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동계장박시즌이 시작되었다. 3월에 텐트를 철거하고 장비를 정리한 후로 약 8개월이 지났다. 꾸역꾸역_ 더 적합한 표현은 없다. 흡사 보물찾기를 하듯이 집 구석구석에 숨겨 두었던 장비들을 꾸역꾸역 다시 꺼내서 차에 싣고 출발했다.
장장 5개월의 대여정. 그 시작은 언제나 땀과 한숨으로 얼룩지기 마련이다. 차곡차곡 실어놓은 짐을 다시 꺼내는 과정은 오히려 간단하다. 그냥 바닥에 두서없이 내려놓으면 끝이다. 질 좋은 일장갑 착용은 필수이다. 바닥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단열재 스티로폼 재질을 깔고 다시 비닐로 덮어 테이프로 고정한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기 위함이다. 그렇게 기초공사를 마친 후 텐트의 위치를 잡고 폴대를 끼운 후에 자립시키고 팩을 박으면 그럴싸한 모양이 된다. 이렇게 3개의 텐트를 설치한 후 서로 연결시켜 주는 작업까지 마치면 피칭이 끝난다. pitching이란 캠퍼들의 용어로, 팬질을 해서 텐트를 완성한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완전히 노동집약적이면서 (거대한 텐트의 모양을 잡아가는 일은 웬만한 성인남자가 하기에도 거뜬한 일은 아니다) 철저하게 공학적인 (텐트의 자립을 돕고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한 구도 잡기와 팩과 스트링의 각도와 박는 깊이 등) 작업이 끝이 나면 이제 다음 단계를 시작할 수 있다.
이제 각종 집기들을 넣고 자리 잡아야 한다. 침실동에 매트를 넣고 펌프를 이용해서 공기를 채운다. 퀸사이즈 정도에 7.5cm 정도 두께의 거대한 매트이다. 펌프를 수백 번쯤 밟다 보면 어느새 매트는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신속하게 구멍주입구를 막고 다시금 위치를 잡아주면 된다. 보통 이 매트는 5개월 동안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너무 무겁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는 게 팩트다. 그럼에도 이 매트를 움직이는 일이 생긴다면 텐트가 무너질 정도의 대형참사를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장박 때 우리는 이미 한번 겪은 일이다. 지난주에는 우리 옆집은 피칭 중에 지하수가 샘솟는 바람에 어른 6명이 들러붙어 매트와 함께 텐트를 들어 올리기도 했다.) 매트 위에 전기장판을 깔고 그 전기장판 위에 또 커버를 씌운다. 커버 위에 잠자리용 깔개를 깔고 덮고 잘 이불과 베개까지 세팅하면 완벽하다. 침실동의 창문은 열어두었다. 환기는 기본이다.
침실동과 연결된 쉘터에는 전용매트를 깐다. 쿠션감이 제법 쓸만하다. 워낙 대형이라 세탁이 어렵고 색깔은 칙칙한지라 예쁘진 않다. 이케아에서 만든 흰색의 양털을 모방한 (진짜 양털일리가 없다) 매트 두 개를 포개서 깔아 둔다. 벌써 이 매트를 구매한 지도 6년이 넘었다. 매트의 한쪽에 검은 얼룩이 있는데 처음 이 매트를 깔아 둔 날에 큰 아이가 고춧가루를 쏟아 놓은 것이다. 그 외에도 한날은 비가 세어 들어와서 매트가 물을 잔뜩 먹기고 했었고, 바람에 텐트가 찢겨 고양이들이 방문하기도 했었다. 여염집 거실에 깔렸으면 인테리어에 한몫 당당히 했을 터인데, 하필 장박용 텐트에 깔리는 바람에 고생이 많은 녀석이다. 옷걸이와 팬히터만 들여오면 쉘터는 완성이다.
쉘터와 연결된 거실텐트는 특히 높고 크다. 제일 높게 세운 폴대는 180cm 모자란 키의 남편이 손을 뻗어도 닿기가 힘들 정도이다. (숫자에 정확한 내 남편이지만, 이상하게 키를 잴 때만은 다른 양상을 보이기에 정확한 키를 기재하지는 않겠다.) 이 거실을 채우기 위해서는 남다른 센스와 공간지각능력이 필요하다. 다이닝 공간과 요리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조명도 설치해야 하고, 동선에 편리하게 물건 등을 적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난로까지 설치해야 하는 동계캠핑의 경우 아이들이 들고 나는 동선까지 생각해서 공간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공간지각능력도 센스도 없다. 사실 이 거실공간을 효율적으로 잘 꾸미는 일은 항상 우리 부부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서로 존대하는 정도의 친분이 있는 지인을 모셔놓고(지난겨울을 함께 보낸 캠퍼) 하나하나 조언을 구하며 거실을 공략했다. 거실의 한쪽으로 상자를 쌓아서 선반을 만들고, 나머지 공간에 의자와 테이블을 설치했다. 거실 입구 반대쪽에 난로를 설치하고도 공간이 충분했다.
이제 우리는 텐트에서 먹고 자고 쉴 수 있게 되었다. 고기를 구우려고 보니 가위와 집게가 없었다. 알고 보니 조리도구가 들어있는 파우치가 통으로 사라졌다는 등의 작은 일들은 차차 보완해 가면 될 터였다.
part 2.
