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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 Soon Nov 12. 2024

#56. 영어 스터디 서른여덟 번째 모임 후기

: 나의 아이디 확장 

❚절로 감탄이 나오는 가을, 소소한 행복 쌓기

단풍나무 노란 잎이 나무 가득 소담스레 달려있다. 일 년의 가장 아름다운 그 찰나와 같은 요즘이다. 애써 그 순간을 오래 머릿속에 담으려는 듯 운전하다 말고 힐끗힐끗 가로수를 본다. 그 밝은 빛이 주는 환함이 이처럼 아름답게 느낀 적이 있었을까? 그저 당연한 자연이었지만 이제야 그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감탄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긴 듯.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의 힘은 그렇게도 달라져 있다.      


초가을 가까운 분의 죽음을 바라보며 더욱 깨달은 시간의 유한함.

어이없을 만큼 우리 가까이에 있는 죽음이라는 끝, 

그럼에도 늘 변함없이 찬란하게 아름다운 자연.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자연에게 주어진 끝없는 시간,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존재하는 죽음.

하지만 죽음이 참 멀리에 있을 것 같은 착각.

그럼에도 그 하루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     


하루라는 시간을 행복이라는 무형의 대상으로 채우고자 또 우리는 만났다. 그 가을 한 가운데 별스럽지도 않고 별달리 크지도 않은 그 소소한 감정을 채우기 위해 주말 오전을 기꺼이 쓴다. 너무 소소한 감정이라 가끔은 모임 운영을 하는 나 역시 현실 자각 타임이라는 걸 해보기도 한다.      


▮요즘 살아가는 법

5년의 미국 생활과 귀국이라는 많은 외부의 변화를 맞이하며 다른 외부의 어떤 자극을 받는 것 보다 내 안을 들여다 보는 게 나에게는 다른 어떤 일 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외부의 일들에 대해 잠시 스위치를 꺼두기로 했다. 굳이 뉴스나 드라마, 영화를 챙겨보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컨텐츠의 소비자로서 역할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하지만 이따금 내가 향하는 방향이 너무 엉뚱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면 요즘 사람들의 사는 방식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 보곤 한다. 요즘 피드로 자주 들어오는 건 송길영 작가의 강연과 인터뷰 영상이다. 그의 이야기에는 흥미롭게 들어볼 부분이 많다. 여러 채널에서 시대의 흐름에 대해 그가 한 설명 중에 내 머리에 남는 키워드는 이렇다.  


- 공유의 시대 : 자신이 알고 있는 노하우를 서로 서로 공유하며 각자 발전이 생기는 시대

- 자신의 본진을 찾는 시대 : 남이 무엇을 쫓고 지향하는 지에 대해 파악하기 앞서 애초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그 본진을 탐색해야 할 시대

- 발견되는 시대 : 자신을 남에게 알리고 다가가는 데 힘쓰기 보다 자신의 본진을 향해 열심히 매진하다가 그 진가가 남에 의해 발견되는 시대

- 행복 그 자체를 위한 시대 : 혹여 발견이 되지 않고 인기, 경제걱 이익과 같은 외부 보상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 기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몰입하며 느낀 행복이 이미 충분한 보상이라 생각하는 시대

- 자신의 도반과 함께 성장하는 시대: 상하 수직의 관계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도반)과의 연대하고 함게 성장하는 시대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는 일을 가져야 하는 시대: 타자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되어선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내가 몰입을 경험하는 그것이 바로 내가 깊이 파고들어야 할 곳임을 이해해야 하는 시대      



▮고등학생 아들의 질문

사실 위의 영상들을 챙겨서 보는 데는 나의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함도 있지만 이제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는 고등학생 아들에게 좋은 코칭을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제 문과, 이과의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아들이다. 자신의 흥미와 관심은 문과 쪽에 있다는 건 아들도 알고 나도 안다. 그만큼 아들의 성향은 다분히 문과적이다. 아들은 책 읽기를 좋아하고 역사와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다. 농구라는 스포츠를 통한 팀웍도 즐기는 편이다. 웬만한 정보는 영어 영상과 영어 검색으로 찾을 만큼 영어가 편하다. 하지만 그런 세월을 보내느라 아들은 우리나라 아이들이 주로 한 양치기식 수학 공부는 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입학 후 수학에 대한 자신감은 조금씩 하락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아들은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도 문과 이과의 결정은 쉽지 않다. 아들의 국어 과제 중 자신의 최근 고민을 쓰는 게 있었다. 아들의 고민은 자신의 성향은 문과이고 60%정도 문과로 결정이 기울었지만 여전히 문과의 진로가 불투명하여 선뜻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은 아들이 그런 과제를 하면서 나에게 문과 쪽 직업은 어떤 게 있냐고 물었다.     


