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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다반사 Sep 05. 2021

최선의 삶을 위해 택한 최선의 선택이 주는 배신감

최선의 삶(Snowball, 2021)

"나한테 왜 그랬어?"

강이(방민아)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매번 선택에 기로에 놓입니다. 그리고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선택을 하게 되죠. 생각의 깊이가 비록 얕을지라도 우리 모두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선택합니다. '최선의 삶'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셈이죠. 영화 <최선의 삶>은 그런 '최선의 선택'이 우리를 배신하였을 때, 최선의 삶이라 생각했던 그 공간이 사실은 최악의 삶이었을 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남들보다 높고 먼데다 낡고 좁은 집에 사는 '강이(방민아 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람(심달기 님)'. 자신의 꿈을 지지해주지 않는 부모님이 보기 싫은 '소영(한성민 님)'. '소영'의 문자 한 통으로 인해 그들은 서울로 향하게 됩니다. 하지만 좁은 집이 싫었던 '강이'가 마주한 것은 반지하의 좁은 집이었고, 폭력으로부터 도망쳤던 '아람'은 서울에서 마저 또 다른 폭력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소영'은 꿈에 대한 좌절을 겪게 되죠. '최선의 삶'을 위해 가출을 선택했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열대야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느 날. '강이'는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찾았고, '소영'은 웃옷을 벗고 잠을 청해봅니다. 더위에 지친 '강이'도 웃옷을 벗고 잠을 청하다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그녀가 본 것은 '강이'를 바라보는 '소영'의 눈빛. '강이'의 살갗을 쓸어내리는 '소영'. 그런 '소영'에게 입맞춤하는 '강이'. '강이'가 꿈꾸는 '최선의 삶'에 '소영'이란 존재가 누구보다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소영'의 최선의 삶에서 '강이'는 그리 특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부하고 있죠. 그날 있었던 일은 실수라며, 미묘한 표정과 함께 '강이'를 바라보고, 괴롭힘인지 장난인지 헷갈리는 장난을 칩니다. 그렇게 '소영'은 '강이'가 없는 최선의 삶을 찾으며, 고등학교 생활을 해나갑니다.


 '아람'은 선택합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작은 것들을 살리기로. 어릴 적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동물병원에서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였을까요? 자기보다 더 연약한 존재를 폭력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온갖 험한 폭력을 견뎌내고 또 버텨냅니다. '아람'이 꿈꾸는 '최선의 삶'은 어쩌면 가장 연약한 존재를 지켜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다 못해 그게 길바닥에 버려진 장갑에게도 감정을 쏟아낼 정도니까요.


 '강이'는 행복했던 순간들을 다시 꿈꿉니다. 하지만 그 꿈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인 '소영'은 '강이'를 계속 부정하기만 합니다. '강이'는 '소영'이로부터 벗어나기로 마음 먹지만, 도망친 곳에서의 삶은 여전히 힘들고 공허하기만 합니다. 그 공허함을 차지해버린, 어느 날 듣게 된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냐'는 한마디. '강이'는 '소영'이 함께하는 최선의 삶을 다시 꿈꾸며 '소영'을 찾아가지만, 이미 '소영'의 최선의 삶에 '강이'는 없어진 지 오랩니다. 자신이 그토록 꿈꿨던 '최선의 삶'을 위해 택한 모든 순간들이 '강이'에게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최선의 선택'이 가져다준 모습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을까요? '강이'는 '소영'을 향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을 TV 속 '소영'의 모습을 보며 오열합니다.


 '강이'가 꿈꾸는 최선의 삶은 이제 없습니다. '소영'이 그랬듯, '강이'도 이제 새로운 '최선의 삶'을 찾아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삶이란 게 매번 야속하기만 해서 '강이'가 택한 새로운 '최선의 삶'도 그녀를 배신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새롭게 마주하게 될 '최악의 삶'에 대해 '강이'는 어떤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될까요? 10대의 청춘에게 가혹한 말이겠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라 소설가 김영하 님의 글을 남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최악의 삶 앞에서도 견딜 수 있는 '강이'가 되길 바라며...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김영하, <오직 두 사람> 중에서


 ★★★★



Etc…


1. 영화 <최선의 삶>을 보다 보면 윤성현 감독의 2010년 영화, <파수꾼>을 떠오르게 됩니다. 세 명의 절친한 친구들이 즐거운 날들을 보내다 어떤 한 사건으로 인해 점차 멀어지고 급기야 파국을 맞이하는 모습에서 말이죠. 하지만 <파수꾼>은 '결과의 이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최선의 삶>은 주인공들의 '선택'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2. 한편으론 10대 소녀의 성장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김보라 감독의 2018년 작, <벌새>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벌새>가 성수대교 붕괴라는 현대사의 한 페이지 속에 있었던 소녀를 다뤘다면, <최선의 삶>은 어디엔가 있을 법한 여고생의 삶을 비춰주는 점에서 보다 공감하기 수월한 편이 있습니다.


3. 영화는 '강이'의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소영'과 '아람'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소영'과 '아람' 각자의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해 약간의 암시만 남겨둘 뿐, 여지를 남깁니다. 이런 점에서 '소영'과 '아람'의 선택에 대한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4. 심달기 님의 삶을 달관하는 듯하면서도 그 속을 알 수 없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연기. 화장실에서 괴롭힘인 듯 장난인 듯 미묘한 표정연기가 압권이었던 한성민 님. 그리고 연기만으로 '배우 방민아'를 각인시켜준 방민아 님. 연말에 한 분만이라도 여우주연상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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