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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Aug 13. 2024

내 친구 이야기

나는 많은 것을 받았지만,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 몰랐다.

나에겐 친구 하나가 있다.

걔를 처음 만났던 때를 잘 기억하진 못하지만,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결국 그 모든 게 나에게 흔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친구는 다정했다. 몇 번이고 내가 되어볼 만큼.

그런 다정함을 구태여 티 내지 않았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그 다정함에 눈물이 핑 돌 때가 많았다.


살면서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건 그 친구가 유일했다. 그 애는 진심으로 내가 되었다.

자신이 가진 것들과 충돌해도 끝까지 내가 되려 애썼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안다. 걘 너는 소중한 사람이니 살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나를 소중하게 여겨줘서, 그때 나의 소중함을 처음 깨달았다. 그 애의 인생은 너무 예뻐서 조연들마저 소중하게 보이는 영화 같다. 그 인생의 조연으로 살 수 있다면 평생 그러고 싶다. 가끔은 그런 생각 때문에 살고 싶어지기도 했다.


나는 늘 많은 것을 받고 있다 느꼈다. 어떻게 돌려줘야 하는지 몰랐다.

그럴 때마다 돈을 쓰며 죄책감을 씻어냈다.




우주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와 친구가 된 것은 감히 기적이라 말할 수 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우연의 연속으로 만나게 되었을 테니까. 내일 뜨는 태양에 대해서도 의심하던 때가 있었다. '내일 해가 안 뜨면 어쩌지' 하는. 그럴 때도 그 애가 하는 말은 믿을 수 있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불안할 때면 그 애의 믿음을 빌려 썼다. 지금쯤 그 빚이 눈덩이가 되어있겠지.


소중한 존재를 가진다는 게 두려웠다. 애초에 소중한 게 없으면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소중한 게 생기는 순간 그것을 잃을 걱정을 해야 하니까. 걘 나의 불안을 잠재워주는 말들을 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네가 재미있어서 같이 논건대, 나는 재미있는 게 좋아서"라는 말.

걔가 좋아하는 속성이 나에게 있었다니. 의심도 되면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늘 걔 없는 내 삶을 준비했다. 나에게는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그 친구의 주변은 늘 사랑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런 애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된다. 더 나은 조연이 많을 거다. 걔는 내가 없는 게 오히려 더 나았을 수도 있다. 나랑 친구가 되는 바람에 몰라도 될 그늘을 봐야 했으니까.  그러니 나는 그 친구가 느꼈던 '재미'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 다짐한다.


날뛰고 혼란한 내 마음을 걔는 늘 가만히 지켜봤다. 지친 기색도 내지 않고, 떠나지도 않았다. 그 애의 말들이 진심이라는 것은 우리의 세월이 증명한다. 나는 믿는다. 걘 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살 수 있었다.




오랫동안 너의 친구로 살고 싶어.

그래서 내가 오랫동안 재미있는 사람이길 바라.

나도 언젠가는 마음이 넓어져, 네가 되어봐야지.

그래서 내가 느꼈던 무한한 위로를 느끼게 해 줘야지.

그런 식으로 너한테 진 빚을 꼭 갚을 거야.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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