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표
글을 재수정했다.
영화 플롯의 핵심은 원래 읽는 순서인 세로로 읽는 것이 아니라 가로로 시점을 바꾸었을 때 나타나는 진실이다. 이 영화를 보고 아이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했을 테니 난 다른 걸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세 번째 챕터
첫 번째 챕터에서는 사오리가 본인의 집에서 불이 난 건물을 보며 시작하였고, 두 번째 챕터에서는 호리 선생이 건물에 나와서 육교(혹은 고가) 위에서 건물을 보며 시작한다. 그러나 세 번째 챕터는 참 이상하게도 후시미 교장선생님의 면회 장면으로 시작한다. 첫 번째, 두 번째 챕터에서 그저 조연으로만 보였던, 그리고 두 아이의 스토리와 별개로 놓일 수 있는 그녀가 왜 세 번째 챕터의 오프닝을 담당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행동을 보면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누가 손녀를 죽음으로 내몰게 했는지에 대한 의심에 대해 그녀는 호리 선생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태도는 사건의 파편을 맞춰가는 이 영화의 결과와 정반대에 놓인다. 단순히 그녀의 역할이 시점의 퍼즐로 맞춰지는 사회의 단면을 불완전하게 만듦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두께를 두껍게 하려는 기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녀가 면회에 가서 남편에게 말하는 '과자 도둑의 이야기'의 속뜻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문제 자체를 없앰으로써 해소를 지향하는 의미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시점은 이 영화의 메인 줄거리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오프닝과 엔딩 그리고 세 번째 챕터에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동력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걸스바
동력에 답을 하기 전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영화 내내 걸스바를 이야기하던데 혹시 걸스바를 보았습니까? 아니 전소된 건물을 보았습니까?' 이 영화에서 정말 많은 도시 전경이 나오지만 오프닝을 포함해 세 시퀀스를 제외하곤 소화된 건물이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그 건물은 어디에 있던 것일까?
건물의 위치뿐 아니라 빌딩 안에 있었다는 걸스바의 행방도 묘연하다. 두 번째 챕터는 호리 선생과 그의 여자친구가 건물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육교(아마도.)로 향하며 시작한다. 육교에 도착할 때 그 커플은 불이 난 곳을 보았고, 시내에 나왔다가 선생님을 알아본 아이들은 선생이 걸스바에서 나왔다고 놀리며 도망간다. 호리는 일단 아이들 보고 들어가라고 하지만 불길은 너무나도 거세 온 마을을 주목시킨다. 자연스레 카메라는 길거리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걸스바에 일할 거 같은 여자들이 담요를 뒤집어 씌우고 거리로 나오는 장면이 있지만 그 여자들도 사고가 난 건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불이 난 건물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다.
분명히도 건물이 불에 탔고 걸스바가 탔다는 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리 선생이 나왔다는 걸스바 건물과 불이 난 걸스바 건물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 '걸스바'는 건물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어 마을의 기억에 대신하여 남는다. '불이 났다'라는 사건과 이 사건 피해 현장인 '걸스바'의 실체는 뒤섞여 있다.
부표
장소를 한 가문의 기억과 감정이 깃든 곳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고레에다의 장점을 되살려보자면 이 화재는 상당히 충격적이라고 볼 수가 있겠다. 단순히 불을 냈다는 사실보다 이 사건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한 무심한 행보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내에서 시점이 바뀌는 지점에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이 화재사건이다.
그의 전작을 되살려 이정표가 된 이유를 추론해 보자면 일단 사오리, 호리, 그리고 교장인 후시미 모두 가족을 잃었다는 것에서 묘한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가 있다. 각각 어머니, 남편, 손녀를 잃었다는 사실인데, 이것으로 일반화 시키기엔 비약이 있다. 셋 또한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살아갔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건물이 왜 이정표의 역할을 한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감독의 전작처럼 하나의 사건에 모두가 피해를 보았다면 (예를 들어 걸어도 걸어도에서의 장례식처럼) 화재사건의 기준점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불길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되려 간접적으로 모든 것이 불투명하게 파생되어 재생산된다. 화재사건에서 진범일 가능성이 큰 요리와 그런 요리의 증거를 숨기려던 미나토, 아이들로 인해 소문이 돌고 방화범이라고 의심받는 호리 선생, 화재 사건의 진범이냐고 몰아세우는 사오리. 하나의 사건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파생된 소문들을 가지고 확신하며 말한다.
이는 각자가 단편적인 시청각을 토대로 재생산하여 뻗어나가는 메인 스토의 성질과 묘하게 겹친다.
