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to

by Hyun



usato = ‘사용된 것’, ‘중고’, ‘한 번 지나간 것’

항상 ~하던



또 하나의 작업이 끝났다.

지난번 작업의 에밀리아 아스,

그리고 이번 튤자수.

모두 도안종이에 시침을 하는 작업이라서 끝나고 나면 허물이 남는다

마치 탈피의 흔적처럼.



시침을 떼어낸 순간

종이는 뒤로 물러나고

완성된 자수와 레이스는 새로운 별이 되어 빛난다.



튤자수를 막 끝내고 떼어낸 종이사진을 sns에서 보시고

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Brava! Meraviglioso!

Immagino la soddisfazione che hai provato quando lo hai liberato dal supporto di carta!

È una soddisfazione enorme che provo tutte le volte!”



“브라바! 정말 훌륭하구나. 종이 받침에서 작품을 떼어냈을 때 네가 느꼈을 그 기쁨이 눈에 그려진다.

나도 그 순간이 올 때마다 언제나 큰 만족감을 느끼거든.”



맞아,

나는 시침을 떼는 순간이 제일 짜릿해.

종이에서 튤이, 레이스가 떨어져 나오는 순간 해방감을 느끼기도 해.


아....이제 끝났구나.

드디어 끝냈어.


특히나 튤자수는 신경을 긁어댄다.

튤 망사는 너무 예민하고,

종이는 너무 얇고

완성도 하기 전에 종이가 찢어질까 늘 노심초사.


이번엔 특히나 큰 작품이여서 더 힘들었다.

이걸 완성할 수 있을까?


버석거리는 큰 종이를 안고 어쩔 줄 모르는 내게

선생님은

‘종이가 부드러워지면 좀 쉬어질거’라고 하셨었다.


그땐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


접었다 폈다 하면 종이가 구겨지고 더 잘 찢어지지

부드러워진다고?



처음 시작할 때는 분명 버석거리는 종이였는데

작업을 마친 종이는 마치 얇은 가죽처럼 변했다.

수없이 접고,눌리고 말아든 구김들이

‘단절’ 대신 ‘휨’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건 나의 작업태도가 변해서였겠지.


요즘은

칼각으로 접기 보다는

무릎으로, 가슴으로 말아서 굴리는 편을 선호한다.


종이를 접어서 쥐는 대신

말아서 가슴으로 안는다,


정확하고 명료함에서

모호하고 흐릿한 것으로의 이동.



그 덕분인지

최근의 작업은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조금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다.


그럼, 남은 종이를 이제 별들의 무덤으로 보내줄 시간이다.


내게는 그런 죽은 별들의 무덤이 있다.

이제껏 한 에밀리아 아스, 튤자수의 떼어낸 종이를 파일철과 박스에 보관한다.


박스를 뒤적이는데

처음 완성한 에밀리아 아스 도안 종이가 보인다.



그때 나는 말했었다.

-이거 다시 사용할 순 없나요?-


첫 수업에는 시침자리를 선생님이 미리 뚫어 주셨었다.

구멍은 그대로니까 한번 정도는 더 쓸 수 있지 않냐는 내 말에

’이 종이는 이젠 약해졌어, 종이가 약하면 레이스를 버텨낼 수 없어, 이건 다시 쓸 수 없단다‘


튤자수도, 에밀리아 아스도

한번 사용한 도안 종이는 다시 쓸 수 없다.

시침실을 잡고 있던

구멍은 종이를 약하게 만든다.

같은 길을 두 번 갈 순 없단다.


그런데

나는 왜 이들을 박스에 모아두는 걸까.


종이를 떼어내는 순간,

만족감, 해방감을 느끼지만

애잔하기도 하기 때문에.


완성된 작품은 이제 시침과 종이가 없이도 혼자 빛날 수 있지만

그 시간동안을

심장을 뚫려가며,

온 몸을 구기며 나를 지탱한 것은 그들임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완성된 작품은 빛나지만,

우리의 서사를 간직한 것들은 저 종이들이다.

나의 불안과 망설임, 그리고 한숨들.


오랫만에 지난 시간들을 뒤적여본다,

그때 파니깔레의 새벽 공기.

동이 터오던 아침의 하늘.

까악까악 새벽을 알리던 새 울음소리.

안개가 자욱하던 이른 아침 산죠반니의 골목길.

영상편집에 쫓기면서도 도피처로 시작한 시침들.

어느날은 비가 몰아쳤고,

어떤 날은 함박눈이 쏟아졌었지.




Usato

내가 지나온 모든 것은

버려질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든 것.


이것은 빛을 다한 내 백색왜성들.

내 눈물과 애잔함, 그리움들아,

우리가 같이 빛나던 순간을 내가 늘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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