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침한 골짜기에서 쉴만한 물가로

예수는 난민이었다

by MamaZ

초등학교 저학년 때로 기억한다. 담임 선생님은 북한 전단지를 주었다며 내게 집 근처 파출소에 가져다주라 했다. 선생님이 준 당시 삐라라고 불리던 종이를 받아 들고 주머니에 넣었지만 이내 두려움을 느꼈다. 시뻘건 글씨로 쓰인 무언가를 읽을 생각은 무서워서 하지도 못했다. 주머니 속 작은 종이는 마법이라도 부리는 듯 나를 공포에 몰아 넣었고 이내 나는 선생님께 무서워서 못 가져다주겠다고 말하고 책상 위에 올려놨다. 손끝으로 전단의 가장 끝의 머리를 집어서 말이다.


어느 날 나는 근무하는 병원에서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누군가를 만났다. 너무 낯선 말투였다. 그는 분명 한국말을 하고 있지만 억양과 사투리는 내가 아는 남한의 것이 아니었고 "우리 북한에서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그의 대화에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절대 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으로 온 북한 피난민이었다. 그의 첫 인상은 꽤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고생과 어려움이 얼굴에 남아있다.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너무 힘들어서 생긴 흔적 말이다.


몇 주에 걸쳐 여러 번 방문해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그분이 오셨고 처음 뵈었을 때보다 훨씬 젊어지셨다는 말씀을 드렸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빈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표정과 인자한 웃음 속에 평안함이 깃들어 있다.


그는 오늘 진료를 마치고 검은 소파에 끝에 걸터앉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니 너무나 아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렇게 좋은 병원으로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하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

그의 모습에 뭉클함을 느끼던 차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멋쩍게 말을 건다.


"제가 사실... 한 2년 동안 거지 생활을 했습니다. 정말 거지처럼 살았어요. 이를 관리한다는 거 아니 닦는 것 자체가 사치였지요. 그러다 보니 많이 망가졌는데 이렇게 미국에 와서 좋은 선생님 만나서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좋은 만남을 내게 선물해 주시니 너무나 너무나 감사합니다"


소파 끝에 겨우 걸터앉아 북한 사투리로 감사 기도를 드리는 그의 모습은 진심으로 우러나온 깊은 감사였다.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의 감사 기도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에게 사치라고 여겨졌던 일이 이제 현실에서 그 어떤 부담 없이 아픈 이를 치료할 수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기도가 되어 흘러나온다는 것. 그런 그를 맞이하는 것이 하나의 기쁨과 보람이 되었다.


그가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인상 좋은 그 환자가 왔다. 나는 그가 처음 왔을 때부터 참 인자하게 생긴 사람이라 생각됐다. 매우 다정다감한 말투로 우리 병원을 찾아온 그는 결국 그의 아내와 자식까지 데리고 와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딱 봐도 너무 어려 보이는 그의 아내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매번 남편은 아내의 옆을 지키며 통역을 한다. 아내에게 자식에게 너무 다정한 그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느끼던 차 그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묻자 아프가니스탄이라 했다.


아프가니스탄?이라고 다시 묻자 그는 말했다.

"저는 전쟁세대에 태어난 불우한 운명이지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를 결정하자 저는 미국으로 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제가 UN에서 일을 했는데 미국 정부와 관련된 일을 했거든요. 그래서 가족과 바로 미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어요. 옷만 입고 탈출을 했지요. 지금 나머지 가족은 아프가니스탄에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제 가족은 정말 많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과 아내를 살리려면 올 수밖에 없었어요. 미국은 기회의 나라니까요"


그제야 그가 왜 유창한 영어를 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 총명함이 가득한 그 눈빛도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살아야 했고 가족을 살려야 했으니까... 그의 대화 속에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잘 왔어요"라는 말과 함께 "환영해요"라고 말했다. 당장 이 나라에서 먹고사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일거란 걸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총명한 눈빛과 따뜻한 말투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분명 그는 이 땅에서 잘 견뎌내며 자리를 잡을 거란 확신도 들었다.



