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추석연휴를 이용한 여행에서 얻게 된 소중한 티셔츠가 하나 있다. 아들이 유학 간 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며느리가 사 준 여행지에서의 선물이다. 큰 아들내외가 가 있는 동안 작은 아들 내외와 함께 어렵게 날짜를 맞추어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 뉴욕, 워싱턴을 방문했는데 이 세 곳이 차례대로 미국의 수도가 되었다고 하니, 마치 내가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대학을 방문하여 학교를 돌아보며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다녔다. 우연히 아들의 외국인 친구를 만나자 부모님이라고 소개를 해 줄 땐 얼마나 뿌듯했는지 그 시간을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우리에겐 추석연휴였지만, 미국은 평일이었다. 수업이 있는 아들이 강의실로 들어가자 내 눈은 열린 문틈으로 끝까지 아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아들을 볼 수 있는 그 시간을 붙들어 매어 두고 싶었다. 그 추억은 늘 내 얼굴에 미소를 가져다준다.
그곳 기념품 매장에서 사 준 티셔츠이니 나에게는 소중하다. 그 옷을 늘 입고 싶지만 요즘은 아껴 입는다. 점점 낡아가고 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옷을 자주 바꾸어 입고 멀쩡한 옷도 잘 버리는 사람들의 눈에는 낡아서 버려야 할 옷으로 생각될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버릴 수 없는 옷이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버릴 수 없는 옷이 있기도 하다. 남편이 첫아이 가졌을 때 특별한 일이 있어서 사 준 옷이다. 그 옷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입고 가려고 점찍어 둔 옷이다. 그러니 또 버리지 못한다. 정년퇴직까지 했고 주변의 짐들을 정리해야 할 나이가 된 때이며, 더더욱 버림의 미학이 필요한 때인데 왜 이리 잘 버리지 못하는지…. 버림을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