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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지니 Sep 08. 2022

보라카이 여행 중 코로나 확진 그리고 격리

해외여행 중 코로나 확진된 썰

올해 나는 30살이 되었다. 그리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가 되었는데 인생을 되돌아보니 참 굴곡 있는 삶을 살았던 거 같다. 특별히 22년 나의 절친과 다녀온 보라카이 여행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의 첫 이야기로 보라카이 여행 중 코로나 확진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슈퍼 면역이란 착각


일단 보라카이를 가게 된 계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보라카이를 가기로 한 2022년 8월 5일까지 코로나에 단 한 번도 확진된 적이 없었다. 나의 남자 친구, 가장 친한 친구, 가족, 회사 동료들이 다 걸릴 때 나는 끝까지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 결과를 받아왔다. 나는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100% 나는 '슈퍼 면역자'라는 착각을 했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이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이 세상에 슈퍼 면역자는 없을 것이다.


코로나, 어디서 걸린 걸까?(한국 vs 보라카이)


아직도 궁금한 것이 코로나를 어디서 감염된 것일까라는 질문이다. 한국일까 필리핀일까? 난 내가 슈퍼항체가 생각하고 참 열심히 돌아다녔다. 나의 한 지인이 공항 혹은 비행기에서 옮은 거 같다는 말을 기반으로 분명 인천공항에서는 마스크도 2개씩이나 쓰구 열심히 방역에 동참했는데 대체 어디서 옮은 걸까? 그냥 내가 슈퍼 면역 자일 것이란 오만한 생각으로 허술하게 다닌 탓이겠거니 싶다. 정말 다행인 건 보라카이에서 확진되기 전 3일 정도는 관광을 했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 한국 가기 전 24시 안에 PCR 혹은 신속항원검사를 해야 해서 마지막 투어 전날 신속항원검사를 억지로 받은 것이긴 하다. 우리가 예약한 한국 투어 업체 내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혹시나 해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러 가기 전 친구와 숙소에서 자가진단키트를 해보았다. 다행히 모두 '음성'이 나왔고, 신속항원검사도 당연히 음성이겠거니 하며 테스트를 받았다. 정말 믿기지 않지만 15분이 지난 후 정-말 희미한 두 줄이 생겼고, 나는 PCR 테스트까지 바로 진행했다. 그리고 양성 결과를 받았다. 아무 증상도 없었는데 갑자기 한국 출국 하기 2일 전, 코로나에 걸려 버렸다.


양성이라 판정받은 신속항원검사 결과... 지금 봐도 너무 희미하다.

신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


나는 예전 투자사기 이후 약간의 공황장애가 생겼다. 특히 혼자 잠들 때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면서 심장이 급격하게 빠르게 뛰는 증상이 생겼다. 7일간 이 막막한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혼자 격리될 생각 하니 너무 아찔했다. 우선적으로 회사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원래 회사에서 코로나 확진이 되면 병가 7일이 주어지는데, 해외에서 확진은 개인 휴가를 써야 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도 업무상 급한 것들은 휴가 온다고 다 처리해뒀고 7일 더 있어도 누군가에게 피해줄 것은 없었지만 회사 내에 퍼질 소문과 많은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을 견딜 자신이 안돼서 너무 큰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해외에 나가서 확진되었다는 소문은 회사에 무성히 퍼져나갔고 7년 만에 연락 오는 동기들도 있었으며 나는 팀장님 부장님 그리고 부서 1명에게만 말했는데 말이다. 작년에 이어 회사에서 또 한 번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남의 메신저 창에 내 이야기가 오갈 걸 생각하니 또 미칠 것 같았다. 다시 공황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뿐 만이 아니다. 보라카이 현지 투어 업체들은 한국에 가려면 확진 일로부터 11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휴가를 7개나 더 써야 한다는 것인데 말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이 사실이 또 나를 미치게 만들었고 정신병에 들게 만들었다. 정말 눈물겹던 7일간의 격리기간을 견뎠고 난 한국에 돌아왔다.

혼자 격리되면 미칠 것 같았는데 다행히 같은 날 PCR 검사를 받은 97년생 다른 한국 여자분도 확진이 되어서 숙소를 같이 쓰게 되었다. 같이 격리된 친구의 남자 친구가 다행히 격리 숙소 들어가기 전 한국 마트를 찾아서 햇반, 소주, 맥주 등을 사준 덕에 식량이 좀 있다는 심적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감옥 같아서 정신병을 불러일으키던 '격리 숙소'


보라카이에 격리되었던 숙소는 Con-els라는 곳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최악이었다. 밥도 주지 않았고 약도 요청해야 가져다주었다. 숙소비 약값 밥값 당연히 다 나의 자비로 충당해야 했다. 헤어드라이어, 냉장고, 전자레인지가 없었다. 며칠 지나니 작은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를 주셨다. 아마 다른 방에 누군가가 나가면서 나의 요구에 가져다주신 것 같았다. 화장실을 열면 도마뱀 5마리 정도가 샤샤샥 사라지는 곳이었고, 매일 밤 모기와의 전쟁 그리고 하루하루 새로운 곤충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었다.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숙소였고, 보건소에서 만난 간호사가 이 숙소의 주인의 딸이었다. 그래서 간호사가 집에 오면서 필요한 것들을 말하면 가끔 사다 주기도 했다. 간호사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은 친절했지만 이곳의 시설은 돈을 준다 해도 머무르지 않을 법한 곳이었다.



길가는 사람에게 소주와 맥주를 팔다.


