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2

by 이경란


기대감


손녀를 좀 봐달라는 SOS가 와서 오라 하는 시간에 맞춰 갔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를 곧바로 움직이게 하는 요청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안엔 큰손녀 시아만 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 갓 입학한 아이인데 애만 두고 나갔다니 걱정스러워 물었다.

“아니, 혼자 있는 거야?”

“할머니, 여기 CCTV 켜 놓고 혼자 있는 연습 해요. 엄마가 보고 있어요.”

‘더 일찍 불러도 될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들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땐 큰애 취급하며 혼자 자주 두었던 것 같긴 한데 손녀는 더 어리게 느껴지고 누군가가 꼭 함께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직 아기처럼 느껴진다.


내가 몇 시간 동안 봐주어야 할 19개월 둘째 손녀 채아가 며느리와 함께 들어왔다. 나를 보면 언제나 막 뛰어와서 두 팔을 활짝 펴서 안겼고 꽉 안아 주었었는데 지난주에 가지 않아서 인지 손녀는 나를 보고도 멀뚱멀뚱이다. 얼마 전부터 잠깐만 안기고는 ‘할머니, 이젠 되었죠?’ 하는 듯 내 품에서 내려가 버리더니 오늘은 아예 안기지 조차 않았다. 억지로 언니를 안고서 질투심을 유발하는 방법으로 겨우 안아 주었다. 섭섭한 마음이 확 올라왔다.

그래도 손녀는 내가 가면 놀이해 주는 할머니로 알고 있는 듯 항상 장난감을 가져와 함께 놀자고 해 주니 그것으로 만족이다. 채아가 챙겨 온 장난감을 살펴보면서 며느리에게 말했다.

“어여 준비해서 다녀오너라.”

“네, 어머니. 시아는 옷 챙겨 입어.”


며느리와 시아가 외출복을 입고 나갈 채비를 하며 학원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채아가 눈치를 채곤 놀려고 하던 장난감은 내 팽개쳐버리고 현관 쪽으로 먼저 나가더니 신발을 찾아들고 신겠다는 듯 발을 갖다 대고 있었다. 나랑 놀이하는 것보다 엄마, 언니와 함께 나가겠다는 마음을 확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스스로 포기할 방도를 급히 찾아야 했다.

마침 싱크대 주변에서 싱싱하고 예쁘게 생긴 애플망고가 눈에 보였다. 이것을 깎아 주겠다고 해서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채아, 애플망고 먹을까?”하며 보여주었다.

손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애플망고 쪽으로 다가왔다.

“어유, 맛있겠다.”

거실까지 데리고 와서 겨우 며느리와 바이바이 하게 할 수 있었다. 손녀가 과일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이젠 손녀와 단 둘이다.

‘좋아 이제부터 엄마 보다 할머니가 더 재미있게 놀아 준다는 걸 보여 줄게.’

애플망고를 깎아 먹이니 참 이쁘게도 먹는다. 그 입이 너무 예뻐 입만 보고 있어도 꿀맛인데 손녀는 꼭 포크로 자기가 하나 먹고는 할머니도 하나 먹으라고 줄 줄도 안다. 참, 신통하다. 신통한 손녀와 장난감으로 한참 놀아주었다. 놀이할 때면 늘 새로운 장난감을 나에게 자랑하듯 보여준다. 그걸 가지고 놀아주면 최고다. 오늘은 탬버린이다. 탬버린을 손에 잡고 치기도 하고 어깨 위로 흔들며 놀아주니 곧잘 따라 했다. 더 좋은 놀거리로 확실하게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 야외 놀이터로 가자.’ 그네 타기를 좋아하고, 미끄럼, 시소 타는 것도 좋아하는 손녀인 줄 잘 알고 있다.


유모차에 태워 놀이터로 오니 정말 신나 한다. 또래보다 훨씬 큰, 언니 오빠 같은 아이들이 많이 나와 놀고 있었다. 손녀의 표정이 다른 날과 좀 달랐다. 자기가 놀고 있는 놀이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언니, 오빠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는 것이다.

줄넘기하는 언니, 철봉에 매달리는 언니, 오빠들의 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고, 그네를 타면서도 눈은 계속 그 언니, 오빠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네를 밀어주다 서서히 멈추면 더 밀어달라고 채아 나라 말로 표현하던 것도 잊은 채 그대로 시선은 그 애들에게로 가 있다. 그러더니 잠시 후 그네에서 내려 철봉 앞으로 가서는 두 팔을 벌려 자기도 철봉을 하겠다는 표현을 했다. 아직 말을 잘 못하는 손녀이지만 그 애의 얼굴표정이나 손짓 발짓 몸짓을 보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눈엔 보인다. 그걸 맞춰주기 위해 손녀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아야 한다. 다가가 손녀에게 물어보았다.

“철봉 할 거야?”

고개를 끄덕끄덕. 채아를 안아서 철봉에 손을 잡게 해 주었더니 꽉 잡으면서 용을 한 번 써 보는 표정이다. 잠시 잡아보더니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철봉에서 손을 내리고 땅으로 내려오겠단다. 땅에 내려놓으니 더 이상 철봉에 매달리지 않았다.


그리곤 또 모녀가 함께 줄넘기하고 있는 주변으로 다가가서 자꾸 해 보겠다는 몸짓을 한다. 두 모녀가 “하하 호호” 재미있게 보내는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줄넘기는 언니 거야. 채아 줄넘기 다음에 사 줄 게.”

그 말은 용케 알아듣고 포기를 해 주었다.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가만히 눈여겨보다가 따라 해 보려고 하는 그 모습. ‘그래, 도전 정신이 있어 보이는구나.’ 과연 우리 채아가 어떻게 자랄지 기대까지 해 보았다. 도전 정신이 심해서 위험한 걸 하면 안 되겠지만, 무엇이든지 해 보려고 하는 싹이 보여 신통하게 까지 생각했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들이 거짓말쟁이가 된다더니 나는 조그만 손녀의 아주 작은 일을 확대해석 하고 있었다. 철봉하나 매달리려 했다고 도전하는 모습이라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미끄럼틀, 시이소도 함께 타고 다른 놀이기구를 한 바퀴씩 다 돌며 놀아 본 후 다시 자기가 좋아하는 그네로 돌아왔다. 이젠 그네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 번 밀어 준 그네가 서서히 멈추니 이젠 채아 나라 말로 “뭐라 뭐라” 한다.

일부러 “그네, 그만 탄다고?” 하고 물어보았다. 고개를 도리도리 하며 더 타겠다는 뜻을 나타내었다.

“밀어줘?”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밀어 달라는 표현을 했다.


이젠 그네에서 내려 올 생각을 않고 있다. 계속 따라다니며 함께 뛰어다녔고, 시이소도 함께 탔다. 미끄럼을 타거나 새로운 놀이기구에 매달리면 걱정이 되어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채아 그네 앞에서 엉거주춤 서서 밀어주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디든 잠시라도 앉고 싶어진다. 집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를 해야 했다. 좀 전엔 애플망고로 마음을 빼앗아 엄마와 겨우 바이바이 할 수 있었다. 이번엔 놀이터 그네와 바이바이 하기 위해 ‘엄마’를 다시 떠 올리게 해야 했다. 손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집에 엄마랑, 언니와 있을 것 같은데…. 왔는지 가 볼까?”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잽싸게 집으로 데리고 왔다. 손녀에겐 엄마가 최고다.

손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 그 표정을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질문했고 마음이 읽힌다. 아들이 어린 시절, 손녀만 했을 때 아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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