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기 위해 부어야 하는 노력
목회자의 아내로 살지 않게 되자 처음 한 건 교회에 관한 글을 쓴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내 숨구멍을 트이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라도 질러야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릴 것 같아서 나는 교회에 관한 내 경험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글을 썼고 글 쓰는 게 너무 좋았던 나는 단 한 번도 목사의 아내로서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20년을 목회자의 아내로 살았어도 나는 내 본업, 그러니까 대학 강사로서 경험했던 일 혹은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것들만 골라 내 글의 주제로 정했다. 왜 나는 20년 동안 목사의 아내로 살았으면서 교회에 관해서는 글을 쓸 수 없었을까? 그 이유는 남편이 목사였기 때문이다. 내 글이 내 행동이 내 말이 남편이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사람을 사귀는 것도 그들과 교제를 하는 것도 내 입에서 내뱉는 말도 나는 조심했다. 나에게 그 조심은 내 진정한 모습을 최소한의 사람들에게만 알리는 일이었다. 친절하되 곁을 주지 않는 일. 그것이 내가 사모로서 살아가며 나를 보호하고 내 가정을 보호하며 내 남편의 일을 서포트하는 일이라 여겼다.
대학원 때 꽤 큰 미술관 큐레이터를 알게 된 적이 있었는데 우린 대화 가운데 그녀 역시 목사의 아내라는 걸 알았다. 당시 그녀는 금발의 50대 백인이었고 나는 막 30을 앞두고 있던 병아리였다. 단 한 번도 목회자 아내의 삶이 좋았던 적 없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더더욱 "사모"라는 타이틀로 불리는걸 극도로 꺼려했다. 한국인 교회와 백인교회에서 다뤄지는 목회자의 아내는 현저히 다를 거라 생각했기에 물었다.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간다는 건 뭔가요?"
그녀는 나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나의 질문은 사실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가는 게 너무 싫은데 어쩔 수 없는 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맥락에서 시작된 질문이니까.
그녀는 내게 말했다.
교인들이 나 와인 마신다고 욕해. 내가 입는 옷과 액세서리가 너무 화려하다고도 하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그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아. 나는 내 남편이 사람일 수 있게 돕는 게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거든. 내 남편은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시키는 일. 그래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것에 집중해.
나는 그때 그녀와의 대화가 너무 좋았다.
사람다울 수 있도록 돕는 일.
그러기 위해선 내가 사람이어야 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 아닌 모습으로 살지 않는 것.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안에서 회복하고 그 안에서 살 힘을 얻는 것. 그래서 우리가 힘들 때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고 한 사람이 넘어지면 같이 넘어져주고 그러다가 함께 일어날 수 있도록 서로의 디딤돌이 되는 것 말이다.
20년의 목회자 아내 생활을 청산하고 그 누구도 나를 "사모"라고 칭하지 않는 지금 나는 큰 자유를 느낀다. 이 자유의 거대함은 마치 수족관에 갇혀 살던 돌고래가 큰 바다로 나온 뒤에야 느끼는 그런 자유와도 비슷할 것 같다.
내가 자유를 얻었다고 한들 나는 지금도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고 어떻게 나의 하루를 살 것인가 나는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에 동참하고 하나님을 슬프고 화나는 일에 나 역시도 그리하려 노력한다. 비록 아무도 나를 사모라 부르지 않지만, 나답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가까이할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목회자 아내로 사는 삶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내 고유의 가치과 생각과 판단을 잃지 않고 그 중심을 붙들고 사는 일이 더 힘들다.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 중심을 붙들고 아등바등 거리는 날 보길 원하시지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며 사는 걸 원하시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들 눈치 말고 하나님 눈치 보는 거... 그게 답이다.
목회자의 아내로 사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것. 그게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