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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Jun 05. 2024

밀대걸레를 사다

돈도 부지런해야 쓰지

오늘의 소비 요약


총 사용비용 : 0.9 만원

가성비 : 4 /5

재구매 의사 : 4/5

좋았던 점 : 기능도 가격도 최고.

아쉬웠던 점: 없음




다이소에 가면 늘 사람이 많다. 나도 운동 전 다이소 아이쇼핑을 종종 한다. 다이소 물건 특유의 색감이 있다. 형광 빛이 살짝 도는 초록, 진짜 당근색. 디테일은 부족할지 몰라도 아이디어가 좋은 물건이 가득하다. 자취생이라면 다이소에 물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정돈된 집을 가꾸는 데에 로망이 있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꼭 주부처럼 집구경을 했다. 깨끗한 집에 놀러 가면 그 친구가 참 부러웠다.

자취를 시작하고 수납에 한창 꽂혔었다. 다이소에서 자주 드나들며 수납함을 사들였다. 분명 살 때는 깨끗하게 정리할 자신이 있었는데, 집에 들여다 놓으면 이상하게 번잡스러웠다. 수납을 했는데 자리를 더 많이 차지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깨끗함은 그런 수납함에서 나오는 게 아님을 알았다. 부지런함이 유일한 방법이다. 자주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이 최고다.


원룸에 살다 보니 강제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물건을 소유해서 보관하는 것 자체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지방출신이다. 대학생 때 처음 상경해서 코로나 1년을 고향에서 보낸 것을 제외하고는 서울에 살았다. 대학생 때는 매년 이사를 다녔다. 방 한 칸에서 친구와 함께 살기도 했다. 이사를 다닐 때 물선이 많으면 돈이 많이 들었다. 짐 싸는데도 너무 힘들었다. 물건을 많이 두지 않게 되었다. 당장 내일 이사를 가도 빠르게 짐을 쌀 수 있을 정도였다. 사고 싶은 게 있는데 집에 둘 수 없으면, 그냥 사진으로 보고 만족했다. 진짜 필요하면 빌려 썼다.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도 한몫했다. 나는 한 가지 기능을 하는 물건은 딱 하나만 둔다. 예를 들어 가위는 잘리기만 하면 되니까, 딱 하나만 구비한다. 그걸로 주방에서도 쓰고, 종이도 자르고 한다. 물건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게 잠자고 있는 건 싫다. 그래서 물건을 살 때 집에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게 있는지 머릿속으로 한 번 훑어보곤 한다.


기능만 얼추 한다면 계속 그 물건을 쓴다. 그래서인지 물건을 오래 쓰는 편이다. 특히 오래 쓴 물건들이 있다.


하나는 어릴 때 생일선물로 받은 도모쿤 파우치이다. 그때 파우치에 어떤 선물을 담아줬는데, 선물을 기억이 안 난다. 14년째 이 파우치를 쓰고 있다. 찢어질 때까지 쓸 것 같다.


또 하나는 커피포트다. 자취를 처음 시작할 때 샀다. 10년 정도 된 것 같다. 용량이 1L로 적긴 한데, 더 많은 양이 필요하면 두 번에 나눠서 물을 끓인다. 이 친구는 몇 번 떨어뜨려서 레버가 떨어질 듯 말 듯 동작한다. 기기의 전원은 나만 켤 수 있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거든.

다른 사람들이 손대면 레버가 빠져버리곤 한다. 여러 불편함이 있어도 아직 물은 펄펄 끓는다.


마지막은 밀대걸레이다. 네 번의 이사동안 우리 집 바닥을 책임져왔다. 극세사 걸레라곤 하지만 이가 다빠져바렸다. 이걸로 바닥을 닦으면 바닥에 물을 묻히는 느낌이 든다. 바닥 위에서 걸레가 쓱 미끄러진다. 또 걸레를 밀대에 끼워서 쓰는 형식인데, 그 부분이 찢어져서 닦다가 걸레가 빠져버리기도 한다. 이게 상당히 불편했다. 바꾸고 싶은데, 사기는 귀찮았다.

예전에 찍찍이(벨크로)로 걸레를 부착하는 밀대를 본 적 이있었다. 진짜 편해 보였는데, 집에 이미 밀대가 있어 사지 않았다. 걸레에 돈을 쓰는 게 아깝기도 했다. 갖춰놓고 사는 것보다, 이사 갈 궁리가 먼저였다.


이 밀대 걸레로 바닥을 닦고 나면 먼지가 바닥에 모인다. 그럼 앉아서 그걸 휴지로 닦아낸다. 언제부터인가 휴지로 바닥을 닦아내는데 휴지가 까매졌다. 자주 바닥을 닦는데도 바닥이 더러운 것 같아 짜증이 났다. 그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까웠다. 그 자리에서 밀대걸레를 새로 주문했다.


돈을 쓰기로 결심한 이후에 쿠팡 와우 멤버십을 결제했다. 써보니 내일 배송은 진짜 물류 혁명임을 몸소 느꼈다. 물건을 사러 가기까지의 시간은 물론 교통비도 아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써 본 후기를 볼 수 있어서 실패할 확률도 낮았다. 특히 집에 있는 공간의 사이즈를 재서 사야 할 때 편했다. 어떤 공간에 꼭 맞는 것을 구매했을 때 쾌감이 있다.


이번에 밀대걸레를 쿠팡에서 구매했다. ‘밀대걸레’를 검색해서 가장 상위에 노출되는 것을 샀다. 다음날 배송이 왔다. 설레서 새벽에 배송을 받자마자 청소를 했다. 7시도 채 안된 시간이었다. 써보니 너무 좋았다. 극세사의 세심한 정도가 이전 걸레와 정말 달랐다. 걸레가 촘촘하니 앉아서 먼지를 휴지로 닦지 않아도 됐다. 서서 청소를 해결할 수 있다.


이 밀대만의 특 장점이 있다. 걸레를 손대지 않고 빨 수 있다는 점. 밀대에 부착된 틈으로 걸레를 위아래로 훑어주면 먼지가 씻겨나간다. 그때 구정물이 나오는 게 은근 뿌듯하다. 깨끗해지는 느낌이 이전 것과 차원이 달랐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바닥이 막 빛나는 것 같았다. 깨끗한 공간에 들어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공간의 청결도가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깨달았다. 삶의 질이 향상됨을 느꼈다.

 

걸레 다섯 장과 밀대를 합쳐 9000원이었다. (쿠팡 멤버십 회원 할인이 조금 들어간 가격이다). 가격 대비 성능이 진짜 훌륭하다.

그동안 오래된 밀대걸레가 제 기능을 한다고 생각했다. 실은 밀대 봉이 자꾸 빠져 불편했다. 걸레도 너무 오래돼서 성능이 별로였다. 하지만 새로 사기 전까진 기능을 다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게 은근히 청소 의욕을 떨어뜨려 나를 게으르게 만들었다. 깨끗하지 않은 공간에 애정을 붙이기도 쉽지 않았다. 볼 때마다 ‘새로 살까..?’ 마음이 쓰여서 감정소모도 있었다. 여러모로 새로 사길 잘했다. 9000원의 깨달음. 지금까지 소비 중 단연 가장 만족스럽다.




돈을 아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좀 귀찮았다. 돈도 부지런해야 쓸 수 있다.

귀찮음과 아까움 때문에 다른 것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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