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는 소년이었을 나의 아버지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거대한 벽 같았다.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한 몇 마디가 대화의 전부였고,
집안에는 대화보다 침묵이 더 익숙했다.
종갓집 장손, 엄격한 가부장적 집안의 가장.
아버지는 그 단단한 껍데기 속에 자신을 가둔 채 늘 바쁘게 사셨다.
마당 큰 대야에는 아버지가 낚시로 잡아 온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곤 했다.
신기해서 물고기 밥을 주며 한참을 구경하던 나의 유년기 속에는,
정작 아버지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 기억이 많지는 않다.
할머니의 매운 시집살이를 견디는 엄마를 보며,
나는 권위적인 아버지를 원망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랐고,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변화는 내가 어른이 되고, 패션 현장에서 남성복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찾아왔다.
신기하게도 예쁘고 좋은 옷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아빠가 떠올랐다.
"이거 아빠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요."
평생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기보다 늘 내어주는 삶에만 익숙했던 아버지는,
아무 날도 아닌데 툭 건네는 딸의 선물에 기쁨보다 당황스러운 기색을 먼저 보이셨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그저 무덤덤하게 "그래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로 대신하시던 아버지.
그 얼떨떨한 표정 뒤에는 자식의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던 서툰 시간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무수히 아빠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동안,
아빠는 조금씩 그 낯선 다정함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 시절의 엄마아빠는 영화관은커녕 데이트 한 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셨다.
그런 부모님께 나는 ‘두 분만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예매해 드린 공연은 뮤지컬 <난타>였다.
대사 없이 두드림만 가득한 공연을 아버지가 좋아하실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공연을 보고 온 아버지는 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그 뒤로도 영화나 콘서트, 여행도 함께하며 우리 사이에는 대화의 주제가 풍성해졌다.
새로운 풍경 앞에서 아이처럼 즐거워하시는 아버지,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빠의 얼굴에서 '소년 같은 웃음'을 보았다.
그 웃음은 조용히 내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어느새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는 내가 집에 갈 때마다 버선발로 나오시며
"아이고, 우리 이쁜 딸내미 왔어?"라고 반겨주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아빠가 되어 있었다.
엄격함 뒤에 가려져 있던 천진함,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아빠의 진짜 모습을
나는 마흔이 다 되어 가면서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세월은 야속하게 흘러 아버지는 조금씩 느려지셨다.
코로나 격리 중에 넘어지시는 사고로 예전처럼 씩씩하게 걷지 못하게 된 어느 날,
앞서가던 아버지의 뒤태를 보며 나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젊은 날 짊어졌던 그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탓일까.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높았던 그 어깨가 작고 야위어 있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지금 아버지는 곁에 안 계시지만,
나는 가끔 아버지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본다.
자신감 넘치는 미소, 매력적인 포즈로 카메라를 응시하던 아빠.
그 사진 속에서 나는,
거대한 벽이었던 아버지 뒤에 숨어 있던 꿈 많던 한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고향을 떠나 서울 타지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자리 잡기 위해 애쓰던 청년.
그에게도 뜨거운 열정이 있었고, 가슴 뛰는 흥이 있었으며,
누구보다 다정한 품이 있었다는 것을...
한때는 꿈 많은 소년이었을 나의 아버지.
아빠의 그 멋진 미소가 오늘따라 유난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