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호주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급식을 먹고 친구들과 몰려나오고 나면 꼭 교복 치마 허리춤에 잠금쇠 자국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그 위로 살이 겹치는 걸 보고 있으면 묘하다. 꼭 답답하라고 만들어 놓은 건가 싶기도 하고, 마른 편인데도 꽤나 불편하다고 생각되어서 가끔 짜증이 나기도 했다-교복 리폼 콘테스트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 호주에 처음 갔을 때 굉장히 신났던 점은, 사람들이 '살'이 마음껏 늘어지도록 풀어 준다는 것. 남녀노소 해변에서는 가벼운 옷차림, 집으로 돌아갈 때는 가뿐하게 타월을 두르고 돌아간다.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아마도 교복에서는 어쩔 수 없이 꽉 끼는 느낌이라던가 지방층도 내 몸의 일부인데 -미안하게도- 왠지 잘라내거나 떼어내는 게 간편하다고 생각해 버릴 때도 있지만, 비키니 같은 가벼운 차림에서는 몸이 숨을 쉬는 느낌이다.
해변에서 러닝화에 비키니 차림으로 조금 뛰다 보면 '나에게 붙어있던 살'이라는 생각에서 뭐랄까, 몸이 안정적으로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혼자 밥을 사 먹기도 하고 친절해 보이는 사람에게 용기 내서 말을 걸어보기도 하다 보면 학교 끝날 시간이 되어서 내 또래 아이들이 잔스포츠 책가방을 들고 교복 안에 수영복을 숨긴 채 바다 쪽으로 삼삼오오 걸어온다.
콧잔등에 있는 주근깨가 나에게는 무척 매력적으로 보인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비행기를 타거나 짜증스럽게 최저가 숙소를 찾을 필요도 없이 바다 수영을 즐긴다는 점에 조금 질투가 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호주에 온 지 며칠이 되어서 혼자 샌들을 들고 해변에 가는 게 익숙해질 때 즈음에, 살을 태워 가며 책을 읽다가 문득 바다 쪽을 봤는데 빈 휠체어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어서 놀랐던 날이 있었다.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휠체어의 주인인 듯한, 머리카락이 길고 햇빛에 보기 좋게 탄, 두 다리가 없는 남자가- 다리의 부재는 상당히 나 같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지만 그는 굉장히 건강해 보였다- 휠체어에 걸려 있던 깨끗한 타월로 머리를 닦아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그가 다시 바다 수영을 하러 물속으로 들어갔을 때, 한 커플이 그에게 다가와 자연스레 말을 걸어 이 근처에 사는지, 수영이 취미인지 등을 묻기 시작했다. 그 광경이 나에게는 굉장히 새롭게 느껴졌는데, 책을 읽던 남자는 물속에 몸을 담그고, 커플은 눈을 맞춰 주는 대신 일어서서 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 중 누구도 의도한 것이 아니었겠지만, 도와줄까요?를 묻는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시각을 공유하는 모습이 혼자 온 17살의 동양인 여자애에게는 신선하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나도-숙소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전에 항상 사는 복숭아와 망고를 고르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저렇게 예뻐 보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