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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MZ Jul 30. 2022

"환경 생각은 안 했어요."

에세이라니 (by. 김루시)

에세이라니 (by. 김루시)

이 글은 2022년 6월 21일 화요일 태릉에 위치한 지구불시착 서점에서  이소연 시인 에세이 수업 <매료된 것에 대해서 쓰기>에서 '이제 마스크 벗어'라는 문장이 글 안에 꼭 들어가는 미션을 받아서 쓴 글입니다.  


환경 생각은 안 했고 저를 생각해서 빨아 쓰는 마스크를 쓰는데요?


마스크를  버리는 것도 일이야 


  베이지색 마스크를 다섯 장 샀다. 제목과 달리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도 조금 있었지만, 마스크를 빨아서 쓰는 것이 내게 덜 귀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더 귀찮았다. 일회용 흰색 마스크를 여러 개 구매해서 쓸 적에는 미처 쓴 마스크를 버리지 못하고 자동차 왼쪽 방향 전환 지시등에 하나, 오른쪽 전조등에 하나를 걸어두고 어떤 것이 새것이고 어떤 것이 어제 썼던 것인지 까먹을 때가 많았다. 


  집에는 옷걸이가 아닌 마스크 걸이가 생겼다. 내 마스크와 손님 마스크가 섞일 수 있으니 손님용 마스크 걸이도 따로 지정해줘야 했다. 흰색 일회용 마스크를 사용할 때 마스크가 몇 번 바뀌기도 했다.


  잠깐 편의점에 나가거나 가까운 지구불시착 서점에 잠깐 다녀올 때 마스크를 걸어두면 바이러스와 함께 외출에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에 일회용 마스크를 괜히 째려보기도 했다. 


“저녁에 다시 외출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저걸 버려 말아?” 


나는 그런 고민이나 행위를 없애기로 했다. 다시 쓰는 마스크는 한 번 써도 쓰레기가 아니라서 다시 쓸 수 있고, 다른 마스크와도 섞이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외출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손을 씻으면서 마스크를 빨았다. 금방 마르기 때문에 수건 건조대에 걸어두기도 하고, 빨래 건조대에 올려두기도 한다. 다섯 장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매일같이 빨고 널어놓으니 부족한 일도 없었다. 


“이제 마스크 벗어” 사실 이 말을 빨리 듣고 싶었는데, 요즘은 마스크를 빠는 일이 하루의 루틴처럼 돼 버려서 그 일을 하지 않으면 허전할 거 같다. 마스크 걸이에 늘 걸려 있던 마스크가 없어진다면 괜히 어색한 느낌일 거 같다. 


*물론 마스크를 벗고 싶다. 마스크 안에 있는 공기를 마시면 머리가 멍하니까. 


내가 죽어도 생리대는 지구에 남아있다고?


제목처럼 나는 죽었는데 내 피가 묻은 생리대가 지구에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일회용 생리대를 쓰는 것이 꺼림칙했다. 물론 500년 넘게 썩지 않는 쓰레기를 지구에 남겨놓고 가니 지구에게도 후손들 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드는 생각은 죽게 되면 아무것도 남김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생리대가 남는다니. 


한 SF 영화처럼 AI 로봇이 자신의 엄마라고 생각했던 여자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가 그것을 외계 생명체에게 줘서 몇 백 년 뒤에 다시 살아난다는 그런 설정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남긴 생리대로 나를 깨우면 화를 낼 거다. 나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거처럼 빙산이 녹아 육지가 물에 잠기고 온난화가 극심한 지구에 다시 오고 싶지 않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지구에 생리대를 남기지 않고 싶었다. 


나는 6년 전부터 면 생리대를 썼다. 어쩌면 내가 손빨래를 좋아하는 걸까? 마스크도 빨아 쓰고, 생리대도 빨아 쓰고. 


"귀찮지 않아요?"


내가 면 생리대를 쓴다고 하면 대부분의 반응이다. 


나는 일회용 생리대를 쓰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해 준다.


1. 내가 죽어도 지구에 생리대가 남아 있다

2. 원인 모를 생리통이 면 생리대를 사용하고 거의 사라졌다

3. 화학 물질과 피가 만나면 냄새가 나지만, 면과 만나면 무취이다. 


1번 이유 이외에도 2,3번의 이유를 조금 더 만들어서 설명했다. 그러면 대답은 대부분 이렇다.


"그래도 귀찮을 거 같아요."


그렇다. 면 생리대를 빨아 쓰려면 귀찮긴 하다. 마트에서 생리대를 사 오는 것만큼이나 귀찮다. 우선 면 생리대는 생리대에 비해 비싸다. 한 10배쯤? 하지만 관리만 잘하면 오랫동안 사용하기 때문에 더 경제적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관해요?"


바깥에 있을 때 생리혈이 묻는 생리대를 다시 접어서 가방에 넣어야 하는데, 생리 혈에서 냄새라도 나거나 더럽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그렇지 않다. 코피가 나면 코피 냄새가 어떤가? 거의 냄새가 없다. 면 생리대는 도톰하고 접어 놓으면 아무런 냄새가 안 난다. 접어 놓은 새 생리대인지 썼던 것인지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흡수된 상태이다.


나도 인정한다. 가장 귀찮은 일은 빨아서 말리는 일이다. 꿀 팁은 외출하고 돌아와서 찬물에 바로 담가놓고 빨아버리면 된다. 그 마저도 귀찮을 때가 있고 피가 잘 지워지지 않을 때면 다시 물과 전용세제에 담가놓고 갈비 핏물 빼듯이 다음날 아침 핏물을 버린다. 잘 지워지지 않으면 전용세제와 솔을 이용하여 힘을 줘서 빨아야 한다. 


지금은 혼자 살고 있지만, 가족들과 살 때에도 그렇게 했다. 처음에는 오빠가 많이 놀라 했지만 오빠 이외에 모든 가족이 당연하게 생각하다 보니, 오빠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 거 같다. 오빠는 가끔 생리대가 든 통에 있는 핏물을 버려주고 새 물을 받아놓기도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나는 환경을 생각한 것이 아니고, 나만 생각했다. 그래서 빨아 쓰는 마스크와 면 생리대를 쓴다. 마스크를 버리는 것이 더 귀찮고, 내가 죽었는데 지구에 내가 쓰고 버린 생리대가 남아있는 게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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