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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Aug 18. 2024

인력 구하기가 제일 어려워

나이 든 여자의 알바 이야기 / 가게 오픈 준비

아이들과 함께 프랜차이즈 매장을 하기로 한지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3차례의 인터뷰와 2개월간의 교육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딸이 제일 고생했다. 딸 이름으로 사업자를 냈기 때문에 딸은 다니던 직장에서 휴직을 하고 3개월 내내 혼자 감당해 왔다.


열흘 후면 오픈하는 시점이었다. 책임감에서 비켜서 있는 나로서는 편하게 시간만 기다리면 되는데, 아이들은 속이 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들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대여섯 명은 뽑아야 하는데 겨우 한 명 구했다고 했다.


알바 사이트에 구인 광고를 낼 때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했었다. 광고 첫날에는 여러 명이 지원해 왔는데 아이들과 나는 지원자들의 이력서와 지원 내용을 카톡으로 공유하면서 시끄럽게 품평을 해가며 면접 대상을 선별했다.


인상이 안 좋으면 탈락, 화장이 너무 진하면 탈락, 귀걸이가 너무 과하면 탈락, 이력에 서비스업이 없으면 탈락, 경력이 너무 복잡하면 탈락, 지원 내용에서 띄어쓰기 엉망이면 탈락, 지원 내용을 볼 때 다른 곳에 지원했던 내용을 갖다 쓰면서 따붙이기 하느라 문장 연결이 안 되는 경우도 탈락. 등등 우리는 꼰대가 된 양 엄격한 심사를 했다.


그리하여 초기 며칠간 여섯 명의 서류 합격자를 추렸다. 아이 둘이 같이 면접관이 되기로 하고 초기에 지원한 사람들을 이틀에 나눠 면접을 진행하기로 했다. 아들은 직장에서 퇴근하고 면접 장소에 도착해야 했기에 딸이 먼저 가서 지원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톡에서 딸이 말했다.

"오빠, 오빠 도착하기 전에 사람들 오면 내가 혼자 면접 봐야 하는데 뭐 물어볼까?"

한때 아르바이트생 면접 심사를 많이 해봤던 아들이 대꾸했다.

"들어올 때 보면 벌써 인성이 보여. 들어오면서 대표만이 아니라 다른 직원들한테까지 두루 인사하는 사람은 무조건 합격.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부터 뒤지는 사람도 무조건 합격. 이력서 꺼내려는 거거든."

"근데 요즘엔 애들이 이력서 인쇄를 잘 안 해 가더라. 우리 때는 반드시 해 가야 하는 걸로 알았는데."

"면접 때 쓸 일은 별로 없지. 하지만 이력서 인쇄해 오는 사람은 무조건 합격이야. 그런 사람은 사고 안 쳐. 면접 끝나고 의자를 제자리에 밀어 넣고 가는 사람도 무조건 합격. 면접을 보다 보면 평소 습관이나 행동이 다 나와. 너도 면접 볼 때 그런 거 유심히 봐줘. 말할 때 눈을 마주치는지, 말 속도는 빠르지 않은지 등등 습관을 지켜봐야 하고, 컴플레인 대처방법, 본인의 강점 등, 스스로 생각해서 나올 수 있는 얘기들을 하게 해. 마지막에는 이 일이 힘든데 왜 지원했냐고 물어봐서 우리 매장에 지원한 진짜 의도를 끌어내고 마무리해. 물론 기본 정보들은 다 얘기해야지. 희망 근무 시간, 요일, 주휴수당 문제 등등. 미안해. 오빠 좀 늦을 거야. 회사에서 급하게 보고 하나 하고 출발하는 중."

"좋은 사람 뽑았으면 좋겠다. 매니저로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오면 좋겠는데."

"일단 여러 명 뽑아서 대장 한 명 키워야지."

"그러자. 오빠 빨리 와.~"


그로부터 30분 후 아들이 카톡으로 딸에게 물었다.

"거의 도착. 면접하고 간 사람 어때?"

딸이 대답했다.

"ㅜㅜ 아무도 안 왔어. 한 사람은 다른 데 됐다고 못 온다고 연락 오고."

"다른 두 명은?"

"연락도 없어. ㅜ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애들이 그래."


그 후로도 두 번에 걸쳐 두세 명씩 면접 일정이 잡혔는데 반 이상이 안 왔다. 대개 연락도 하지 않고 안 왔다. 한 명은 면접 때 말없이 빠지고는 다음날 전화로 급한 일을 까먹고 있었다면서 다시 면접일을 잡아 달라고 했다. 다시 날을 잡아 놓았는데 또 전화를 하여 면접일을 바꿔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냥 탈락시켰다고 한다.


면접 보고 나서도 사람들은 계속 빠져나갔다. 같이 일하자고 합격 메시지를 보내면 다른 데 일하기로 했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합격 통지를 하루만 미루면 그 사이에 이미 다른 곳에서 모셔가 버렸다.


문제는 이때부터 사람들이 지원을 해오지 않았다. 처음 며칠간 10여 명이 지원한 이후 지원자가 뚝 끊어졌다. 모집 광고를 다시 냈는데도 지원이 없었다. 고요한 시간이 일주일을 지나가자 우리는 위기감에 빠졌다. 지원자의 인상이 나쁘다느니, 사진을 잘 못 찍었다느니 하던 말들은 쑥 들어갔다. 일단 면접부터 보자고 했다. 사실 마스크 쓰고 모자 쓰고 일하니까 인상보다는 목소리와 어투가 더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면접을 한 명이라도 보기로 한 날은 나까지 긴장이 되고 면접 시간을 초조히 기다릴 정도였다. 딸이 면접 장소로 가면서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 면접 가기도 무섭네. 안 올까 봐."

아들이 답글 했다.

