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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20. 2023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정신승리법

독서 : <기후책>을 읽고 슬퍼졌다

 작더라도 긍정적인 이야기는 널리 퍼진다. 세상은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가고만 있는 것 같다. '힘들고 지친 하루, 덕분에 미소 짓고 갑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네요.' 선플과 높은 조회수, 좋아요까지. 반면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은 모두가 싫어한다. 기분만 나쁘니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불행 앞에서는 누구나 영웅이 된다. 아주 거대하고 부정적인 진실은 모두의 시선 바깥 어두운 곳에 묻어 둔다. 불안에 맞서는 태도는 강약약강 그 자체다. 너무 거대한 불행은 감당하지 않는다.


 나는 비관적인 사람이다. 근거 없는 낙관적인 태도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다 잘될 거야 같은 말을 하는 것. 과학이 어떻게든 해결해 주겠지 라는 과학만능론. 긍정적인 표정과 말은 친절하다. 유쾌하고 따뜻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는 긍정, 근거 없는 낙관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나는 책을 통해서 무관심했던 이야기에 흥미를 붙이는 일이 많았는데 기후 위기도 그랬다. 그레타 툰베리가 세계의 유수한 석학들과 현업에 있는 전문가들의 연구결과와 의견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기후책>을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기후책>에서 알게 된 내용과 자료들에 대한 의견을 장황하게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하다가. '혼자 너무 열내고 있는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는데? 현생이나 열심히 살자." "그래서 환경을 위해서 뭘 하고 있는데? 어차피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어." 무심한 반응 앞에, 갈 곳 잃은 이야기는 허망해졌다.


문이란 문은 다 열려있는데 당연하게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는 술집에서 친구에게 기후 이야기를 일장연설 하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나는 결코 이 시원한 여름을 포기할 수 없을 텐데.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길거리를 걸으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 화려한 조명과 눈부신 간판들, 웃음소리들.


대화의 소재는 자연스레 연애, 직장, 최근 본 영화와 가십거리로 옮겨 갔다. 그것들이 우리를 구성하는 세상이었다. 현실이었다.


생활 속에서 내가 지구라는 행성에 산다는 의식은 필요 없었다. 기후 위기, 인간 종 멸망 같은 이야기는 묻어두고 가자. 우리의 '진짜 현실'에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많으니까. 대학입시도 중요하고, 취업해서 돈벌어야지, 결혼 준비하랴, 육아는 얼마나 힘든데, 은퇴 후도 걱정이고, 건강도 챙겨야 되는데. 지구가 망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가.


때때로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괜찮은가? 그런 생각과 감정은 잠깐 스쳐가는 소나기일 뿐, 무리 속에서 그런대로 괜찮았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상상하니까, 내가 인정을 하면 그런 일이 생길 것 같고, 무시하고 듣지 않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결국 귀를 막고 눈을 감기로 했다.


고요한 어둠 속은 아늑하다. 이미 어둠 속에 잠긴 순간,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내가 만든 어둠 속에서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이대로 살기로 했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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