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꼴 남매의 평행선

– 밥 차려주던 동생, 요리하는 오빠

by 티앤티앤

나에게는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지금은 어엿한 두 아이의 아빠이자 든든한 가장이 되어 새언니와 단란하게 살아가지만,

내 기억 속 오빠는 여전히 골목길을 누비던 개구쟁이 모습으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오빠의 껌딱지였다.

사촌들이 모이는 날이면 오빠들 틈에 끼어 놀고 싶어 했지만, 오빠들은 늘 나를 떼어놓기 바빴다.

"선영아, 오빠 책상 가서 지갑 가져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반신반의하며 집으로 전력 질주했다가 돌아오면, 오빠들은 이미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속았다는 분함에 눈물을 훔치며 "들어오기만 해 봐라!" 하고 씩씩대던 그 골목길의 공기가 아직도 선명하다.


어릴 적 우리는 닮은 구석이 있었다.

하굣길에 모르는 남학생이 다가와 "너 OO이 동생이지?"라고 물었을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해하던 기억이 난다. 콧날과 입술 모양이 판박이라던 말들.

오빠는 그 닮은 얼굴로 동네 친구들을 몰고 다니며 축구와 족구, 딱지치기 등을 즐겼고,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오빠의 세계를 엿보곤 했다.


사춘기 시절의 우리는 전쟁터 같았다. 스포츠 중계 하나에도 불꽃 튀게 싸웠다.

농구팀 '기아자동차'의 허재 선수를 열렬히 응원하던 나에게,

하필 슛이 안 들어가는 날을 골라 얄밉게 "노골! 노골!"을 외치며 놀려대던 오빠.

그때는 정말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미웠다.


하지만 미움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을까.

그렇게 지독하게 싸우던 오빠가 군대에 가던 날,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훈련소로 향하는 오빠의 뒷모습을 보고 집에 돌아와 나는 눈물 콧물 다 짜내며 목 놓아 울었다.

‘그 얄미운 인간’이 군대에서 얼마나 모진 고생을 할까 싶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훈련병 과정을 마친 오빠는 운 좋게도 작전 참모 중령의 운전병이 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오빠는 행군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중령님을 모시고 차로 이동하는 것이 주 업무였던 오빠는,

때때로 상사와 업무차 서울에 올 일이 생기면 슬쩍 엄마의 음식점에 들러 밥을 먹고 가기도 했다.

이 반전의 배후에는 사실,

원래 헌병으로 갈 뻔한 보직을 운전병으로 바꿔준 아빠의 은밀한 부성애가 있었다.


그래도 오빠가 첫 외박을 나와 집에 왔던 날은 잊지 못한다.

부대에서는 편히 지냈을지언정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나타나,

새벽같이 일어나 각을 잡아 이불을 개고 밥상 앞에 정자세로 앉아 식사를 하던 낯선 모습.

하지만 그 긴장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기 휴가를 받아 나올 때쯤 되니,

살도 제법 붙고 태도도 느슨해져서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군인 친구들까지 집으로 데려와, 여전히 "술안주 뭐 없냐"라고 물어보며

라면 하나도 내가 끓여주는 게 젤로 맛있다며 나를 부려먹던 우리 오빠 그대로였다.


그런데 세월이 마법을 부린 걸까.

결혼해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맞벌이하는 새언니와 보조를 맞추며 살다 보니,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오빠가 직접 만들었다며 깍두기를 담가 들고 온 적이 있었다.

"세상에, 오빠가 깍두기를?" 기가 막히면서도 웃음이 났다.

밥상 한 번 안 차리던 오빠의 손에 김치 양념이 묻어 있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백미는 지난 1월 1일이었다.

새해를 맞아 오빠가 엄마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풍경이 예전과는 딴판이었다.

오빠와 새언니, 그리고 조카들까지 네 식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음식 준비로 분주했다.

그날 엄마와 나는 식탁에 앉아 대접받는 손님이었다.

오빠가 주도해서 만든 스테이크와 스파게티, 노릇하게 구운 양념 닭고기와 치즈 옥수수,

그리고 조카 연이가 좋아하는 연어회까지. 정갈한 플레이팅은 웬만한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새언니가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에 우리는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아들이 이렇게 요리하는 거 보시면 속상하실 텐데..."

그러나 엄마와 나는 슬퍼하기는커녕,

앞치마를 두르고 가족을 위해 땀 흘리는 오빠의 모습이 대견해 자꾸만 웃음이 났다.

단란하고 행복해 보이는 네 식구의 모습이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배불렀다.


투닥거리며 함께 자란 그 시절의 오빠가 있었기에 나의 유년기는 시끌벅적했고,

이제는 정성 담긴 밥상을 내어주는 오빠가 있기에 든든하다.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같이 나이 들어가는 오빠가 있어 참 다행인 새해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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