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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15. 2023

책 좋아하세요?

독서

 ‘영화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거의 답을 정해두고 하는 질문 같다. 얼마나 자주 보는지, 어떤 장르를 즐기는지 취향은 다르지만 누구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우리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한번 나눠보자'의 다른 표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영화만큼 대중적이고, 호감인 매체가 또 있을까. 만만한 데이트코스이자 가족 나들이다. 최근 부쩍 오른 티켓 가격과 코로나로 조금 휘청 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그렇다면 책은 어떨까? ‘책 좋아하세요?’ 이런 질문은 사실. 안 한다! 이 질문은 마치 첫 소개팅 자리에서 대화 소재를 찾던 도중 남자가 "제가 군생활 할때.." 로 운을 띄우는 걸 보는것 같은 느낌이랄까. 상대는 책(군대)에 관심이 없다. 눈치 챙겨!

 성인 독서인구는 이미 바닥인데도 계속 저점 갱신 중이고 출판시장은 이미 꺾인 지 오래고, 서점은 문제집 덕분에 틴다.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다. 나는 드물게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시대에 역행하는게 취미는 아니다. 모두가 책을 읽는 세상을 꿈꾸지도 않는다.(당연한 거 아니야 그런 사람 있다고?) 독서 예찬론자도 아니다. 독서하면 모든 근심걱정 인간관계 다 풀리고, 부자 되고 인생 성공하고, 책에 그런 내용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들을 싫어한다.나는 책도 좋아하는 거지, 책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요즘에는 독서보단 유튜브나 넷플릭스에 시간을 많이 쓴다. 그래도 독서를 멈출 것 같진 않다. 어쩌다 여기에 시간을 쓰게 됐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정 붙일 다른 것도 많은데 그중에 왜 하필, 책을 좋아하는지 정리해 보기로 했다. 어떤 가치판단이 들어간 순서는 아니고 그냥 떠오르는 대로 썼다.


 1.  읽던 가락이 있어서

가장 큰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읽던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몇 달, 몇 년 책을 잊고 살다가도 자꾸 되돌아온다. 독서는 내 정체성의 한 부분이다. 잘난 체하는 의도로 쓴 건 아니고, 누구나 그런 게 한 가지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좋아해요!" 말하긴 어색하지만 그냥 시간을 많이 들여서 익숙해진 것들. 누군가에는 운동이나, 그림, 음악, 요리, 산책… 같은 것이 나에게는 독서다.


 2. 물성이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책은 종이책을 말한다. 손에 들어오는 그 종이 뭉치를 애정한다. 얼마큼 읽었는지 직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어서 좋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 등을 보는 게 좋다. 책장이 넘어갈 때의 소리가 좋다, 그 감촉과 냄새까지도. 세상이 발전해서 나같은 소시민도 책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지 않은 시대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다.


 3. 재미있어서

 모든 책이 재밌지는 않다. 책을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는다. 그리고 치운다. 재미있으면 읽고. 생각나면 또 읽는다. 그런 경험을 쌓다 보면 책 제목과, 작가, 출판사나, 책소개 같은 걸 살펴보면 어떤 책인지 판단하는 감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재밌는 책을, 재미있을 때 읽을 수 있게 됐다. 나는 독서가 재밌다.


 4. 새로운 사실을 배운다.

 정보를 얻고 싶을 때도 책을 본다. 요즘은 책 보다 인터넷이 낫지 않나 하는데, 맞다. 그래도 책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 저자는 허공에서 책을 쓰지 않는다. 저자도 정보를 찾아보고 글을 쓴다. 책, 논문, 기사, 인터넷 등. 책으로 출판이 된다는 것은 편집, 교열 작업을 동반해 내용이 가공된다는 뜻이다. 글에 최소한의 퀄리티가 보장된다. 하지만 최신 정보가 필요할 때는 인터넷을 참고하는 게 낫긴 하다.

사실 둘 다보는 게 제일 좋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편향적이라 편한 것, 좋아하는 것, 내 가치관에 부합하는 것만을 접하고 산다. 나도 그렇다. 굳이 불편하고 싫어하고, 기분 나쁜 걸 볼 시간이 어딨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애정을 쏟고 살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책은 단순히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는 실용적인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생각하지 못했던, 존재 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 어쩌면 불편해서 외면하고 있던 것들을 억지로 알려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


5. 시공간을 초월한다.

 책은 타임머신이다. 단점은 시간선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안타깝게도 양방향 소통이 제한됐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경험 할수 있지만, 우리 의견을 전달 할 수는 없다. 미래의 사람들에게 우리 의견을 남길 수는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다.

 내가 직접 살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이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 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실이 슬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나의 몸, 단 한 번의 생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은 어디까지일까. 그 경계를 확장해 주는 것이 책이다. 


 몸이 스러지고 흙으로 돌아간 후에도 글은 시간과 함께 계속 흐르리라. 마침내 단 한 명의 독자를 만나기를 바란다. 읽는 이가 없는 글과 책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느 날, 누가 ’책 좋아하세요?‘  묻는다면, 이제 나는 대답할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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