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글

글 따위가 죽음을 이길 수 있겠나

by MamaZ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고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긴 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한 주였다.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가고 화가 나고 슬펐지만, 가장 깊이 느낀 감정은 무력함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함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희망을 어떻게든 가져보려 해도 희망이 없고 어떻게든 위로를 해보고 싶지만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안다. "엄마! 밥 줘" "아빠! 나 왔어"를 외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 그 어떤 것도 그 무엇도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맘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식을 잃고 형제를 잃고 친구를 잃은 이들에게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도뿐이다.


형제를 잃은 누군가의 장례식에 참석을 한 적 있었다. 정말 사고였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사고. 장례식에 들어서자 무거운 공기가 숨을 쉬는 것조차도 힘들게 만들었다. 너무 젊었고 건강했던 이의 죽음은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가족과 친구들은 모든게 비현실적인 일 처럼 느껴졌다. 조문을 하며 어머니의 얼굴을 뵈었다. 겨우 서있지만 눈빛에는 영혼이 없는 것 같았다.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어머니의 얼굴에서 무력함을 느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한없이 약한 인간의 무력함 말이다.



강의 중 Munch의 그림 Death in the sickroom의 작품을 보여주며 죽음이 만들어내는 그늘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 거대하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안다. 강의 중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했다. " 이 그림은 작가의 아픈 누이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 그림이야. 가족을 잃은 이들의 슬픔을 표현했어. 다시는 누이를 볼 수 없다는 절망을 표현했지. 형제를 잃는 아이는 부모도 함께 잃는다고 해. 부모의 슬픔을 그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말이지. 부모를 잃으면 고아라고 불러. 남편을 잃으면 미망인 (widow) 아내를 잃으면 홀아비(widower)라고 하지. 그런데 자식을 잃은 부모를 일컫는 말은 없어.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있기 때문이지"


강의실 중간 책상에 앉아 늘 조용하게 수업을 듣던 그는 이내 눈물을 뚝뚝 흘렸고 우린 모두 그에게 집중을 하게 되었다. 흐느끼지도 못하고 그냥 눈물을 훔치는 그에게 크리넥스 한 장을 쥐어줬다. 그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남편과 무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내뱉은 말 한마디에 숨이 멎도록 맘이 아팠다.

"세월호 때 애들이 지금 이태원에서 목숨 잃은 아이들 나이 때 아닌가?" 생각해보니 얼추 비슷할 것 같았다.

10대 때 세월호를 경험하고 이제 20대가 되니 이태원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다시 한번 그때의 무력함을 경험한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이들에게는 침묵과 기도밖에 없다.

그리고 나의 글은 싸구려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이가 써 내려간 싸구려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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