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maZ Oct 02. 2024

생존하기 위해 생존하는 이민교회

버틴다고 목적이 생기진 않는다.

오랜 시간 이민자들에게 교회란 매우 특별한 곳이었다.

낯선 땅에 가족도 친구도 없이 덩그러니 놓인 이들에게 교회는 같은 언어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다. 같은 언어로 예배를 드리고 김치 냄새 풍기며 밥을 먹어도 그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는 자유로운 장소. 교회는 고향이 그리운 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소가 되었고 그렇게 해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한국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교회도 세워졌다. 한국의 대형교회 이름을 따오기도 하고 교회가 위치한 주와 도시의 이름을 가지고 교회를 열고 담임 목사로 대한민국에서 큰 대형교회를 맡았던 이들을 데려오기도 하고 한국의 대형교회에는 미국에서 학위 받고 목회한다는 이들을 데려가기도 하면서 이민교회는 성장했다.


세탁소에서 리쿼스토어에서 뷰티 스토어에서 힘겹게 일했던 우리의 부모세대 그리고 조부모 세대는 기반을 잡고 자식들을 가르치며 고된 이민생활을 견뎌낼 때 교회를 찾았다. 교회란 그들에게 종종 대나무 숲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을 알아주는 이들이 교회에는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나와 비슷한 생김새에 똑같은 언어와 같은 냄새를 풍기는 이들 말이다.


미국 이민의 역사가 100년이 넘어가는 시점 지금 한인 이민교회는 거의 끝자락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더 이상 미국으로 이민 오는 한인들의 숫자는 없고 예배당에는 백발노인들만 가득하다. 성인이 된 2세 3세는 그들만의 언어와 문화로 예배드릴 수 있는 환경을 찾지만 그런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이민교회는 많지 않다. 매우 큰 대형교회에나 영어로 목회할 수 있는 부목사들을 데려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런 2세 목회자들이 1세 목회자들과 잘 지내기도 힘들다.  문화와 언어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이민교회는 백발 가득한 노인들을 모시고 고사리 따러 가고 단풍구경을 가는 게 사역이 되었다. (이런 상황은 한국 교회도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들었다)


이민 교회는 왜 1세 사역에서 더 발전하지 못했을까?

이 질문은 한인 이민교회의 존폐의 이유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2세 3세는 한인 이민 교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곳저곳 유목민처럼 교회를 찾아다니는가?


내가 자주 가는 한인 마켓에는 늘 전도지를 손에 꼭 쥐고 예수 믿으라는 이들이 마트 문 앞에 서있다.  동네 온갖 한인들이 가는 마트 안에서 자기네 교회 오라고 전도지를 나눠주고 나름 노방전도를 했다고 얼마나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래봤자 다른 교회 교인 우리 교회 교인으로 모셔가는 일이 다일텐데...


딱 1세를 향한 1세 만을 위한 사역은 이민 교회의 한계를 정하는 일이었다. 이민 교회는 2세 3세 청소년의 신앙의 성장과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하지 않았다. 2세 3세가 미국 이민자로서 하지만 미국인으로서 신앙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도록 그들이 앞으로도 교회를 찾을 수 있도록 이끌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민 교회의 목적은 애초부터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멀리 보고 미래를 계획할 여력이 없는 교회가 대부분이었고 여력이 없으니 기존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잘 어르고 달래서 교회를 보존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목적이 생존인 교회는 정말 겨우 생존만 하는데만 큰 의의를 둔다. 미래를 보는 건 무리고 그럴 여유도 없다.


이미 많은 교회가 팬데믹 이후로 문을 닫았고 팬데믹 이후로 제정적으로 허덕이는 한인 교회가 한 두 곳이 아니다. 게다가 평생 한인 이민 교회만 이끈 목사들은 교회가 밥줄이자 생명줄이 되어 있기에 교회의 생존뿐만 아니라 목사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죽을힘을 낸다. 어떻게든 버텨서 은퇴하기 위해서 말이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목회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목사들은 얼마나 위험한가. 그들에게 교회는 밥줄이고 생명줄이기에 교회는 철저히 이용당한다. 특히나 1세 목사들은 언어의 어려움 때문에 더욱 교회 밖 진짜 세상에 나가는 일은 가당치도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목회자들도 많다.  적어도 내가 아는 정말 신실한 목회자들은 어떻게든 성도들을 위해 희생하고 노력한다. 그들은 기쁨으로 섬긴다. 분명 그런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교회의 다른 점이 무엇인 줄 아는가?  그런 교회는 앞으로 10년 20년의 미래의 계획을 가지고 있고 그 계획에 맞춰 작고 큰 목표를 두고 행한다.

한인 상대로 전도 호객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도움이 필요하고 어려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세운다. 인종을 넘어서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적극적인 구제 활동을 한다. 우리끼리 김치 먹고 국에 밥 말아먹는 주일이 아니라 시선을 넓히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 미국에 수많은 교회의 평균 연령은 매우 높은 편이다. 최근 내가 방문한 교회의 대부분 교인은 60-70대였다. 그런 교회에서 10년을 내다본다면 교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는 상태로 변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죠...라는 생각으로 버티는 교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알아서 문 닫게 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교회는 끊임없이 흥망성쇠를 반복했다. 오직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요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고 부활했다는 복음이다. 복음은 변하지 않지만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늘 시대에 맞게 변화되었다. 하지만, 이제 교회는 매우 정확한 목적과 목표 없이는 존재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왜냐면 팬데믹 이후로 예배의 방식이 꼭 교회를 직접 가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목적이 없이 허공에 왕펀치를 날리며 버티기에 돌입한 이민교회에서 나는 희망을 보지 못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본질을 못보는 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