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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Sep 04. 2023

여성기업확인서

나이 든 여자의 사업이야기 / 재창업 3개월 차

나는 약 40년간 여러 월간지에서 일했다. 10년은 취재 기자로, 30년은 광고 영업을 했다. 어느 쪽이든 나는 평생 데드라인 속에서 살아왔다. 잡지는 매월 제 날짜에 발간이 돼야 하므로, 기사든 광고든 마감 시간을 어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일상생활에서도 나는 데드라인을 정하며 살았다. 공휴일에도 하루 일과를 시간별로 배분해 놓고 건건이 데드라인을 정해서 시간을 체크하며 보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래왔다. 지나쳤던 건지 모르겠다.


좋은 점도 있었다. 고객과, 혹은 친구와 시간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켜졌다. 내가 지킨다기보다 지켜졌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틀림없이 늦었다 싶은 때도 이상하게 맞춰지곤 했다.


데드라인 인생 때문에 생긴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아마 같은 선상의 얘기일 텐데, 나는 내가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안 한다.  말을 꺼냈으면 반드시 지키려고 기를 쓴다. 내가 그렇다 보니 나는 누가 나에게 빈말로 어쩌고 저쩌고 호의를 표하는 걸 싫어한다. 나에게 뭔가를 어떻게 해주려고 했는데 어찌어찌하여 상황이 안되었다고 쓸데없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도 싫어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겉으로는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당신은 신뢰할 수 없는 인간이야.'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백 프로 엄격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 성향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내 성향을 요즘 통으로 깨부수고 있는 중이다. 어쩔 수 없이 그러고 있다. 지난 7월 초, 한 공공기관의 브로슈어 제작을 맡았는데 7월 말에 이미 납품하고 수금까지 끝났어야 할 일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나 때문이 아니라 하늘 같은 고객의 사정 때문에 그렇다. 나는 내가 말한 날짜에 반드시 원고를 써 보내고, 디자인 수정 및 교정을 해서 보내지만 고객은 내가 기다리다 지쳐서 연락할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일주일을 그냥 보내곤 했다. 두 달 동안 매주 겪고 있다. 전화를 하면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그들의 사정 이야기가 한참 들려온다. 이해는 하겠는데 나는 너무 답답해서 가슴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그래서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다 보니 내 성향을 깨부수는 방법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공공기관 일을 하다 보면 흔히 겪는 일이라고 한다. 상위 기관에서 명령이 내려졌거나 하여 자기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우가 아닌 이상 데드라인은 없고 일은 하염없이 늘어지곤 한다니 내가 참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돈도 나올 터이니 도 닦는다고 생각하고 최종 컨펌을 내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원래 내 계획은 지금 맡은 브로슈어를 납품하게 되면 그걸 들고 영업을 다니려고 했었다. 그런데 언제 끝날지 모르게 되어 할 수 없이 1차 디자인 컨펌이 난 것을 프린트해서 영업을 시작했다. 영업처도 광범위하게 할 수는 없었고 이 기관을 알 만한 곳만 다녔다. 영업 왔다고 하면 대개 명함이나 놓고 가라고 하기 때문에 간단한 상황극을 하나 연출했다.


 일단 사무실로 들어가 문 앞에 있는 아무나 붙들고 정중하게 묻는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혹시... 이곳 기관 안내 책자를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러면 대개 책자를 찾기 시작하면서 물어온다.

"어디에서 나오셨어요?"

나를 자기네와 관련이 있는 다른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인 줄 아는 것이다. 평소에 기관에 궂이 찾아와 기관 안내 책자를 얻어가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빚어지는 착각이다. 그러면 나는 마치 깜빡했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명함집을 꺼내 명함을 하나 내밀고는 아직 최종 컨펌이 나지 않은 프린트 물을 보여주면서 말한다.

