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순 씨

by 이경란

“내, 칭찬 들었다, 선생님이 그림 잘 그렸다고.”

입꼬리 올라 간 금순 씨가 큰 딸 얼굴을 쳐다본다. 90을 바라보는 그녀는 아직 칭찬이 고프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학교 갈 때 아픈 어머니 돌보며 살림밑천 맏딸 노릇하느라 부러워만 했던 그때를 보상하듯 경로당 수업, 경로대학 공부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나간다. 수업시간 그린 그림들은 빠짐없이 그녀의 옷장 선반 위에 널려있다.

경로당 강사 선생님의 칭찬 소리는 어린 시절 듣지 못했던 학교 담임 선생님의 칭찬인 듯 기쁨이 솟아오른다. 딸들도 그 칭찬에 한몫 더해 주어야겠지.

“엄마, 정말 잘 그렸네요. 해바라기가 진짜 예뻐. 딸들이 엄마 솜씨 닮았나 봐.”

그림을 그려 큰 상을 받는 딸도 있고, 대단하진 않아도 전시회를 해 본 경험이 있는 딸도 있으니 은근슬쩍 동반상승 시켜본다.

큰 딸은 할머니 할아버지 문해교육에 참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졸업식장에서 가족들을 위해, 형제자매를 위해서 헌신하느라 희생했던 어르신들이 지금에야 한글공부를 하고 명예졸업장을 받게 되었다며 존경의 마음을 한껏 보내기도 했었다. 그 헌신 덕분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고 현재의 가족들이 모두 잘 살게 되었을 것이라는 둥 위로의 말을 전하며 문해 교육을 잘해 낸 성과를 뿌듯해했었다. 당신의 엄마, 금순 씨도 가족을 위해 헌신한 어르신 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4남 2녀의 맏딸 금순 씨, 남동생들은 모두 대학까지 갔지만 그녀는 초등학교 졸업을 못했다. 편찮으신 외할어머니 돌보며 집안 살림 챙기고 남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학교를 포기했다.

"너희 어머니부터 살리자."

외할아버지의 그 말씀에 결석을 밥 먹듯 하다 결국 학교에 나갈 수 없었다. 개구리, 뱀을 잡아와서 달여 드리기도 하고, 온갖 좋다는 약은 다 해 드리는 외할아버지를 도와 외할머니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착한 딸이었다.

그 덕에 외할머니는 100세 이상 장수를 누리셨고 외삼촌들은 각자 대학 졸업하고 교장선생님으로, 교사 공무원으로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다행히 금순 씨 시집은 잘 갔다. 그 시절 대학 나온 신랑 만나 결혼했으니 보상받는 듯했다. “여자가 공부는 무슨, 시집 잘 가면 되는 겨.” 외할아버지의 말대로 되었다. 그러나 살아 갈수록 글 짧은 것 때문에 남편에게 조차 주눅 들게 하는 뭔가를 느낀다. 아이들 학교 보낼 때 가정환경조사서 작성은 늘 필체 좋은 남편의 몫이다. 금순 씨가 그걸 써서 보낸다는 건 삐뚤빼뚤 언감생심(焉敢生心) 넘볼 수 없는 넘사벽이다.

살다 보니 부녀회 회장이라는 것도 해 보았다. 서류도 작성해야 했다. 글씨가 삐뚤빼뚤 부끄러웠다.

“나를 초등학교라도 졸업시켜 주지.”

“다른 형제들은 모두 대학까지 보내면서.”

딸들에게 두고두고 아쉬운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부러움의 시선으로 담장 너머 눈길 주고 있는 어린 소녀 금순 씨가 그려진다. 그제야 가족을 위해 헌신 희생한 또 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울 엄마도 형제자매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맏딸이었는데….”

경로당 그림 수업이 있는 날이면 더 신이 난다. 그림으로 얻은 자신감 경로대학으로 진출했다. 개근상도 받았다.

금순 씨, 가족을 위해 살아오셨던 그 시간 감사드립니다. 우리 육 남매가 칭찬 많이 해 드릴게요. 울 엄마 최고라고. 이젠 당신만을 위한 시간 만들어요. 우리 모두 응원합니다. 더 많이 신나게 달려주세요. 경로대학에서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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