사실 이상함을 눈치챈 것은 바닥공사를 할 때였다. 바닥에 비닐을 깔아 두고 작업을 하는데 반짝반짝한 무언가가 보였다. 파쇄석 사이사이의 작은 틈에서 바선생이 별안간 모습을 드러냈던 순간이었다. 그는 무심히 돌멩이 틈으로 솟아나더니 별안간 틈 속으로 사라졌다. 비가 스며들고 바람이 드나들던 그들의 서식지 위를 무참히 짓눌러버린 커다란 비닐과 비닐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여러 번.
바선생 들은 나보다 먼저 사이트를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캠장이 운영하는 네이버카페에서 바선생에 대한 후기는 없었다. 연박과 장박 위주로 운영되는 회원들 간에 끈끈한 정이 오가는 곳이라 후기는 그저 칭찬일색이다. 나는 작년 겨울에도 여기 이곳 이 사이트에서 캠핑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바선생의 그림자도 없었다. 문득 돌이켜보니 2월경에 바선생 토들러 정도급의 벌레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유충이 봄이 되어 벌레가 되어 활동을 시작할 즈음에 나의 장박이 끝났던 것인가. 그들이 여름가을을 견디며 캠퍼들이 흘려준 고깃덩이 빵부스러기 등으로 아기 손톱만큼의 크기로 성장한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어떤 생각에도 집중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미완의 텐트가 3개나 있었기 때문이다.
침실 세팅을 끝내고 입구 방충망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바선생들의 가는 길목이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침대를 공유하고 싶진 않았다. 그들이 하릴없이 걷다가(기어 다닌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너무 징그럽다...) "나"라는 언덕을 올라 귓구멍이나 콧구멍 등에서 멈칫하는 상상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쉘터를 정리하는 동안에도 입구를 수시로 체크했다. 제일 위험한 구간은 침실과 쉘터의 연결구간. 천장을 천으로 덮어두긴 했지만 파쇄석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그곳은 엄연히 바선생의 영역이다. 그들만의 힙한 장소인지, 아니면 텐트가 덜 덮인 땅이어서인지 알 수는 없으나 유난히 그곳에서 바선생들이 자주 출몰되는 느낌이었다. 거실 세팅을 조언하던 지인이 마침 살충제를 주었다. 감사히 받아서 입구 쪽 땅을 적셔주었다.
처음 조우한 바선생을 처리할 때에는 (물티슈로 압살 했다) "나무관세음보살"을 마음속으로 외쳤다. 모든 살생은 나쁘다. 내 명의로 등기부등본이 되어 있다 할지라도 인간이 온전히 소유한 땅이란 없다. 그건 인간의 법일뿐이다. 나는 바선생들이 지나던 혹은 살고 있던 땅에 침략한 인간이다. 그들은 거칠게 없다. 그냥 열심히 돌멩이 사이사이를 비집고 걸었을 뿐이다. 걷다 보니 반들반들한 언덕이 나타났고.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아서 열심히 기어올랐을 것이다. 울퉁불퉁한 지퍼도 그들에게는 타격감이 없었으리라. 그들은 그냥 갈 길을 가고 있었고 그 길에 내가 있을 뿐이었다.
사이코패스의 심리와 흡사하다. 그들은 그냥 사람을 죽인다. 출처는 명확하지 않지만, 한 영화에 등장했던 사이코 패스는 "나는 그냥 내 길을 가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있었을 뿐이야."라고 말했다. 소름 끼치던 대목이었다. 바선생 들은 그래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공룡들이 하늘과 땅을 지배하던 시절부터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그들은. 추워도 더워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등껍질은 반질반질 윤이 난다. 그들이 주로 음습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살며, 인간이 버린 쓰레기 등으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유난히 광택 나는 그들의 모습은 이질적이다. 컬러 또한 고급지다. 등껍질을 망토처럼 뒤집어쓰고 차분하게 하지만 분주하게 달려 나가 나는 바선생. 그들에게 gps가 있어 텐트만 비껴가주면 더없이 좋을 텐데.
올봄에 텐트를 철거할 때는 바선생이 워낙에 작기도 했고, 또 드물게 보여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바선생이 출몰한 곳 은 왠지 주홍글씨 같기도 해서 말 꺼내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장박을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이 바선생들을 두고 볼 수 없다. 어떠한 연유로 바선생들이 이곳에 자리 잡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나는 5개월간 이 땅에 텐트를 쳐두어야 한다. 환불이 안 된다. 바선생 들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사실 맞설 기세도 아니다. 그냥 그들은 그냥 거기 있을 뿐이다.
캠핑장 입구에 있는 편의점에서 금색띠를 두른 초강력 바선생 용 살충제를 발견했다. 한 통에 9000원쯤 했다. 쿠팡을 열어보디 세 통에 15000원이었다. 바선생이 밉지만 장기 전이므로 자원을 잘 배분할 필요가 있다. 살충제는 쿠팡에서 주문하는 것으로 하고, 우선 지인에게 얻은 살충제로 하룻밤을 버티기로 했다. 신기재라고 분필처럼 생긴 바르는 살충제도 주문했다. 텐트 바닥 부분이 검은색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신기재를 하얗게 묻혀두면 바라만 보아도 안심이 될 듯하다.
바선생에게 고한다. 나는 캠장에게도 대대적인 방역을 해달라 요청해 두었고, 나 또한 장비가 갖춰진다면 총력전을 할 계획이다. 전멸! 박멸! 공생은 불가능하다. 나는 더 이상 너희의 죽음에 미안해하지 않는다. 무심히 당신들을 해칠 것이다. 두렵다면 너희가 떠나라. 내 텐트가 보인다면 돌아가라. 인간의 진동이 느껴진다면 파쇄석 아래로 숨어라. 그것만이 너희가 살 길임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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