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시작되었다. 그 긴 연휴는 백수부부에게 큰 의미가 있는 날은 아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해외여행을 떠났고, 작은 아들은 그 기간 동안 여행을 가니 하루쯤 내려오시라고 하면서 천안으로 먼저 내려갔다. 긴 연휴이니 딱히 할 일은 없다. 아이들이 없으니 손녀 보러 갈 일도 없다. 요 며칠 전부터 작은애 집에도 장모님이 와 계신다고 하니 지난 한 주는 프리한 날들이었다. 간간히 단톡에 중요하지 않은 사진들이 올라오긴 하지만 큰 관심 갖진 않게 된다. 사람들은 가족단위로 움직이니 핸드폰도 조용하다. 막상 아무도 찾지 않으니 왠지 섭섭하다. 공연히 외로워지려고 한다.
다음 날 천안으로 내려오라고 했으나 전화 통화로 알고 보니 장인장모, 처남부부와 함께 간 모양이다. 우리가 내려간다고 하면 분명히 그분들이 가신다고 할 것이다. 만나서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한 번쯤 함께 하게 되겠지만 공연히 잘 지내는 분들을 가게 해서야 되겠는가!
작은 아들에게 전화해서 용문으로 가기로 했으니 걱정 말고 장인장모님과 잘 지내고 오라고 마음 편하게 말은 하였다.
용문으로 향했다. 그곳에 비록 전세이지만 거처를 하나 마련해 두었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긴 연휴를 집에서 할 일없이 뒹굴거리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부부백수도 연휴엔 여행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움직이고 싶다.
짐을 챙겨서 나와 한강을 따라 올림픽대로를 달리니 콧구멍에 바람이 들어가서 좋긴 하다. 여행 가듯 언제든지 갈 곳이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도착해서 보니 물이 나오지 않았다. 자주 오지 않으니 도착하면 첫 번째 하는 일이 청소인데 큰일이다. 주인집에 이야기해서 살펴보니 2층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가 고장이란다. 어찌어찌해서 펌프를 건드리니 잠시 물이 나오긴 했지만 금새 다시 멈춘다. 긴 연휴라 와서 수리해 줄 사람도 없다고 하니, 다시 몇 번 툭툭 쳐서 집안에 있는 온갖 종류의 그릇에다 물을 담아 놓고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잠시 물이 나오는 동안 우리가 갖고 있는 온갖 종류의 그릇에다 물을 담았다.
먹는 물은 평소에도 사서 먹으니 관계가 없지만 오랜만에 왔으니 집 청소를 해야 하는데 청소할 물도 없고 씻을 물도 없다. 더더구나 가장 힘든 건 화장실 물이 없다는 것이다. 습관대로 한번 사용하고 물을 내렸더니 다시는 물이 안 나온다. 받아 둔 물을 부어야 한다.
받아놓았던 물을 한 번에 써서는 안 될 것이다. 손을 씻은 물은 보관해 두었다가 화장실에 사용하도록 해야 했고, 먹다가 버리던 물은 한 방울도 버릴 수 없었다. 따로 보관해서 재활용해야 했다. 오래전 자린고비의 물 사용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물을 받아와서 사용하던 때에 어떻게 물을 썼는지 생각난다. 우리의 그날은 물을 함부로 쓰지 않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집집마다 부엌의 부뚜막에는 물 단지가 묻어져 있었다. 수돗가나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부엌의 물 단지에 물을 보관하면서 아껴서 사용했다. 방학에 시골 외가나 큰집에 가 있을 때 보면 외삼촌이나 사촌오빠들이 물지게에 물을 져서 실어 나르기까지 했고 나도 물심부름을 많이 했다. 외가에서는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서 갖고 와야 했고, 도시에 살고 있던 우리 집에서는 마당 한가운데 있는 펌프로 물을 퍼 올려서 갖고 왔다. 시골 큰집의 큰엄마나 외가의 외숙모는 <버지기>라고 하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따베기>라고 하는 것을 머리꼭대기에 받침대로 올려놓고 물을 길어오기도 했다. 이렇게 귀하게 퍼온 물인지라 물 한 방울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물을 길어오다 돌부리에 발이라도 걸릴 테면 온몸에 물난리가 나곤 했지만 물이 더 아까워 어찌할 줄 몰라하던 때였다. 물 재활용은 당연한 일이었다. 손 씻고 세수한 물은 당연히 걸레 빨아서 청소하는 물로 재활용해야 했다. 그 시절 물로 매일 샤워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다. 명절 앞두거나 특별한 날을 정해서 목욕을 해야 했다.
우리는 지금 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정말 맘껏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 잠시만 안 나와도 난리가 난다. 물이 나오지 않는 용문에서의 2박 3일, 밥은 해 먹지 않고 지내기로 하고 갔으니 다행이었다. 밥까지 해 먹기로 했었다면 정말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긴 연휴는 지나야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펌프를 고칠 수 있단다. 떠나오는 날 아침, 받아 놓았던 물로 세수하고 재활용 물을 사용해서 화장실 물을 내린 후 변기 수조는 비워진 상태로 그냥 두고 나왔다.
백수부부, 물 아껴 쓰기 체험이라도 하고 온 듯한 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