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면 뭐라도 될 줄 알았다.
정말 열심히 달리고 달려 여기까지 왔는데 삶은 내 생각과 노력보다 더한 것을 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더한 것이 아니라 완전 다른것을 원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모든 구색을 맞춰 세상이 원하는 가장 적합한 인간이 되기에는 너무 피곤하고 자신도 없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무언가가 되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무언가가 되지 않기로 했지만, 여전히 나는 글을 쓰고 미술관을 다닌다.
글을 쓴다는 건 생각과 감정을 잘 정리하는 일과 같다. 내 생각과 감정은 늘 그림을 통해 시각화된다. 그리고 그림과 내 삶을 함께 바라보자 위로가 된다. 내가 어떻게 느껴야 할지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감정선도 작가가 그린 그림에서 붓 자국이 알려준다. 그림은 내게 스승이 되어 매 순간 내가 느끼는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눠준다. 그래서 여전히 글을 쓰고 미술관을 다니는 이유다.
그런 내게 Chrystal Denise Gillon의 작품은 내 안의 정체된 공기를 매우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Psalms 139:14 vs. America--The Me that I Am Missing이라는 제목 작품속에는 한 여성이 나를 마주하고 있다. 여성은 백인의 눈을 가지고 있지만 온 몸은 검은 피부다. 그녀의 밑에는 마치 그림자처럼 만들어진 한 흑인 여성이 보인다. 이 두사람은 다른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듯 해 보이고 그들을 연결하는 미국 성조기는 매우 소중한 제스쳐로 감싸져 있다. 작가는 콜라쥬 작품 주변에 손글씨로 자신의 정체성을 글로 적어 내려간다.
그녀의 글과 그림은 미국에 여자로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주제로 만든 작품 같아보이지만 그녀가 인용한 시편 139장 14절의 말씀은 인종, 성별을 넘어서는 위로를 건낸다.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시편 139장의 다윗은 창조자 하나님을 찬양한다.
인간을 샅샅히 낱낱히 아시는 분.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다 살피시는 분.
인간의 행실을 다 알고 계신 분.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분.
그런 창조자가 나를 얼마나 오묘하고 놀랍게 만들었는지를 안다면, 우린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될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