따름이다.

연차가 쌓이면 발령장 받는 순서를 보고 어느 정도 부서를 짐작할 수는 있는데, ‘아…이 줄이 아닌데…’ 눈앞에 펼쳐질 고난을 직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발령이 나면 대부분은 발령부서에 인사하러 가는데, 어떤 때에는 어찌나 업무분장을 재빠르게 해 놓았는지 가자마자 자리에 앉혀 놓고는 이것저것 와다다닥 처리하게 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처리한 업무들은 감사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업무 미숙으로 실수가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전임자의 인수인계는 저녁에 한두 시간 정도 짬을 내서 급하게 마무리된다. 그 이후는 온전히 내 몫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받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깝다. 그 전임자 역시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아 새로운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 시간 내에 쏟아내고 사라지는 전임자의 인수인계를 두고 동기들과 뒷담화를 나누곤 했지만, 이제는 부질없음을 깨닫고 인수인계에 대해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인수인계서가 없으면 내가 만들어서 쓰면 되고, 업무 폴더 정리가 엉망이어도 지우지만 않았으면 만족한다. 한두 시간이라도 시간을 내서 설명해 주는 전임자에게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어떻게 적응하고 해결할 수 있을지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물론 여전히 엉망인 부분에 대해선 동기들에게 입을 턴다. 이건 뒷담화가 아니라, 일종의 정보 공유다.


공무원의 업무는 창의적 발상을 요구하는 것보다 법과 지침에 따라 처리하는 일이 많다. 전임자가 남긴 공문을 순서대로 보면서 업무 흐름을 파악하면 되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다른 지역의 공무원들에게 연락하면 된다. 얼굴도 본 적 없는 동료들은 진심으로 친절하게 답변해 준다.

부서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그래도 발령 초기엔 빠르면 한두 달, 늦으면 넉 달 정도는 야근을 감수하면 되고, 민원인들의 불만과 욕도 받아내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연차가 쌓였음에도 민원응대는 순간순간 멘탈을 바사삭 무너지게 한다.


새로 전입한 부서에서 겨우 이틀 지났을까, 주민이 유선으로 OO사업이 어떻게 되고 있냐며 물었다. 솔직히 내용을 잘 몰라서, "확인하고 한 시간 뒤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는데, "여기 공무원 아니야? 이렇게 중요한 사업을 모를 수가 있냐!"며를 시작으로 이 XX들은 이게 문제라며 욕을 폭포처럼 쏟아내고는 끊었다. 알고 보니 다른 부서 사업이었다. 그렇다, 민원인은 어느 부서가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은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민원인의 날 선 말투에 순간 당황했다. “아니, 대체 몇 번을 돌려야 담당자랑 연결이 되는 겁니까? 왜 이 모양이야!”하면서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온갖 욕설을 들었다. 이 민원인은 이미 다섯 번이나 부서를 옮겨 다니다가 결국 내게까지 온 것이었다. 문제는 내가 그 여섯 번째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받은 건 이 민원인과의 첫 통화지만, 그는 이미 다섯 번의 실망과 분노를 쌓아온 상태였다. 사실 이런 일은 드물지 않다. 민원인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상대를 찾는 데 지쳐 있고, 그가 내뱉은 말과 감정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나는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억울하고 서럽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쌓이는 경험은 민원 방어력을 키워주니 최악은 아니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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