매우 흥미롭게도 예수는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피난민의 삶을 살게 되었다. 당시 왕이던 헤롯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겁을 먹는다. 그리고 예수를 찾아 죽이려 계획하고 베들레헴과 그 근처에 있는 아기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명한다. 그때 하나님의 천사 요셉에게 아기 예수를 데리고 멀리 떨어진 이집트에 가서 잠시 몸을 피하라고 말해준다. 예수는 탄생과 동시에 죽음을 마주해야 했던 것이다. 그 어린아이를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땅에 가서 지낸 마리아와 요셉은 또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버텨냈고 결국 때가 되자 그들의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르네상스의 시대의 영감이 되어준 작가 Giotto는 중세시대 작품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자연스러움을 들어낸다. 그는 작품 속 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옷의 주름과 자연스러운 흐름을 잡아내 표현했다. 게다가 뒷 배경은 나중에 연극무대의 뒷배경처럼 예수의 가족이 지금 어디즘을 지나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그 순간을 캡처한 것은 진정 생기가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담겨있다. 군데군데 심긴 나무와 그들을 인도하는 천사 그리고 길거리의 사람들은 이 작은 프레임 안에 있는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당나귀를 타고 가는 마리아의 품에 예수가 안겨있다. 남의 땅에 정말 남으로 존재했을 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때 그들은 어땠을까? 이집트에서도 또 돌아가는 발걸음에도 분명 두려움과 의심이 존재했겠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다.



살던 곳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이것은 모험이고 도전이다. 익숙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이고 안전함을 버리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Jacob Lawrence가 그린 이 그림은 192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의 대이동을 보여준다. 남부 쪽에 모여있던 흑인들은 경제적으로 더 나은 환경과 기회를 찾기 위해 큰 도시로 이동한다. 가족에게 이별을 고하고 돈을 벌어오겠노라 집을 떠나는 이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Jacob Lawrence가 표현한 그들의 이동은 다른 나라의 이동이 아닌 미국 내 남에서 북으로의 이동이다. 하지만 인종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봤을 때, 큰 도시로 간다는 것은 모험과 위험이 동시에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그 시절, 노예 신분이 아니지만 노예처럼 대했던 그 시절, 백인이 아닌 모든 인종은 모두 차별의 대상이었다.



Guillermo Arias는 미국으로 향해 이동하는 온두라스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을 남겼다. 지독한 가난, 위험한 치안, 부패한 정치, 엉망이 돼버린 경제는 이들로 하여금 자유와 기회를 찾게 만들었고 결국 온 힘을 다해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는 곳을 향해 가야만 하는 게 이들의 여정이다. 농구 코트에 누워 잠을 청하고 쉬다가 다시 이동을 할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줄 곳은 없다.. 이 사진에 담긴 이들 중에 누가 몇 명이나 미국 땅을 밟고 난민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만 혹시나 싶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이동하는 이들을 하늘 위에서 바라본다. 마치 신이 세상을 내려다보듯이 그렇게 말이다. 작가는 관객에게 그렇게 질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이들을 신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예술 작품을 통해 신의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이 작품의 의도는 매우 신선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왔다는 그는 내게 말했다.

"여러 치과를 다녀봤어요. 그런데 날 반겨주고 웃어주고 환영해주는 곳이 여기더라고요. 내가 돈이 되는 환자인가 아닌가를 따져보지 않고 그냥 날 보고 웃어주는 게 인상에 남아서 왔어요"


그의 말에 마음이 움직인다.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도 있다.

아주 미약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강렬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은 내게 위로가 되었고 내 친절이 그에게 위로가 되었을 때 쉴만한 물가에서 서로를 보며 씩 웃을 수 있는 것. 오늘 우리에겐 치과 로비가 쉴만한 물가였다.


사람이 사는 곳에 쉴만한 물가가 많아졌음 좋겠다.

운동장이던, 미술관이던, 밖이던 안이던 병원이던 학교던...

쉴만한 물가가 되어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한 마디에 씩 웃을 수 있는 그런 쉴만한 물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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