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onal Gallery에서 만난 Memento Mori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조금 더 런던에 머물고 싶지만 먹고사는 현실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짐을 쌌다. 아쉬운 맘으로 짐을 싸다가 문득 나에게 일 년이란 시간을 오직 미술관 다니는데 쓰라고 해줄 사람이 있다면 난 정말 최선을 다할 수 있을 텐데라는 기가 막힌 상상을 해본다.
아 상상만 해도 얼마나 설레는 삶인가?
살림도 하지 말고
일도 하지 말고
학교도 나가지 말고
육아도 하지 말고
오직 미술관만 다니면서 글을 쓰라고 한다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런던에는 많은 미술관이 있지만 그중 the National Gallery에 가는 게 가장 좋다. 그곳에는 미술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도 한 번쯤 들어봤을 작가들의 그림과 한 번쯤은 봤을 작품들이 함께 있다. 그래서 뻔할 것 같지만 그 뻔한 작품 앞에 숨 막히게 아름다운 디테일과 삶을 향한 메시지를 찾곤 한다. 그래서 명작은 명작이고 괜히 교과서에 나오는 게 아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Hans Holbein the Younger의 the Ambassadors다. 초상화가로 매우 유명한 작가는 영국으로 파송된 두 명의 프랑스인 대사를 그렸다. 당시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눠진 유럽은 불안정한 사회적 정세와 더불어 종교적 권력도 나뉘었다. 가톨릭 교회의 쇠퇴는 곧 권력의 상실이기에 프랑스는 대사를 영국에 보내 개신교 교회를 반대하길 원했다. 하지만 이 미션은 프랑스의 실패로 돌아갔고 영국은 개신교적 신앙을 굳히게 된다.
The Ambassoadors가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라 그림에 숨겨진 디테일과 그 뒷 이야기를 글이 많기 때문에 이곳에 반복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깊은 지혜의 메시지는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묵직한 질문을 던져준다.
세상에는 영원한 게 없어.
우린 모두 죽지.
이건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예언이야.
이 예언이 한 번도 빗나간 적 없거든.
죽음은 틈틈이 당신을 노리다가 신이 허락을 할 때 찾아올 것일세.
자네는 나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준비되었는가?
매번 이 작품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설명을 할 때 묻는다.
우린 잘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가 이룬 모든 것이 죽음 앞에 무너져 내릴 때 손을 털고 I am ready를 외칠 수 있을 것인가?
20대에게 삶을 이야기해야지 왜 죽음을 이야기하냐고 반문할 수 도 있지만, 죽음이 없는 삶은 한없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는 걸 이 작품은 말해주기 때문이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
시차를 견뎌가며 20000보를 걷고 걸어 봤던 수많은 예술 작품과 맛없는 음식과 꽃이 가득했던 거리 그리고 65년 만에 이뤄진다는 대관식으로 설렘이 가득한 영국인과 관광객 사이에서 이 그림은 중심을 잡게 해 줬다.
삶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진실되게 살라는 묵직한 메시지가 오랜만에 얻은 휴가의 틈을 더 단단하게 메꿔준다.
*이 글은 런던에서 쓰고 집에 와서 편집을 하고 출근을 하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 편집을 하고 올렸다. 일하면서 글을 쓰며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시간의 틈새를 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