격리 3일 차쯤 되니 우리의 실정이 눈에 보였다. 격리가 시작되고 1일 차 2일 차에는 열이 38까지 나서 아프기도 했고, 일단 격리기간이나 절차들을 알아보는 데 혈안이 되어 뭔가를 먹을 생각도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감이 없었다. 하지만 같은 숙소를 쓰던 97년생이 우리 이제 페소(필리핀 화폐단위)가 없다고 했다. 여행 마지막 날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격리된 것이니 당연히 페소는 이미 거의 다 탕진한 상태로 들어왔고, 약이든 밥을 사 먹으려면 더 많은 페소가 필요했다. 일단 한국 여행사에 환전해서 숙소로 가져다줄 수 있는지 물었고 일부는 그렇게 마련을 했다. 근데 갑자기 내 눈에 격리 전 97년생의 남자 친구가 건네주고 간 소주 4병과 맥주 4캔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우리 안 먹을 거 같은데 환불할까?'라고 물어봤고 그 마트 영수증도 없고 환불이 될 거 같지 않았다. 아 어쩌지 하고 고민하던 차에 주인아저씨에게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아저씨에게 물어봤으나 한국 술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마침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한국인 남자가 길을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소리쳤다. '저기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거 보니 한국인이 100% 맞았다. 나는 다시 한번 외쳤다. '저기요!! 여기 위예요!!' 2층에 머물고 있었기에 남자는 고개를 좀 올렸고 나를 쳐다봤다. 간절하게 격리 중인데 술은 못 먹겠고 싸게 드릴 테니 구매해주시면 안 되냐고 애걸복걸했고 첨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결국엔 문고리 거래에 성공하였다. 소주 4병과 맥주 4캔에 500페소(약 12,000원)에 팔았다.

지나가는 한국인에게 500페소에 판 소주 4병과 맥주 4캔


인친을 보라카이에서 만나다.


보라카이에서 코로나 확진하기 전 정말 열심히 보라카이에서 노는 사진들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고 있었다. 근데 나의 인스타그램 친구 한 명이 나와 비슷한 시기에 와서 내가 격리된 이 순간에도 계속 보라카이 사진을 올리는 것이다. 사실 인스타에서만 아는 사람인지라 평소 같으면 말 걸 생각도 안 했는데 격리를 빨리 끝내고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에 디엠을 보냈다. 알고 보니 초등학교 교사였고, 내가 연락한 다음날인가 그다음 날 친구가 올 것이고 지금까지는 혼자 여행 중이었다고 한다. 나는 정말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이없지만 혹시 자가 키트와 각종 식량을 좀 사다 줄 수 있는지 물었고, 다행히 오늘 일정이 아무것도 없다며 격리 숙소에 와서 가져다주셨다. 심지어 돈도 안 받으셨다. 정말 너무 감사해서 격리 해제되고 이 분과 이 분의 친구를 만나 맥주와 안주 몇 개를 사드리고 왔다. 심지어 고향도 같아서 고향에 방문하면 한 번 만나 식사도 대접하고 싶다. 정말 힘든 순간에 인스타그램이 이런 좋은 도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진짜 이 분에게 고마운 점은 나는 지금 7일간 강제로 더 머무르게 된 보라카이에 대한 증오감을 조금이라도 줄여줬다는 것이다. 나는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더 일주일 머물러야 했기에 정말 한순간 한순간이 지옥 같았는데 그 교사분은 이 지옥 같은 보라카이에 자발적으로 20일이나 여행 왔다는 것에 '아 누군가에게 보라카이는 정말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래 이 좋은 곳에서 7일이나 더 있는 걸 좋게 생각해보자'라고 자기 암시를 하려 노력했다. 여전히 나는 그냥 모텔보다 못한 격리 숙소에서만 갇혀 있었지만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 자체가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면, 지금이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현재는 누군가의 동경일지도 모르듯 내가 머무르던 보라카이는 누군가의 동경 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격리기간을 잘 버텼다. 고맙다. 나의 인스타 친구여.



스티브 잡스 Connecting the dots.

내가 참 좋아하는 인물 중에 스티브 잡스가 있다. 그는 자기가 인생에서 경험했던 일 하나하나가 점이었고 이 경험들이 결국 다 나중에 이어져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보라카이 격리를 하면서도 스티브 잡스의 이 말이 참 공감되었다. 남자 친구가 미국으로 출장을 한 달 반이나 가면서 최근에 영어 공부를 바짝 했다. 완벽하게 원하는 점수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회사 퇴근하고 강남으로 학원을 다니며 나름 오랜만에 치열하게 공부하고 영어실력을 좀 올렸던 거 같다. 그 덕인지 보라카이에서 정말 많은 들은 말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11일 격리가 아닌 7일 격리에 대한 확인도 필리핀 병원, 필리핀 간호사, 영사관 등과 다 영어로 통화하면서 확인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한 달 반이나 비는데 짧게 배울 수 있는 거 없을까 해서 단기가 끌어올린 영어가 이렇게 생존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이런 해외여행 중 격리 경험은 어떻게 내 인생에서 다른 도움을 주고 영향을 줄지는 모르지만 이런 나쁜 경험도 결국엔 다른 일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그냥 흐린 눈뜨고 기억하는 것으로 하자.



그냥 정말 힘든 보라카이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를 집순이로 만드는 그런 엄청난 여행이었다. 당분간 해외여행은 가지 않을 것 같다. 이젠 입국 전 PCR/신속항원검사가 사라졌지만 '라테는'하며 추억할 수 있는 그냥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겨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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