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떠올리곤 했다. 지옥같이 힘들때 같이 동고동락하며 웃고 같이 혼나고. 한 번 싫은 내색 한 적 없이 그 더러운 생활관에서 땀내나며 같이 지내던 그 날들을. 그때 그리던 전역하고 펼쳐질 꿈같은 미래에 다다라 발을 내딛었을때, 세상은 딱히 우리가 꿈꾼것처럼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만들어보려고 꿈같은 나날을 노력하며 살았지만, 살면 살수록 많은것이 무너져내려갔다. 무너지고 널브러진 조각들을 바라보며 문득 네가 떠올랐고, 또 문득 너에게 연락을 넣었다. 자정이 다가오는 늦은시각, 어쩐지 연락을 피하는 기미를 보이던 너는 바로 답장해주지 않았다.
요새 늘 그랬듯 뒤척이며 잠에 들고 잔 것 같지 않은 잠을 자고 어영부영 일어나서 마주한 카톡은 네가 아닌 네 어머님의 답장이였다.
마음이 이상했다. 우리는 이제 못 본지 2년이 지나가고, 가끔가다가 장난치듯 주고받던 연락이 전부였는데. 그 연락도 네가 너무나도 맛있는걸 먹고 잘 지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흐뭇하여 보내본 연락들이였는데.
같이 침상에서 장난치다가 조교에게 같이 불려가 혼나던게 아직 2년이 안됐는데. 우리, 이제 전역한지 6개월도 안됐는데. 같이 해보고싶은게 너무 많아서, 관계의 끝이 금방 보인다는 ‘훈련소 인연’임에도 나는 너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야 뭔가 적응을 하는 듯 마는 듯 하면서도 실패한것이 쌓여가며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고자 했던 나는 네 소식을 듣고 실패를 딛지 못하고 빠져드는 듯 하다.
같이 사직구장에서 맥주를 기울이며 야구를 보자고 약속하던 밤이 어제같은데, 남들 다 떠들고 있을때 우리 둘만 불침번이여서 우린 사회에서 못다한 얘기 다 하자고 새끼손가락 걸었었는데.
내 소심한 대본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읽고 칭찬해주고 피드백해주던 첫 독자인 너에게, 꼭 내가 쓴 대본으로 공연을 올리고 너를 초대하고 싶었는데.
못다한 얘기들을 뒤로하고 먼 길을 떠난 네가 밉다.
너 때문에 하늘이 무너지지도, 너 때문에 쓰러지지도 않을거다. 그게 내가 아는 네가 나에게 바랄 모습이니까.
하지만 징그럽게 널 기억하고 어머님과 약속한대로 널 찾아갈거다. 어색한 양복을 쫙 빼입고, 네 앞에 한참 서있을거다. 한참을 울지, 한참을 바라만 볼지 모르겠지만, 난 꼭 널 보고 너와 약속했던 사직야구장에 가서 홀로 앉아 짝을 잃은 맥주잔을 혼자 들고 멍하니 야구장을 바라볼거다.
늦어서 미안해. 곧 만나러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