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finestra

by Hyun

finestra : 창문, 창



-나는 왜 이탈리아 자수를 하는가-


이탈리아, 스페인에 처음 갔을 때

그 곳의 선생님들은 거의 대부분 눈을 빛내며 이런 질문을 하셨다


“너는 어떻게 우리 자수를 알게 되었니?”

“한국에도 자수가 있니?”

“너희 나라의 자수는 어떤 스타일이니?”


이탈리아 자수, 레이스를 공부하기 시작한 지 벌써 10여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이야 일본, 대만, 호주,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이탈리아 자수를 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이 생겨나고,

SNS상에서 관련 사진들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내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현지를 제외하고는

이탈리아 자수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현지에서도 젊은 사람들은 거의 하지 않는데

동양에서 젊은(?) 여자가 갑자기 혼자 뚝 떨어져서 자기네 자수를 배우러 왔다고 하니 신기할 수 밖에.

(거기다 이탈리아어도 잘 못해…)


이탈리아는 보통 자기 지역의 자수들을 한다.

자수가 전승되고 있는 곳은 유명 관광지가 아닌,

오히려 찾아가기 힘든 곳인 경우가 많다.

파니깔레나 말리에처럼.


그런데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어?


‘한국은 자수가 없나??’ 하는 궁금증이 있었을지도.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실 좀 난감했었다.

우선 그때는 이탈리아 말이 서툴기도 했고,

한국전통자수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구글에서 사진을 검색해서 보여드리는 정도.


“한국에도 이런 자수가 있는데,

어쩌다 너는 우리 자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니?”


“La finestra!

Io… mi piace… fare finestre…”



그 당시 나의 언어 구사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최대 출력치였다.

레티첼로도, 튤자수도, 에밀리아 아스,

이탈리아에서는 스필라또라고 부르는 드론워크,

컷워크, 카살구이디자수

덴마크 자수인 히데보, 풀드워크 등등

내가 손대는 자수는 거의 대부분 레이스거나,

자수에서 레이스로 넘어 오는 단계의 ‘창문’이 뚫린 자수들이다.


늘 창문이 좋아.

이 곳에서 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을 좋아한다

여차하면 휙 넘어 갈 수도 있는 창문이 좋아.

작업실을 구할 때도, 늘 창문이 큰 곳을 골랐었다.

한국사람인 내가 이탈리아까지 가서 자수를 공부하게 된 이유가 저거였겠지.


우리 전통자수엔 저런 개념은 없는 것 같아.

원단 위에 실로 면을 메꾸어 나가는 자수가 많지.

이렇게 원단의 구멍을 뚫어서 문양을 만들거나,

실로 짜 나가는 ‘레이스’는 없는 것 같다.


또 선생님들이 내게 궁금해 하시는 건

“넌 어디까지 갈거니? “

“온 세상 자수를 다 배울거야?”

“다음엔 또 뭘 배우러 갈거야?”

그 질문엔 그저 웃으며 답할 수밖에


“Chi lo sa?”


한 선생님은 내게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가지 조언을 좀 해줘도 될까?

너는 더 이상 배우러 다니지 않아도 돼.

너는 네 방식으로 해도 충분해”


그 말은 조언이라기보다

내가 혼자 서야 할 시점이라는 표시처럼 들렸다.


사실, 내 자수의 분야에서는 배워야 할 큰 줄기는 거의 배웠다.

배워야 할 것들은 왠만큼 다 배웠고, 이제 내 작업을 해 나가면 된다.


그런데 , 나는 왜 여전히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건 또 다른 ‘finestra'


요즘 나는 이탈리아 자수의 역사를 조금씩 공부하며 정리해 가고 있다.

자수는 바다를 건너 들어왔고,

남에서 북으로, 지역에 맞게 변형되며 이어졌다.


나는 지금,

그 길을 거꾸로 내려가며 흔적을 더듬고 있다.

북부에서 남부로,

다시 남으로.


그 여정이 길게 이어져

언젠가는

한국만의 방식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희미하게, 그 방향을 보고 있다.



그래서 자꾸

창으로 내다보는 데에만은 만족하지 못하고

훌쩍 뛰어 넘어 가게 되었나보다.


이 곳과 저 곳의 자수는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보기엔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이름도, 기법도

조금씩 차이가 나는 자수들.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이야기들.


그곳으로

바늘은 자꾸 나를 끌고 간다


그래서 그 경험들을 한데 모아

실을 꼬고,

나만의 원단을 짜 내고,

그 위에 창을 내고

또 수를 놓아 갈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자수를 한다는 건,

단순히 취미나 직업적 목적이 아니다.


나에게 자수는,

창을 내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