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요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그건 "견고함"이다. 견고하다는 표현은 튼튼하다 강하다 단단하다의 뜻이지만 나는 견고의 뜻은 그 보다 좀 더 촘촘하고 탄탄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견고함의 의미를 시각화하자면 매우 촘촘하게 겹겹이 잘 짜인 바구니의 무늬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삼겹줄 사겹줄로 이뤄진 매우 단단한 밧줄이 매우 촘촘하게 엮여 똑같은 간격을 이루고 잘 짜여 있는 모습이 내가 느끼는 견고함과 가장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견고하다는 단어를 좋아하게 된 건 어떤 사람이나 물건 감정 같은걸 표현한때 이보다 더한 칭찬이 있을까 싶어서다. 내가 산 물건이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진 것이라면 쉽게 질리지 않고 오랜 시간 정을 붙이며 사용할 것이며 내가 사는 집이 견고하게 지어졌다면 태풍이 불어와도 안심할 것 같기 때문이다. 향수를 좋아하는 내가 매우 견고한 향이라고 표현한다면 그건 매우 좋은 재료들이 레이어를 만들어내 가볍지 않고 묵직하지만 그렇다고 지루하지 않고 오랜 시간 지속되는 향일 거라 생각한다.
견고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또 어떨까?
내가 생각하는 견고한 사람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부분 하나하나가 하모니를 이루는 사람이다. 그 어떤 감정에도 상황에도 압도되지 않고 자기만의 페이스와 감정을 지키는 사람. 바구니를 묘사한 것처럼 수많은 인생의 경험이 촘촘하게 엮겨져 쉬이 엎어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아마도 견고한 사람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견고한 집과 물건 향수 같은 건 돈만 있으면 구입 가능하겠지만 위에 표현한 것 같은 그런 견고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발버둥을 치며 살아가는데 그게 단단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그래서 견고함이 느껴지는 이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는 것 같다. 희끗희끗한 흰머리와 깊은 주름이 그렇고 구부정한 등과 어깨 혹은 말투와 쓰는 단어에 담기는 것 같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이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단단함 같은 것 말이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그런 견고 함이다.
좋았던 경험 나빴던 경험 모두가 어떻게든 나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면 나는 내 인생에서 버릴 게 없을 것이다. 후회 말고 뒤돌아 봄 없이 오직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에 뿌려진 눈물과 노력과 슬픔과 분노 그리고 즐거움과 환희가 다 섞여서 나를 촘촘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다면 내 과거도 충분히 환영받아야 할 것이다. 그 환영은 촘촘해지고 견고해진 내가 내 스스로에게 갖춰야 할 예의니까.
얼마 전 나는 그런 기도를 했다.
나를 압도하는 것이 오직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시킬만한 아름답고 선하고 좋으며 바람직한 것이길 바란다고 말이다. 나는 정말 그런 것들에 압도당하고 싶다. 견고한 향수에 내가 압도당하듯 말이다. 40과 50의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이에 오늘 무엇을 선택하고 그것을 누릴 것인가는 꽤 중요한 질문이 된다. 나를 견고하게 하지 못할 것들은 선택하지 말자고 수십 번 내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있고 그 시간 동안 내가 제대로 여물기 위해선 선택해야 하는 것들도 많고 버려야 할 것도 많기에 오늘도 나는 조심스럽게 매우 중요한 결정들을 한다. 오롯이 견고해지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