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이른 아침, 지하철 안은 한산했다. 특별한 자원봉사를 하기로 한 날이다.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활동에 참여한다는 마음에 상기된 기분이기도 하다. 함께 하기로 한 친구에게 「나는 출발」 문자도 보내었다. 낯익지만 특별한 색의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엔 도움을 주는 누군가가 동행중인 듯 보인다. ‘내가 도움 줄 분 중 한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은퇴 후 자원봉사 활동을 위해 교육은 받았지만 가정일과 개인 일에 밀려 자주 참여하지는 못했다. 신청 문자는 종종 왔지만 번번이 지나쳤고 ESG 환경보호 관련 활동에만 가끔 참여하기도 했었다. 이번엔 시각장애인 행사에서 필요한 자원봉사라 하니 좀 더 특별한 도움 줄 수 있겠거니 생각하며 신청한 것이다.
목적지가 있는 6호선 지하철로 바꾸어 타기 위해 공덕역에 도착하니 시각장애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나는 봉사자로서 필요한 사전교육과 준비를 해야 하니 7시 40분에 맞추어 일찍 가야 했지만 행사는 10시에 시작하는데 벌써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오고 있었다. 검은색 선글라스나 얼굴 표정, 하얀색의 지팡이 그리고 옆에 함께 가는 동행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축제에 참여하러 온 것이다.
우리는 약속 시간에 맞춰 움직이지만, 이분들은 그보다 훨씬 이른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불편함을 감추듯,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움직이는 그 모습에서 부지런함과 삶에 대한 성실함이 느껴졌다. 단지 보조가 필요한 이들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더 치열하게 준비하며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사전 교육에 참석했다. 담당자는 “대부분 동행인이 있지만 혼자 오시는 분도 있다”며,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법을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먼저 묻는 것’이었다. 무작정 도와주려는 게 아니라, 필요한지 먼저 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오른손 손등을 가볍게 대어 신호를 주고, 팔꿈치를 잡도록 안내한 뒤 한 발 앞서 인도하는 방식이다.
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는 지하철역에서 행사장인 효창운동장까지 세 개 구간으로 나누어 인도 조를 편성해 안내를 시작했다. 우선은 그분들이 안전하게 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나도 7~8명의 그분들을 인도했다.
처음 인도했던 분은 내가 초보임을 금방 알아채신 듯했다. 교육받은 대로 기억자 모양으로 팔을 들고 안내했더니, “이렇게 하면 팔이 아파요. 그냥 편하게 내려서해도 돼요”라며 먼저 웃으며 이야기해 주었다. 몸의 눈은 잘 보이지 않아 불편하지만, 마음의 눈은 훨씬 깊고 따뜻하게 열려 있어 더 잘 보이는 분 같았다.
우리 조는 네 명이 한 팀이 되어 구간을 나누어 맡았고, 교차로에서는 교통 지도까지 함께 했다. 교직에 있을 때, 아침마다 교문 앞에 서서 아이들을 맞이하던 일이 떠올랐다. 오래된 그 따뜻한 기억이 다시 돌아온 듯했다. 편안하게 인도할 수 있게 되자 자연스럽게 대화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나눈 소소한 이야기들이 정겹게 느껴졌다.
“연락하면 데려다주지만, 오늘은 스스로 와봤어요.”
“맛있는 것도 주고 선물도 있어서 좋아요.”
“행사 여러 번 왔는데, 프로그램이 늘 같아서 조금 아쉬워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올림픽 경기도 매번 같긴 해요.”
제한된 프로그램 속에서도 운영진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 오는 이도 있고, 여러 번 참여한 분도 있는 만큼 다양한 만족을 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식이 시작되자 우리도 행사장으로 모여 다시 재배치되었다. 나는 자원봉사자 본부석 주변에서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안전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 주변을 오가는 시각장애인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계속 오가는 사람들을 보다 보니 무엇인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먼저 다가가 물어보면 화장실 찾는다는 사람들도 있고 모두에게 나누어 준 선물인 카페 쿠폰 교환처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눈치 9단이 되어가는 듯했다.
자원봉사자들을 담당하는 젊은이 또한 봉사자들이 조금이라도 힘들까 봐 배려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수시로 해 주었다.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너무 힘들지 않게 하셔도 돼요.” 참여하는 내내 내가 주는 도움 보다 더 큰 따뜻한 마음을 받고 있었다.
시각장애인과 가족들의 표정은 환했고, 자원봉사자들도 웃는 얼굴이었다. 동행하는 이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고 별도의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있어 보였다. 이제 얼굴 표정만 봐도 도움이 필요한지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을 무렵, 우리의 임무도 마무리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분들이 집을 나섰을 것이다. 이들에게 큰 행사는 단지 즐거움만이 아니라,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여정이기도 하다. 동행인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지팡이는 필수다. 그건 단지 조금 불편할 뿐, 불가능은 아니었다. 그리고 준비성 철저한 일부가 그저 조금 더 일찍 도착했을 뿐이다. 어느 행사나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