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잡러의 미술관
팬대믹이 막 시작했을 즈음 선물로 받았던 조 말론 캔들은 무섭고 우울하기만 했던 그 시기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럽고 고급스러운 순간이었다. 향초의 향은 그윽했고 고급스러웠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순간 내게 적어도 이 향초의 향만큼은 안전하고 날 위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에 하나라는 생각에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세련된 향을 느끼고 또 느꼈지만 켜지는 않았다.
나는 특별하고 기쁘고 즐거운 날에 이 소중한 선물의 심지에 불을 붙이겠노라 결심했고 그날은 분명 팬데믹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릴때즘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간간히 조 말론의 향을 맡으며 그 고급스러움이 주는 사치를 즐기며 상상했다. 언젠가 이 향초를 켜는 날이 오면, 나는 분명 남편과 와인 한잔 혹은 차 한잔 앞에 두고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매우 기념적인 행위로 이 초를 켜리라 상상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그 결심도 잊혀 향초의 존재는 내 책장 장식품이 되어 있었다. 2년 전 받았던 그때 선물 포장 그대로 말이다.
대학교 시절 툭하면 혼자 미술관에 가서 걷곤 했다. 미술관은 내게 교회 같은 곳이다. 물론 크리스천으로서 미술관이 교회 같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비유일까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지만, 역시 지금도 미술관은 내게 교회 같은 곳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적나라하게 혹은 은유적으로 표현된 인간의 희로애락이 미술관 안에 다 있고 위로와 가르침이 있다. 게다가 시각적 은혜와 가르침의 순간을 그 누구의 방해 없이 오롯이 나 혼자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미술관 교회의 가장 큰 장점이다. (난 얼마나 내성적인가)
Artemicia Gentileschi의 Judith and her maidservant 작품은 특히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서 미술관에 갈 때마다 꼭 들려 한참을 바라보던 작품 중 하나였다. Gentileschi는 Judith가 Holofernes의 목을 벤 이후, 즉 살인을 저지르고 뒷일을 수습하는 장면을 포착한 작품이다. 연약한 여인네의 모습이 아닌 굵은 팔에 들린 무거운 칼과 확신에 찬 얼굴 표정이 보인다. 작은 초 하나로 방을 밝혔지만, 그녀는 이내 손으로 빛을 가린다. 그 빛이 너무 밝아서인지 혹은 참혹한 살인 현장을 보는 것이 어려워서 손으로 가렸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 순간은 너무 비밀스럽고 절대 그 누구도 봐서는 안 되는 살인 현장이기에 밝은 빛이 그녀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매번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물었다. "그녀가 가리고자 했던 것은 촛불의 빛일까 아님 살인의 비밀일까?" 그게 무엇이던 그림이 갖는 상징성은 더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품는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Judith의 계획은 성공리에 마치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는 영웅적인 존재가 된다. 그런 영웅적인 존재를 Gentilesch는 몇 번에 걸쳐 그리고 또 그린다. 연약하지 않고 두려움에 차있지 않고 확신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도저히 빛이 가릴 수 없는 한 여인의 모습을 말이다.
어제 집에 퇴근하고 오니 집안이 뿌옇다. 고기 구운 냄새가 가득한걸 보니 남편과 아이의 저녁 메뉴가 고기였나 보다. 집안에 가득 밴 고기 구운 냄새는 내 방구석 구석에도 가득했다. 그리고 그때, 문득 나를 위로해주던 조 말론의 캔들이 생각이 났다. 절대 이 소중한 향초를 이따위 고기 냄새를 위해 사용할 목적은 아니었지만, 순간 조 말론 향초가 눈에 들어왔고 너무나 좋은 기회다 싶어 2년 넘게 묵혀둔 조 말론 향초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물론 심지에 불을 붙이기 전 다시 한번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그 향을 맡았다. 변함없이 향은 좋았다.
와인도 따뜻한 차도 없이 고기 냄새를 위해 켠 조 말론 캔들이었지만, 내 방은 어느새 고급스러운 냄새로 가득했다.
몇백 년 전 Gentileschi가 그렸던 여성상은 불의에 맞서는 용감하고 강인한 리더였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연약하고 무능한 여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Judith 안에 Gentileschi가 꿈꾸던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버티며 위대한 계획보단 오늘 하루의 작은 계획에 더 힘쓰는 나는 Gentileschi의 그림을 보며 졸면서 글을 쓴다. 내 삶에 Judith 만큼의 야심과 자신감이 묻어나진 않지만, 가정을 지키며 열심히 발버둥 치는 워킹맘의 방에 세련된 향이 채워졌음에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며 토닥거려본다.
좀 더 단호 하고 결의에 찬 아줌마의 모습으로 칼 대신 키보드와 물병을 하녀 대신 로봇 청소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