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고리

태초의 탯줄 같은 관계다

by MamaZ

임신이란 경험은 그 어떤 말과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하지만 기괴한 경험이었다. 온전히 내 것이던 나의 몸을 누군가에게 침범당했고 내 몸의 모든 기관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강요당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극심한 두통과 피로 그리고 분수처럼 뿜어내는 위산과 불면증으로 임대인의 존재를 톡톡히 알렸다. 내 몸을 침범한 녀석은 마치 집주인이 어떻게 반응하고 기능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 1층부터 100층까지 다 눌러보듯 내 모든 장기를 한 번씩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생명체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다음부터는 내가 먹고 마시고 보고 바르고 냄새 맡고 느끼는 모든 감각에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내 평생 상대 해본 적 없는 강적이었다. 평생 쳐다도 안 봤던 과일만 먹으라고 강요를 하지 않나, 평소 좋아했던 핸드 로션 냄새에 구토를 하게 만들었다. 내 취향도 아닌 Maroon Five 싱어 Adam Levin 노래에 배가 들썩일 듯 반응했고 툭하면 발로 차서 피곤에 지쳐 쓰러진 나를 깨웠다. 생명체의 움직임은 마치 물속에서 천천히 걷는 브랑코사우르스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고요하던 물이 공룡 한 마리의 출연으로 급격하게 출렁이며 물결을 만들며 다른 생명체들을 놀라게 하는 그런 장면처럼 임대인의 움직임은 내 모든 감각을 놀라게 했다. 녀석은 나와 연결되어 있었고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다.


임신의 모든 순간들이 내게는 그러했다. 새로운 경험이었고 힘들었고 즐겁고 신비했다. 내 몸이 새로운 생명체를 품고 먹이고 탄생시킬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걸 직접적으로 체험했으니까 말이다.

런던 Tate Modern에서 봤던 Magdalena Abakanowicz의 전시를 접했을 때 다이내믹 했던 나의 임신 경험이 생각났던 건 그녀가 만든 rope 즉 밧줄의 형상이 지속적으로 작품 속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밧줄은 길게 늘어뜨려져 있기도 하고 바닥에 꽈리를 틀어 놓은 모습으로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다른 형태의 작품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 연결의 끈은 겨우 몇 가닥으로 아주 얇고 불안정하게 언제 끊어질지도 모를 모습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했고 절대 끊어지지 않을 두꺼운 굵기로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태반의 모습 같기도 했고 폐의 모습 같기도 했고 생식기 같은 형태의 작품 속에서 길게 늘어뜨린 밧줄의 의미는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라고 느껴졌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는 예술가로서 성장하기 매우 힘든 환경에 놓여 있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난 그녀에게 자유로운 표현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것이었다. 실제 첫 전시가 취소되어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 조차가 허락되지 않았던 작가에게 작품이란 주변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식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식들이 주렁주렁 갤러리에 매달려 전시되었던 Tate Modern에서 나는 작가의 손길을 느꼈다. 매만지고 묵고 매듭을 지으며 하나의 형태로 만들어 내는 것이 작가에게는 매번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자 그 생명을 자신과 연결시키는 일이었다. 전반적인 전시의 느낌은 매우 어두웠지만 작품 하나하나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던 분위기는 더욱 자궁 안에 있는 태아의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밧줄은 작가 자신과의 연결이자 세상과의 연결이고 예술과의 연결이었지만 결국 대중과의 연결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하는 작가의 숙명 속에 밧줄은 새로운 세상과 장품과 예술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임을 알기에 작품의 탄생은 매번 그녀가 절실하게 말하고자 했던 교감과 연결 그리고 소통의 바람이었던 것 같다.


Chicago Grant Park, Photo by Will Wagner from Pinterest

Magdalena Abakanowicz의 살아생전 가장 큰 작품이자 마지막 프로젝트는 Chicago Grant Park에 있는 Agora라는 작품이다. 9피트 (약 2.7미터)의 다리 들리 그룹을 지어 서있다. 뭉쳐 있지만 또 다로 있는 다리들을 보면 사회에서 함께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비록 성향과 삶의 경험이 다를지라도) 알려준다.


혼자였음 외로워 보였을 다리가 때를 지어 걷는다. 비록 방향은 다 다를지라도 함께 하고 있다는 그 모습 자체가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음을 볼 때 보이지 않는 밧줄이 이 작품에도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0개월을 내 몸에 품고 있던 임대인은 어느덧 멋 부리고 그림 그리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게 가장 즐거운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더 이상 내 모든 장기를 테스트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밧줄은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데 사용되지만, 그래도 녀석과 나의 연결은 작가의 작품처럼 절대 따로 갈 수 없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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