이제 고성장 시대를 살아온 기성 세대들에게는 자신의 진로를 구체화 하기란 상대적으로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살아갈 시대는 그야말로 저성장 시대일 것이고 디지털 시대로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 직업의 세계 역시 지각 변동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구체적인 꿈을 꿔’라는 말은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어떤 꿈을 꿔야 할지 모르는 현재 어떤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알기란 역시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넋놓고 시간이 가도록 내버려두는 것 역시 불안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네들은 인생을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니 삶의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체득한 지혜라는 것도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 그들의 발달 단계에서 과연 문과 이과의 선택을 단호하게 할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이과를 선택했다가 3월이 되기 직전에 문과로 바꾼 경험이 있을 만큼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며 자신에 대한 질문을 좀 더 해보라 덧붙였다.     


저 성장 시대 이과든 문과든 바로 취업을 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어느 분야든 긴 준비 기간이 소요될 것인데 본인이 즐길 수 있는 것이면 그 준비 기간도 기꺼이 감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취업이 될 가능성이 높은 쪽을 택하기 보다 자신이 즐기는 쪽으로 방향을 먼저 접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즐겨 하다 보면 당연히 그 분야의 역량은 꽤나 높혀져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넓은 지구촌 어디에 너를 위한 직업 하나 없겠니? 변화의 시대, 우리가 가져야할 삶의 지표는 점점 먼 미래가 아닌 오늘 하루 나의 온전한 행복과 내가 하도록 부여받은 나의 본진을 최고치로 발현시키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문과 진로를 선택하고 싶어도 주저하는 아들을 위해 내가 해준 말은 결국 내가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나의 다음 직업

나의 첫 직업이 끝이 나고 나면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이제 어른이 되려고 준비하는 아들 만큼이나 중년에 접어든 나 역시 직업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제2의 직업이나 어른을 위한 자기계발 관련 강연에서 현재 자신이 하는 직업과 연관되는 일을 찾으라 제안한다. 아울러 첫 직업에 있는 동안 그 직업에서 요구하는 이상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주도성과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다행히 나의 첫 직업인 교사는 나의 흥미과 관심, 적성과 참 잘 맞다. 이 직업을 하며 내가 키우고 있는 역량 또는 내가 좀 발달시킨 역량은 무엇일까?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자신을 탐색하듯 나 역시 나를 탐색해 보게 된다.      


사람을 연결하는 힘, 사람을 이끌고 함께 나아가는 힘, 영어라는 언어를 연마하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며 가지는 자기효능감, 거기에 가치를 두는 나의 삶의 방향성.....     

그런 나의 역량을 발휘하거나 강화시키는 구체적인 행동이 나의 일상에서 반복되고 쌓이면 그 행동들이 또다른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계가 되겠지? 그 행동이 어쩌면 나의 제2의 직업이 될 지도 모르겠고 시간을 바칠 만큼 보람된 어떤 일이 될 수도 있겠지?       


▮사서 고생하는 엄마를 지켜보는 아들

나는 격주 토요일마다 사서 고생하기로 했다. 그걸 하지 않으면 내가 그 시간에 뭘 하겠어?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그 시간은 늦잠을 자거나 빈둥거리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며 보낼 게 뻔하다. 2년째 토요일 오전 시간 스터디를 운영이라는 행동을 반복한 덕분으로 나는 중등 영어 교사라는 나의 아이디를 조금씩 확장시키고 있다.      


스터디 결과물과 매번의 운영 후기를 이렇게 글로 써나가는 이 과정 역시 사서 고생이다. 하지만 이 일 역시 나의 아이디를 확장 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나의 스터디 운영과 자료의 기록, 그 과정에서 느끼는 나의 생각이나 마음에 대한 기록,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를 알아가고 나의 역량을 좀 더 강화시켜주고 있다. 


이 일이 나를 위한 일이긴 하지만, 먼 훗날 나의 이런 솔직한 마음의 기록이 어쩌면 아들의 도전에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사진” 앨범처럼 지난날의 엄마를 회상하게 만드는 엄마의 “글” 앨범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또 한번의 스터디 운영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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