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by 이경란


“안녕하세요? 잠시만 말씀드릴 게 있어요.”

말쑥한 차림의 앳되어 보이는 낯선 숙녀가 나를 향해 오는 듯 보이더니 눈을 마주치며 말을 걸었다. 갓 대학생을 벗어났을까 정도로 보인다. “저요?”, “네,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혹시, 예전에 다른 사람들 가르치시는 일 하시지 않았나요?”




‘원래 그런 말 잘 듣긴 했지.’ 그러나 의심의 눈초리를 먼저 보내었다. ‘예전에’라는 말도 귀에 거슬린다. 이젠 어딜 봐도 현역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길에서 친절하게 인상 좋다는 이야기 하며 말 걸어오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어떤 유혹이든 넘어갈 수 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웬만하면 말 섞지 않는 게 상책이다.


“바빠서….”

그냥 곧바로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또 말을 걸며 따라온다.

“좋은 일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얼굴에 그게 보여요. 보통사람들과는 다르게 보여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깐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아니, 지금 바로 가야 해서요.”

자꾸만 가던 길을 세우고 드릴 말씀이 있단다.

“그럼, 잠깐만 좋은 일 하나만 좀 해 주고 가시면 안 될까요?”

“그게 뭐죠? 시간이 없어서.”

“한참 동안 밥을 못 먹고 물 한 모금 못 먹어서 음료수라도 하나 먹고 싶어서요.”

마침, 핸드폰 지갑에 넣어 두었던 5000원짜리가 생각나서 꺼내었다.

“돈은 받으면 안 돼요. 제가 수도자여서요.”

그러고 보니 복장이 검은색 계열의 수수한 옷이고 머리도 뒤로 묶었다. 수녀님 복장도 스님복장도 아니다. 그러나 수도자라고 한다. 이어서 하는 말은

“같이 가서 음료수 하나를 사 주시면 그건 먹을 수 있어요. 부탁할게요.”

내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 올 심사로 보인다. 가게를 가려면 한참을 걸어가서 우리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이쪽 방향으로 가면 가게가 없어요.” 그랬더니 반대방향으로 가리키며 길 건너가면 마트가 있으니 거기 가서 하나 사 달라고 한다. 그리곤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한다.

‘오호, 목적이 나를 따라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로구나.’ 어떤 목적으로 나를 따라오면서까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반대 방향으로 다녀 올 시간은 없어요. 이것이 음료수라 생각하고 하나 사 드세요.”

꺼내 들고 있던 돈을 옷에 달린 주머니에 살짝 넣어주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잘 알지는 못한다.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수도자라고 하니 어쩌면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일전에는 지하철에서 한쪽 다리가 시커멓게 퉁퉁 붓고 무거워 절뚝거리며 구걸을 하는 노인을 만났다. 그날도 핸드폰에 꽂아 둔 5천 원짜리 지폐가 마침 있어서 주고 나니 내 마음의 위안이 조금은 되었다.

가끔 거리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단순히 음악 선물을 위한 공연도 있지만 어려운 사람을 위한 선행을 행하기 위해 모금함을 두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땐 그냥 지나치기보다는 작은 지폐라도 좀 넣고 나면 내 마음은 뿌듯해진다.

단순한 이런 방식의 쓰임이 필요한 그녀였을지, 마음 아파하던 어떤 친구처럼 어려움에 처한 상황은 아니었는지 걱정되었다.


지인과 친구는 학창 시절부터 가장 친한 절친이었다. 그녀는 지방의 유명대학 사범대학을 나와 중·고등학교 교사를 했지만, 특정 종교에 빠져서 그동안 모아 둔 전 재산과 퇴직금까지 받아 헌납한 후 그 종교단체에 들어가서 생활하게 되었다. 얼마 후 지인이 한 번 만나자고 해서 만났는데 행색이 어려워 보이고 삶이 고단해 보여 돈을 좀 빌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어려운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몹시 마음 아파했다.


종종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족 모두가 힘들어진 방송이나 뉴스를 접하기도 했었다. 겉으로 보기에 이상향의 유토피아 같은 공동체, 알고 보면 빠져나오지 못해 허우적대는 곳, 그리고 또 다른 먹잇감을 찾는 곳, 그게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 만난 그녀, 단순한 목마름 해결을 위한 가벼운 부탁 했던 사람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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