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의 나는, 취업에 번번이 실패했고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수십 장의 지원서를 내고도 면접 기회를 잡기 어려웠고, ‘아쉽게도’라는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속으로 ‘아쉬우면 뽑으면 될 거 아닌가!’ 하고 답답해했다.
당시 인문계는 졸업하자마자 치킨집. 이공계는 회사 다니다 퇴사하고 치킨집을 차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당시 취업시장은 위축되어 있었다.
뉴스에서는 노량진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원하는 자리에 앉으려고 새벽부터 줄을 서는 모습, 시간과 돈을 아끼려고 줄지어 길거리 컵밥을 먹는 모습을 자주 다뤘는데, 불확실한 미래와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열망이 겹치면서 공시열풍이 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나이는 계속 먹어가는데, 이룬 건 하나도 없으니 불안과 초조함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나도 공무원 시험이라도 봐야겠다 싶어 6개월 정도 문제집 몇 권을 사서 펼쳐보았다. 지방직, 국가직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시험을 쳤고 결과는 아쉽지 않은 점수로 불합격. 준비 없이 본 첫 시험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좌절감이 크지 않았다.
처참한 점수에도 노량진 학원가는 근처도 가지 않았다. 귀찮아서 계속 인강을 듣다가 졸리면 편안하게 잤다. 그나마 생산적인 일이라곤 자소서를 쓰는 척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공무원 준비생'이라는 소속감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 해 치른 시험에서 국가직 9급, 지방직 9급 합격 문자를 줄줄이 받았다. 예상 문제지에서 봤던 문제들이 시험에 많이 나왔고, 심지어 찍었던 문제마저 맞았다. 운칠기삼의 실사화였다.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시험을 본 것이지, 공무원을 꿈꾸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공무원의 꽃은 일반행정이라길래 일반행정을 보았고 단순히 국가직은 여기저기 지역을 옮겨가며 근무해야 하길래 포기했다. 지방직은 그 지역에서만 근무할 수 있다고 하길래 지방직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입직 후에 알게 된 사실은 ‘꽃’이라는 표현은 결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계약업무의 꽃이라 하면 흔히 공사용역을 떠올리는데, 이는 계약업무 중 가장 어려운 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 지역에서만 근무한다는 것은 인사 교류가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오는 사람이 있어야 갈 수 있는 법!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