"안되면 우리끼리 버텨봐야지."

내가 물었다.

"혹시 나도 종일 근무조 해야 되는 거냐? 일주일 내내?"

아들이 말했다.

"아니, 용병을 구해야지."

"안 구해지면 어쩌냐. 나라도 나가야지."

"엄만 할머니 봐야지. 처음 계획대로 엄만 점심 피크 때만 와서 설거지 도와줘."

"그럼 물류 받는 날만이라도 내가 새벽에 가서 받고 다시 집에 왔다가 점심때 출근할까?"

"안돼. 엄마 허리 끊어져."

"..."


이날도 딸은 허탕 쳤다. 오픈 일주일도 안 남은 날부터는 진짜 마음이 불안했다. 그 후로 지원을 해온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자영업 하는 사람들이 사람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말을 실감했다.


나는 평생 여섯 번 사업자등록증을 냈었는데 한 번도 알바 사이트에서 직원을 뽑아본 적이 없다. 다른 회사를 인수한 경우도 두 번 있었지만 두 번 다 기존 직원까지 인수했었다. 당시에는 직원까지 인수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회사가 기울어진 후 완전히 문을 닫을 때까지 남아준 직원들도 있었다. 그런 직원들은 지금도 서로 가족처럼 지낸다. 나중에 만든 회사들은 1인 회사였는데 이때도 임시 용역이 필요하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식의 인력 수급을 해와서 나는 직원 뽑는 문제가 고충이었던 적은 없었다.


사업 유형이 달라서일 수도 있다. 나는 일반 사업체였고 아이들이 하는 건 프랜차이즈 음식서비스업이니 분명 다르긴 하다. 그래도 나는 기존 점주와 함께 일하던 아르바이트생들을 인수하면 안 되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 부분은 아이들이 분명히 말한 적이 있었다. 서비스업은 처음 교육이 제대로 돼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네는 새로 사람들을 뽑아서 자기네 식으로 가르치고 자기네 매장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책임자이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용병을 찾아 나섰다. 휴직 중이던 딸은 아예 퇴직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기 주변에서 현재 취업 준비 중이거나 재학 중인 친구들에게 부탁을 했고 아르바이트생 구할 때까지만 도와주기로 하고 대타 두 명을 구했다. 오픈 3일을 남겨놓고 우리 식구 3명과 딸의 친구 2명, 아들의 친구 1명, 아르바이트생 2명으로 겨우 빡빡한 스케줄표를 짜놓고 대기 중이다.


그 사이 나는 엄마가 침대에서 혼자 몸을 뒤척이지 못하는 지경이 될 경우에 대비해 욕창 예방 매트리스와 환자용 방수 매트리스를 사놓았다. 엄마를 돌볼 요양보호사 한 분도 예약해 놓았다. 


엄마에게 요양보호사를 부르자고 설득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내가 일하러 나가있는 시간은 이동 시간을 포함하여 네다섯 시간이 될 텐데 엄마는 자꾸 그 시간 동안 혼자 있겠다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와 있는 게 싫다는 것이었다. 근처에 사는 친인척을 부르면 어떻겠느냐는 말도 했다. 그건 내가 싫었다.

"엄마, 그런 거 다 빚이야. 일하러 오는 사람이 더 좋아. 돈을 지불하는 게 깔끔해."

"하지만 요양보호사가 답답할 거야. 내가 아무 말도 안 하잖아."

"엄마가 그 사람을 돌보나? 그 사람이 엄마를 돌보는 거지. 엄마가 왜 그 사람 걱정을 해?"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

"아니, 애들은 바빠 죽겠는데 엄마가 죽으면 장례 치른다고 난리 날 텐데 그건 아니지."
"그렇겠구나. 지금 죽으면 안 되겠네. 그러면 날 요양원에 보내고 네가 하루종일 가서 일 봐줘."

"그건 안돼. 늙은이가 매장에서 왔다 갔다 하면 장사 망해. 나는 가게 바쁠 때 주방에서 설거지만 해주고 한산해지면 조용히 빠져나와야 해. 오후 3시면 집에 올 거야. 그러니까 엄마가 요양원에 갈 필요는 없어."

"에효, 애들이 기를 쓰고 돈 벌라고 하는 게 애처로워."

"맞아. 애처롭지. 그러면 엄마는 어떻게 해야 애들을 돕는 거지?"

"내가? 나는... 기도나 열심히 하나?"

"그거 말고."

"내가 정신 차리고 집에 잘 있어야 한다고?"

"정답. 엄마가 씩씩하게 버텨줘야 한다는 거지.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요즘 화장실도 혼자서는 잘 못 가잖아. 집에 엄마가 혼자 있으면 내가 엄마 걱정돼서 일을 잘 못해. 그러니까 도와줄 사람을 부르자고."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해.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


요양보호사가 사전에 인사를 나누러 집에 왔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은 채 걱정스러운 얼굴로 요양보호사에게 말했다.

"아줌마가 여기 오면 답답할 거야. 내가 말을 잘 안 해서."

"아유, 괜찮아요. 옆에서 제가 얘기하고 그럴게요."

엄마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앞으로 잘 봐줘요."


이제 3일 후면 오픈이다. 준비는 어수선한데 사실 나는 기분이 좋다. 아이들이 내 시급은 효도시급이라며 15,000원을 주겠단다. 이익금 배당도 10%를 배정했다. 땡잡았다.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알바를 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시작하기 전에 마음이 불안했었다. 일을 잘하지 못할까 봐 항상 걱정이 앞섰다. 하기 싫은 적도 많았다. 지금은 다르다. 아이들이 주인이니 내가 일을 좀 못해도 잘릴 걱정이 없다. 열심히 하면 한 만큼 우리한테 돈이 쌓인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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