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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다반사 Oct 23. 2021

고급진 껍데기에 매몰된 남자

아메리칸 싸이코(American Psycho, 2000)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갈수록 모르겠다. 내가 하는 말만 가지고 더는 진짜 내가 누군지  길이 없다.
 - 패트릭 베이트먼(크리스찬 베일)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패트릭 베이트먼(크리스찬 베일)'의 모습은 말 그대로 '고급'집니다. 그는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서 아침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고급 화장품으로 관리를 합니다. 심지어 그는 교양도 있습니다. 인종차별을 저지해야 한다, 세계 기아를 막아야 한다는 등의 사회적 의견을 가짐과 동시에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Huey Lewis and the News)', '필 콜린스(Phill Collins)',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같은 뮤지션들에 대한 나름의 식견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은 '패트릭 베이트먼'의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의 이면에는 자기보다 더 고급진 이들에 대한 극도의 열등감과, 저급한 이들에 대한 혐오가 가득합니다.


 '패트릭'이 그토록 '고급진 껍데기'에 집착한 이유는 뭘까요?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그를 바라보게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아니야?', '이바나 트럼프 아니야?' 같은 질문처럼, '패트릭'이란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그를 우러러보길 원한 것이죠. 모두의 우상이 되고자 '패트릭'은 그들이 갖고 있는 '고급진 정장', '고급진 명함', 그리고 '고급진 몸매'들로 채워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런 '패트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과 얼굴을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얼간이'로 불리고 있었죠.


 모두가 동경하는 '고급진 껍데기'를 '패트릭'이 쓰고 다닌다면 분명 다른 이들도 '패트릭'을 좋아할 가능성은 많아집니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패트릭이 쓰고 있는 껍데기'를 좋아하는 것이지, '패트릭'이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유명 브랜드 이름은 술술 잘만 외우면서, '패트릭'이란 이름은 왜 모르겠습니까? 설령 이름과 얼굴을 안다 한들 '껍데기' 너머 그의 잔혹한 심연에 관심을 가지는 이도 없었습니다. '패트릭'이 자신의 속내를 '폴 알렌(자레드 레토)'에게 고백할 때, '폴'은 '어디서 선탠 했어?'라고 물으며 헛소리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후반부의 엄청난 소란이 있었음에도 ‘패트릭’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그의 살인 고백을 듣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랑받고 싶어서 '고급진 껍데기'를 열망해왔음에도, 그의 진짜 모습을 아는 이는 ‘진(클로에 세비니)’ 빼곤 아무도 없습니다. 살인을 일삼은 이에게 동정의 여지를 주는 것 자체가 아깝지만, ‘고급진 껍데기’에 매몰돼버려 이제 정체성까지 잃어버린 ‘패트릭’이란 사람이 참 안쓰럽네요. ‘껍데기’가 아닌 ‘나’라는 존재가 더 중요함을 언젠가 깨닫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살인마라는 본래 정체성을 마주하는 것이 먼저지만요.



etc.

'패트릭'이 저지른 살인은 어쩌면 그가 봐왔던 '비디오'들 속 장면들이 만들어낸 상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총 몇 발에 경찰차가 폭발하는 건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고, 그 난리를 쳤는데도 세상은 평화롭기만 하니까요. 아마도 '패트릭'의 머릿속은 매일매일이 액션 영화이고 호러영화였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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