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가 어른들에게 시험을 위한 배움이 아니라 오로지 배움 자체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그들이 삶에 대한 허무함을 조금이라도 덜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현실적 손익을 계산 하기보다 그저 그들과 함께 걸어가는 그 길에서 가지게 될 나의 기쁨이 어쩌면 내 삶을 더 풍족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딱 5년만 앞뒤 계산을 하지 않고 5년 후 그러니까 2027년 12월,
그때 즘 모임은 어떠한 형태의 모임이 되어 있을까?
그 5년의 미련스러움이 나에게 어떤 배움과 성장을 가져다 줄까?에 대한 상상을 하며
그냥 시작했다.
❚상상을 꿈으로, 그리고 그 꿈을 현실로
김경일 교수 (아주대 심리학과)의 강연을 우연히 유튜브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우리는 자신의 꿈은 교사, 의사, 변호사, 경찰, 간호사, 기업가 등등 어떤 특정 직업, 즉 명사로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 직업이 사라지거나 그 직업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꿈도 저절로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특정 직업을 자신의 꿈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특정 상황이나 시대의 흐름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 취약해진다. 외부적 요인에 의해 꿈이 완전히 사라지는 좌절을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꿈은 동사로 말해야 한다고 한다. 꿈은 자기 자신의 내부적 요인을 근간으로 자신이 즐기는 행위로 정의해야 한다고 한다. 나의 꿈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남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것입니다.”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등등..
여러분은 10년 후 어떤 모습을 상상하시나요?
그 상상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계시나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10년하고 한 두해가 지나면 나는 평생 해온 내 일, 영어교사를 그만해햐 하는 그날이 온다.
10년 후 그 즘을 솔직히 상상하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그 날이 온다면 뭘 하고 싶을지 생각하는 건 조금 더 쉽다.
나는 아마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하고 싶을 것 같다.
영어를 가르칠지, 한국어를 가르칠지, 영어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칠지, 어른을 가르칠지, 청소년들을 가르칠지, 우리나라 사람을 가르칠지, 한국일지, 해외 다른 나라일지... 그건 아직 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가르치는 행위를 통해 남과 함께 배움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그런 삶을 계속 살아가고 싶다.
이 모임을 시작한 작년,
나에게는 그런 꿈이 막연히 있었다.
그러면 내가 청소년들에게 영어 교과목만 가르치는 경험만 해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어른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발걸음이 그 꿈으로 향하도록 걸어보기로 했다.
내 안에 현실적인 계산은 매 순간 일어났고 지금도 그렇다.
유학으로 얻은 나의 배움이 행여나 헛된 것으로 취부되지는 않을까?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열심을 떨다 세월을 헛되게 보내는 건 않을까?
하지만 현실적인 계산을 한들 내가 당장에 뭘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누구는 그 학위로 승진을 해보는 데 좀 더 노력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먼 미래의 내 모습에는 누군가를 관리하거나 끝없는 서류 작업을 하는 모습은 조금도 없다. 그런 일은 나를 조금도 설레이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꿈은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남을 관리하는 것 보다 남과 함께 걷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나는 더 즐겁고 설렌다.
배우려는 사람들과 같이 걷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더 좋다.
해가 바뀌면 학교에서는 부장 교사로 할 사람과 담임을 할 사람을 매번 정한다. 매번 나는 부장 교사직은 기를 쓰고 거부하고 남들이 기피하는 담임은 매년 자청한다.
나의 꿈은 남과 함께 배움의 길을 같이 걸어가며 가르치는 것이다. 미국 유학을 한 후 귀국해서 여전히 예전에 하던 그 일,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이어서 한 것 이외에 새롭게 시도한 게 바로 이 스터디 모임이다.
❚어른들의 배움터
정식 교육기관이 아닌 곳에서 어른을 대상으로 2년째 스터디를 하며 어른들의 배움터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이 스터디 모임은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나 미국에서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갖게 된 경험과는 사뭇 다르다.
- 나눔
어른들은 나눔의 가치를 이미 알고 있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남과 나누는 걸 어른들은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게 자신의 경험이든 자신의 지식이든, 자신의 지혜든, 자신의 고민이든,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먹거리든 이미 기꺼이 남과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 동네 우물 같은 곳
어른이라고 꼭 돈이 되거나 무슨 일이 있어야 누구를 만난다고 하면 어른들의 삶은 얼마나 따분하고 재미없을까? 어른들의 배움터는 예전 동네 어귀에 있었을 법한 동네 우물 같은 곳이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 모이는 곳이 아니라 그저 누구를 만나는 것 자체가 즐거운 그런 곳이다. 내가 사는 근처에 나와 가치가 비슷한 사람들이 현실적인 계산 없이 편하게 만나는 그런 동네 우물이 많았으면 한다.
- 샘물처럼 흐르기
새로운 물은 산기슭에서 내려오고 있던 물은 아래로 흘러가는 게 순리이다. 그걸 막을 방법은 없다. 그걸 슬퍼하거나 아쉬워하면 애초에 그런 샘물을 갖지 말아야 한다. 2년째 모임을 하며 늘 마음에 두는 생각이다. 어느덧 멤버들은 초창기 멤버 두 세명을 제외하고 거의 모두 새로운 사람들로 바뀌었다. 그 초창기 멤버 중 한 명도 다음 모임을 끝으로 이제 모임 참석을 못 하게 될 것 같다고 전해왔다. 그렇다 그런 거다.
‘어쩌면 그 샘물이 마르면 나의 역할도 없어지는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그 샘물 지기를 그만두리라’ 마음을 먹고 있다. 여러 가지 일로 바쁜 일정이 있으면 내심 그 샘물이 마르기를 바라기도 한다. 5년은 그냥 해보리라는 나와의 약속 때문에 내 의지로 그만둘 수도 없고 다만 ‘그 샘물이 말랐으니 어쩔 수 없지’하며 기꺼이 그만두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샘물은 마르지 않고 2년째 흐르고 있다. 이번 모임도 더운 여름의 한 중간이지만 어김없이 모두들 자리를 빛내주셨다. 게다가 한 분이 친히 농사지으신 메리 골드 티를 시원하게 만들어 오셔서 함께 나눠 마시며 즐겁게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 샘물이 마르기 전까지는 나와의 약속을 계속 지켜보리라 새롭게 다짐을 하며 꿋꿋이 이 모임을 지켜나가고 있다.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아직 나에겐 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무언가가 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