"아, 네. 저희는 인쇄 책자를 만드는 업체인데요, 자료 조사차 나왔어요. 지금 이 기관의 브로슈어를 만드는 중인데요, 최종 인쇄 들어가기 전에 다른 기관 브로슈어를 보고 참조 좀 하려고요. 여기 안내 책자 하나만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직원이 다소 떨떠름한 표정으로 기관지를 하나 주면 다시 질문을 한다.

"인쇄물 담당하시는 분은 어느 분이시죠? 온 김에 인사를 좀 드렸으면 해서요."

담당을 가르쳐 주면 얼른 다가가 깍듯이 절을 하고 명함을 내밀며 인쇄물 계획이 있는지 등등 말을 나누는 것이고, 만일 지금 자리에 없다고 하면 담당자 이름만 받아온다. 이름을 가르쳐줄 수 없다고 하면 나중에 전화로 인사드리겠다고 물러나면 되는 것이다.


8월 중 3주 동안 30군데를 돌았고 나의 고객 리스트가 업데이트되기 시작했다. 그중 세 군데는 앞으로 일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인쇄물 계획이 있다고 했고, 아직 고정 거래처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세 군데 모두 일을 못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그중 한 군데에서 조언을 해줬다. 공공기관은 사회적기업이거나 협동조합, 장애인기업, 여성기업을 대상으로 수의계약을 할 수 있으니 그런 쪽 확인서를 받아 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장 여성기업확인서부터 신청했다. 다른 확인서들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표인 내가 여성이긴 하지만 여성기업확인서는 신청한다고 당장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 혹은 여성들이 기업 경영의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서류 조사와 현장 조사를 먼저 받아야 했다. 3주 이상이 걸렸고 드디어 승인이 났다.


현재 제작 중인 브로슈어 디자인 외에, 여성기업확인서를 추가해서 들고 다시 영업을 재개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여성기업신청을 하라고 조언해 준 곳은 이미 다른 업체를 선정했다고 한다. 그곳은 이미 기획이 끝나 있던 상황이어서 내가 여성기업확인서를 받아 견적서를 넣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었다. 다른 두 곳은 아직 시간이 있었고 지금 진행하는 브로슈어 인쇄가 끝나면 그걸 들고 다시 찾아갈 예정이다.


집에서 가까운 다른 공공기관들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갈 곳은 차고 넘쳤다. 서울시 안에서만도 수백 군데는 될 것 같다.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진짜 공공기관이 많다는 점이었다. 나이 든 여자가 창업을 해서 한번 뛰어볼 수 있는 현장이 생각보다 참 많았다. 사회적 경제라는 것이 이번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많이 퇴색된 개념이긴 하지만 어쩌면 K-공공기관도 수출품이 될 수 있겠다.


10월까지 두 달간 더 영업해 보고 영 희망이 안 보이면 다시 알바를 해야 할지 모른다. 딱한 노릇이긴 한데, 실은 내가 지닌 예비비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여성기업확인 신청을 한 후 현장조사 과정에서 비대면으로 만난 전문위원은 1시간에 걸쳐 여러 질문을 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물었었다.

"현재 귀 회사의 기업 가치를 말한다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창업한 지 이제 두 달도 안 되었으니 아직 기업가치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업종으로 보면, 웹진 쪽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지만 종이산업은 사양산업이니 미래가치를 자신할 수도 없을 것 같고요, 다만 존재 의미 정도를 말씀드려 본다면, 평생을 열심히 일해온 사람이 노인이 된 후, 산업현장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사례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 업무 시스템은 1인 기업 4개와 프리랜서 네 명이 일감이 있을 때마다 몇 명씩 모여 일을 나눠하고 있는데요, 그들 중 세 곳이 60대 중반이에요. 인구가 줄어서 갈수록 노동력이 부족할 텐데, 미들플러스(50세~74세) 세대가 일정 부분 노동력을 책임져 주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저의 희망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해 보자는 건데요, 일할 곳이 없어서 내가 그 일터를 마련한 셈이니, 앞으로 한번 잘 가꿔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습니다."

전문위원이 푸근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는 경력과 자산이 있다는 건 사실 큰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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