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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Jun 12. 2024

전시회에 가다

취향의 멋

오늘의 소비 요약


총 사용비용 : 1.8 만원

가성비 2.5/5

재구매 의사 3/5

좋았던 점 : 몰랐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아쉬웠던 점 : 휴일에 방문해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는 전시회를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화가는 학교 미술시간에 들었던 사람들이 전부이다. 한국에서는 전시에 가본 기억이 없고, 오래전 유럽여행에서 스치듯 본 것이 전부이다. 유럽에서 봤던 전시는 모두 도슨트와 함께였다. 작품을 감상한다기보다, 그 작가의 생에를 알게 되는 정도였다.


'힘드니까 그림을 거치게 그렸나 보다'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내가 사진 같은 그림을 좋아하는 건지, 개성이 있는 그림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아직도 잘 모른다) 몇 시간씩 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멋진 그림 앞에서 어떤 대단한 감동을 받아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꼈다.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한 동료가 '타나카 타츠야' 전시를 보고 온 소감을 말했다.


나는 "전시 좋아하세요?" 하고 물어봤다.

"저 미술 작품 보는 거 좋아해서. 타나카 타츠야 전시 재미있더라고요. 추천!! "

동료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감상을 당당하게 말하는 게 너무 멋지게 느껴졌다. "취향이 있는 사람이 멋있다" 말만 들어왔지, 실감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그 말의 의미를 느꼈다.

작은 호수 위에 떠있는 배는 작은 바람에도 방향이 바뀌곤 한다. 전시에는 관심이 아예 없던 나였는데, 그 동료의 한마디가 바람이 되어 일었다.


내가 본 전시는 '타나카 타츠야'의 전시였다. 일상 속의 한 장면을 미니어처로 만들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전시하는 방식이었다. 전시에서 '미타테 마인드'가 반복해서 언급됐다. 이는 '일본 고유의 미학적 개념으로 익숙한 사물을 새롭게 다시 바라보는 마음'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면봉을 조명으로 생각한다던지, 브로콜리를 구름으로 생각한다던지. 하는 식이다. '미타테 마인드'로 바라본 기발하고 귀여운 작품과 사진이 많았다. 작품 그 자체로도 귀여웠지만 제목이나 설명과 함께 볼 때 더 재미있었다.

전시를 감상하며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유사성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재료는 주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쉽게 지나치는 것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작가 '타나카 타츠야'의 하루하루가 궁금해졌다. 그의 작품만큼 기발한 생각으로 가득 찬 매일이려나. 영감으로 가득 찬 세상에 살고 있겠지.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졌다.

 

전시회가 거의 처음이었던 나와 친구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우리 집 거실에 걸고 싶은 작품을 골라보자'

전시를 일종의 쇼핑이라 생각한 셈이다. 기준이 있으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거실에 건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고려해보지 못한 색깔의 조화, 정물의 배치 등을 고려하며 보게 되었다.

 빨강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은 걸로 보아, 작가님이 좋아하는 색이구나 싶었다. 또 나의 취향도 알게 되었다. 나는 겨울 느낌이 나는 사진을 좋아하더라. 사진을 보기 전까진 나도 내 맘을 잘 몰랐다.

우리집 거실에 걸고 싶은 작품


전시를 다 보고 난 후에 서로 어떤 작품을 골랐을지 맞춰보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에 대해서 고른 이 유과 마음에 드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오래 본 친구인데도 이런 취향을 공유한 적은 없었다. 서로의 취향에 대해 알게 되어 좋았다.


 미니어처 작품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구도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는 게 재미있었다. 내가 사진 찍는 것을 재미있어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작가의 의도대로, 혹은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보이도록 찍는 것이 흥미로웠다. 마음에 드는 결과물도 있었다. 어떤 작품은 보자마자 "예쁘다!"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정확히 이유를 설명할 순 없어도, 보고 판단할 수 있었다. 전시를 보며 내가 어떤 것을 예쁘다고 여기는지 알게 되는 것도 큰 재미 중 하나였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에 대해 하나 더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 재미있다.


 세상과 가까운 듯 동떨어진 작품을 보며 짧은 시간에 환기됨을 느꼈다. 현실의 문제에서 벗어나 '미'를 추구한다는 게 새로웠다. '나는 너무 속화된 삶을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가치 중 세속적인 가치만을 쫓아 산 게 아닐까.

다양한 가치를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어떤 가치는 수치를 측정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움을 알 수 있다. 반면 돈을 꼭 숫자로 확인하고 싶다. 돈을 쫓는 것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만족이랄 게 없이 기준이 끝없이 높아진다. 한국 사회는 특히 속화된 사회이다. 물질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 열광하는 것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취향이 있는 사람은 멋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돈을 써야만 취향을 알 수 있어서, 취향이 있는 사람이 돈이 많으니까 멋있다고 여기는 걸까 생각했다. 내 머릿속은 단단히 속화되었다. 그래서 의식하지 않으면 자꾸 돈으로 가치를 매기려고 한다.

나는 '돈'말고 다른 가치를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미'라고 느끼는 것을 알고 싶어 졌다.

예쁜 것을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예쁘다'는 감각을 날카롭게 가꾸는 것.

앞으로 전시회를 종종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돈을 쓰니 내 취향을 알게 되었다.

돈을 '잘' 써야 한다. 낭비하지 않고 나를 아는데 돈을 쓰려면 그 나름대로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돈을 쓰니 무엇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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