실체적인 물질이자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건물 화재'는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무형적인 학교의 사건을 시점으로 재현시키는 이 영화 플롯의 부표와 같은 형태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아니라 이야기의 한계선 같은 역할을 하는 부표라는 점이다. 두둥실 떠다니는 해변가의 부표 말이다. 이 부표는 바깥으로 뻗어나가려는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며 자연스레 이 화재를 본 사람들의 미래를 암시하게 만드는 예언적인 프롤로그 같은 성격을 지니게 된다. 당연히도 부표의 끝에서 시작된 사람들에게 이 부표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소문과도 같이. 성질은 소문, 형태는 부표인 서브플롯인 셈이다.
침묵과 사라짐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화재 사건과 관련되어 유일하게 그 사건에 발언하지 않았던 사람은 후시미 마키코 교장이다. 그녀가 그 화재를 보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녀는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다른 곳인 바닥을 본다. (챕터를 여는 세 명 중 유일하게 그녀의 시선에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점 쇼트가 없다.)
그녀가 보는 학교 바닥에는 늘 껌딱지가 있었다. 그녀가 껌을 떼도 매번 그 학교에서는 껌이 붙어 있다. 그리고 이는 학교 밖도 마찬가지이다. 그곳에는 더러운 물이 있다. 물은 계속 내려가지만 그 더러운 물은 당최 깨끗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의 마음에는 씻기지 않는 시커먼 죄책감이 달라붙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화재 사건 당시 다른 위치에서 시작하는데, 그녀가 사건 현장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요리의 화이어 스타터를 줍는다는 것이다. 요리에게 화이어 스타터가 어떤 의미인지 상기해 보면 이 시퀀스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그녀가 요리의 화이어 스타트를 주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는 필자가 보기에 오프닝을 열었던 세 명중에 가장 죽음에 근접한 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는 그녀가 건물의 처지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화재 현장을 보았지만 건물이 불에 탄 사실보다 걸스바에 집중하는 것처럼, 동네 사람들은 손녀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누가 진범인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 번째 챕터에서 화재 장면이 없이 시작한 이유는 이 지점에 있다. 그녀의 상황은 건물과 동일하다. 소문만 존재한다. 요리의 화이어 스타터를 줍는 장면은 사실상 화재가 난 건물과 중첩된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각본가와 감독은 단순히 두 실체의 중첩을 넘어 다른 것을 시도한다. 그것은 이야기의 방향성이다.
미나토가 후시미를 만났을 때를 상기해 보자. 미나토는 후시미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다. 후시미에게 고백하는 사실은 건물이 탔다는 사실이나, 손녀가 죽었다는 사실처럼 솔직하며 원초적인 사건의 전말이다. 그런 그에게 후시미는 호른을 가르쳐 주는데 미나토가 부는 소리와 후시미가 부는 소리는 화재 당시 건물을 향해 달려가는 소방서의 사이렌과 비슷하다. 이 소리는 사실상 누군가의 마음에 불이 난 것을 소화해달라는 구조요청이며 내 마음에 불이 났다는 것을 알리는 울부짖음이고, 누군가 듣길 바라는 속마음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서 오직 미나토에게만 구원의 기회를 준다.
어떻게 그 기회를 미나토에게 줄 수 있었을까?
메인 스토리가 사건에 대한 각자의 시선으로 보는 '진술'인 반면에 건물 내에 걸스바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교장인 후시미에 대한 이야기는 '진술'조차 없는 소문인 점에 주목하고 싶다. 특히나 후시미에 대해서는 소문에 대해 예측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나온다. 여기까지만 보면 후시미는 건물처럼 부표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세 번째 챕터에서 이전 두 챕터에서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이야기인 "두 아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세 번째 챕터가 후시미의 면회 장면을 먼저 보여준 이유는 그녀가 "관계"가 없는 건물이 아니라 사건에 "정리해야 할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후시미는 자신에 대한 소문과 이에 예측할 수밖에 없는 몇몇 행동들을 하지만 침묵함으로써 그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자연스레 미나토의 관계에 대한 현재 상황과 겹쳐 보인다. 그러나 속마음을 들어줄 청자가 존재하는지의 문제로 인해 자연스레 미나토에게 기회로 넘어간다. 후시미가 건물과 비슷하면서 다른 이유 그리고 세 번째 챕터가 다른 챕터와 달리 후시미로 시작하여 앞으로 전진하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후시미와 미나토의 관계는 닮은 듯 다르기에, 그녀는 미나토에게 디딤돌이 되고 미나토에게 자신의 행동을 대신하게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
영화는 이제 부표를 넘어 엔딩으로 향한다. 영화에서 변화하는 시점을 채택한 메인 스토리가 플롯을 통해 죄책감을 남긴다면 서브 스토리들은 메인 플롯의 동력으로서 영화 속 '소문이자 부표'처럼 붕붕 떠다닌다.
그렇기에 영화가 끝났을 때 이야기가 통과했던 부표들에 관해 물을 수밖에 없다.영원히 고정되어 있지도 않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흙탕물처럼. 그녀는 사라졌을까?
후시미의 마지막 시선, 특히 호른 장면이 유독 처량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