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잡러의 미술관
이제까지 공부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 강의를 준비하고 가르치는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정말 얼마 안 되는 액수와 맞바꿔도 참고했던 시간강사 자리였다. 그래도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이라 15년을 견디고 참았는데 막상 아이를 키우다 보니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만 해서는 안된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이상적인 일 즉 내가 원하는 일만 골라서 하기에는 내 나이도 육아도 현실도 모두 아니라고 말했으니까 말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고 학교에서 그런 기회를 얻기엔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기에 학교 밖으로 나와야 했다.
치과 매니저가 된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연이었다. 대학과 대학원 재학 중에도 학교에서만 일을 했고 졸업과 동시에 가르치는 일을 했던 내가 학교 밖 그것도 의료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건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은 원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지 않은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고 돈이 필요한 사람이 일자리를 구하듯 나 역시 필요에 의해 일자리를 구했을 뿐이었는데 기가 막히게도 나와 인연이 닿은 곳이 치과였다.
영어와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
그럭저럭 나다.
치과 경험 없는 사람도 가능.
그럼 또 나다.
하지만 도저히 머릿속으로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 일이었기에 선 듯 바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뭐 이멜이나 한 번 보내보자 했고 정말 너무 신속하게 연락이 왔다. 그쪽도 사람이 급했고 나 역시도 안정적인 수입이 급했으니 서로의 니드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치과 매니저 겸 강의를 뛰는 투잡러가 되었다.
치과 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내가 알지도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새로운 일들을 배우고 시작한다는 건 꽤 설레는 일이라 생각한다.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의학용어와 시술을 익히며 (아직도 갈길이 멀지만) 그저 이빨 이라고만 알고 불리던 녀석들이 나름 고유 숫자가 있고 단면마다 제각각 이름이 있다는 건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틀니나 크라운을 만들기 위에 본을 뜨는 과정은 흡사 미술에서 석고 몰드 뜨는 거와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 발치에 쓰이는 도구들은 마치 공구처럼 생기기까지 했다.
사람의 몸을 다루는 의학 기구가 공구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는 점은 사실 충격적이긴 했다. 차갑고 무식하게 보이는 이것들도 치아를 갈고 뽑고 쑤신다는 건 사실 오싹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러면서 궁금해졌다. 치과 진료에 관한 예술 작품을 남긴 사람이 있지 않을까? 뭐든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인간에게 치아란 생명 아닌가. 예술은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을 이야기하니 당연 치과치료에 관한 작품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았다. 정말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참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치과란 이런 곳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1700년대 Tim Bobbin에 의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대장장이가 발치를 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환자로 보이는 이는 온몸에 힘을 주고 인상이 찌그러진 상태로 입을 벌리고 있다. 대장장이는 커다란 펜치 (혹은 플라이어)로 이를 단단히 잡고 있는데 손을 보아하니 꽤 힘을 주고 있는 듯하다. 그 뒤에 보이는 이는 환자의 머리를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단단히 고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얼굴과는 너무 대조적인 표정을 짓고 있기에 악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만큼 작가는 알고 있는 듯하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의 고통이 동반하는 게 치통이라는 것 말이다.
하지만 Caravaggio의 발치 장면은 매우 고급스럽다. 빛의 대조를 매우 확고하게 표현하는 기술로 유명한 Caravaggio는 환자의 어깨를 드러내어 매우 밝은 색으로 만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를 집중하게 만든다. 훤하게 드러낸 살갗에서 눈을 조금 들어보니 입을 벌리고 있는 환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오른팔은 끈으로 묶여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왼손은 고통을 호소하듯 손을 올리며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고통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이는 발치 환자다. 그는 고개를 들어 치과 선생님을 향해 애걸복걸하고 있다.
환자에게서 눈을 돌려 의사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앞서 봤던 무식하고 악해 보이는 대장장이의 모습이 아니라 제대로 의학을 공부한 것처럼 보이는 의사는 고급스러운 옷과 모자로 자신의 신분을 과시한다. 테이블 위에는 발치와 치료를 위한 도구들이 놓여있고 주변 사람들은 그가 행하는 의료행위에 매료되어 있다. 불행하게도 아무도 발치 환자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 같진 않다.
Lucas van Leyden의 판화작품 역시 환자의 고통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환자는 다리를 웅크리고 두 손은 어쩔 줄 몰라하며 치료를 받고 있지만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머리를 붙잡은 체 진료를 한다. 역사적으로도 치과진료와 치통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작품으로 보여주니 재밌다는 생각을 해본다. 게다가 치통과 치과진료에 관한 작품들이 꽤 존재한다는 사실은 예술이 얼마나 인간의 삶 깊숙이 관여하고 있고 참견하고 있는지 보인다. 마치 인생의 모든 순간을 어떻게든 작품으로 남겨놓았다는 것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예술의 주제가 되고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는 노인분들이 많이 오신다. 대부분 이가 좋지 않아서 오시는데 제대로 식사를 하실 수 없어서 틀니나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러 오신다. 그분 중 한 분이 나를 붙잡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평생 치과가 너무 싫어서 젊을 땐 가지 않았어. 그러다가 나이 먹으니까 도저히 쓸 수가 없는 거야. 내가 70 다돼서 지금 이렇게 처음 치과 치료받는 거야. 너무 후회가 돼. 좀 더 젊을 때 잘 관리했으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을 텐데."
치과에는 정말 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아파서 안 되겠다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그때는 이미 많이 상태가 안 좋아진 상황이다. 물론 치과가 즐겁게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정말 나중에는 후회밖에 남지 않을 수 도 있기에 정기검진이 정말 너무 중요하다. 내 몸을 나 말고 누가 제대로 관리해 줄 수 있겠나. 하루 3번 식후 30분 후에 3분씩 칫솔질을 하라고 한다. 너무 세게 칫솔질하지 말고 치실은 매일 사용하고.... 그렇게 하면서 종종 치과를 찾는다면 정말 잘 관리를 하는 것이다.
Yue Minjun 은 자신의 얼굴을 모티브로 삼아 크게 웃고 있는 이들을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닌, 억지로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이들이 짓는 표정은 정말 겨우 살아있음을 담아낸다. 하지만, 그들이 크게 벌린 입에는 매우 가지런하고 화이트닝이 된 치아를 볼 수 있다. (물론 그게 매우 부자연스러운 틀니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말이다.) 저렇게 웃는 건 치아만큼은 자신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생각과 함께 글을 맺는다.
그리고...
사람의 길은 절대 내가 계획한 대로 흐르지 않기에...
물 흐르는 대로 당장 내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해 살다 보니 또 그게 꽤 나름 건강한 생각으로 이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의 삶에 이거 아니면 안 되는 건 없다. 어차피 하나만 붙들고 간다고 해도 다른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은 온다. 이게 아니면 저걸로 저것도 아니면 다른 걸로... 그렇게 가다 보면 삶은 성숙해지고 깊어지고 그 나름의 열매를 맺는다.
내가 예상했던 삶이 아니어도 삶은 살아지고, 그 삶 속에 또 내가 모르는 세상이 나를 더 여물게 만든다.
그래서 삶은 또 괜찮아진다.
어쩌다가 치과 매니저가 된 시간 강사는... 이제 미술 말고도 치과 진료에 관해 지식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