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화. 그때 그만두었어야 했다.

by 리틀래빗

필기‧면접시험을 마치고, 다음 해 1월, 나는 동기들과 함께 발령장을 받았다. 식이 끝날 무렵 각 부서의 서무주임님들이 신규 발령자들을 데리러 왔고, 모두 아기새처럼 목을 빼고 부름을 기다리며 하나둘씩 자리를 찾아갔다. 서무는 부서 예산•결산, 성과관리, 주요 업무보고, 기타 타직원에 속하지 않는 업무 등등 여러 업무를 챙기는 쉽게 말해 엄마 같은 존재다.


서무주임님을 따라 사무실에 첫발을 들였던 그날은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보통 9~7급 직원은 주임, 6급 무보직은 계장, 보직을 부여받은 6급은 팀장, 5급은 과장, 4급은 국장으로 부르는데 인사하며 들어오는 나를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던 과장님의 얼굴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럴 만도 한 게 당시 공석이던 자리는 7급 중견급 직원이 하던 일이어서 업무의 난이도나 책임이 꽤 큰 편이었기 때문에 과장님은 당연히 7급 직원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내가 온 것이다.


팀 직원 중 한 명이 유독 나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은 네가 한 업무는 네가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던 나에게 환청이 들릴 정도로 스트레스였다. 심지어 전임자가 스트레스와 과로로 쓰러져 휴직에 들어간 상황이라 나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해줄 사람도 없었다.


첫날, 자리에 앉자마자 눈앞에 놓인 뭔지도 모르는 '심사결과 보고서'를 무지성으로 작성했다. 다음 날에는 다른 사업의 약정서를 만들었고, 그다음 날엔 다른 사업의 정산결과 보고서를 썼다. 한 달 동안 나는 거의 매일같이 야근을 하면서 문서 작업을 했다. 놀랍도록 끊임없이 다양한 일이 매일 주어졌다. 최저시급도 안 되는 건 당연했고 심지어 6개월간은 수습기간이라 초과근무 시간 수당도 받지 못했다. 경험이라는 추상적인 언어로 보상을 치환하며 열정을 강요당한 것이다. 열정페이를 운운하던 기업들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하였는데 공무원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수액을 맞으며 하루 12시간 이상을 사무실에서 보냈다.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동기들 중에서 나는 가장 많이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업무를 했고, 가장 많은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속았다. 누가 공무원이 할 일이 없다고 했냐? 공무원이 되면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앉아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공무원 다운" 단순하고 규칙적인 일을 하고 퇴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주변에 폭언을 일삼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런데 현실을 달랐다. 심지어 과장님은 부서 내의 또래 직원들과 나를 자주 비교하며 곰처럼 앉아서 일만 하지 말고 ㅇㅇ주임같이 여우처럼 행동하는 것이 예쁨 받는 법이라며 잔소리를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어쩔 수 없잖아! 업무량을 줄여주면서 그런 말이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자비없이 업무분장해 놓고 그게 할 소린가?

게다가 공무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며 ‘철밥통’이라는 인식 때문에,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너 말고 할 사람 많다”, “못 버티겠으면 때려치워라”는 식의 비난이 디폴트 값이었다. 모든 면에서 그만두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마땅히 재취업된 곳도 없고 그만둘 용기도 없어서 미련하게 꾸역꾸역 출근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몇몇의 천사 같은 선배 주임들의 덕분에 나는 빠르게 배워가며 강제로 성장하긴 했다. 그렇게 첫 발령 부서에서 2년을 근무했다. 그동안 팀장님과 과장님은 족히 네다섯번은 바뀌었다. 업무는 복잡 다난하고 감사받을 일은 더럽게 많으며, 승진 기회는 소름끼치게 적은 기피부서 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꿀자리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그 모든 경험들이 ‘나를 강하게 단련시킬 기회였다’고, ‘그때의 어려움들이 오히려 문제 해결 방식이나 책임감을 키우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그렇게 스스로 가스라이팅하며 여전히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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