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를 배웁니다. 매월 셋째 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수강 신청을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놓치면 한 달 동안 수업을 들을 수 없습니다. 수어 강좌가 어찌나 인기가 좋은지 5분이면 모두 마감이 되어 들을래야 들을 수가 없습니다. 가격도 한 달에 1만원이거나 많아야 3만원을 넘지 않습니다. 제가 가는 곳은 충정로역 부근에 있는 서울수어전문 교육원인데 평일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다양한 수업이 진행됩니다.
한 번은 공무원 시험을 보러 갔는데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어통역사 감독관이 시험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잘 못듣고 장애인등록증이 있으니 편의 지원을 해준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어 청각장애인 수험생으로 지원했는데 수어로 안내를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수어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을 들고 수어를 모르니 구어로도 안내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감독관이 조금 크게 말해주면 들을 수 있는 말은 들었고 못 알아듣는 말은 입 모양을 보고 이해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수어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언어라는 걸 알았습니다.
수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왜 수어를 배우는지 물어보니 이유가 다양했습니다. 취미로 배우는 분도 계시고 청각장애로 수어로 소통하기 위해 배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농인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배우기도 하고 수어통역사라는 직업을 목표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배우기도 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입니다. 최소 일 년 이상은 배워야 유창한 수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년 반 동안 열심히 배워서 청각장애인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이 자격증을 가지고 다른 청각장애인의 근로 업무를 지원하는 근로지원인으로 2년 4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그 후 비장애인들이 대부분인 직장으로 옮기게 되어 지금은 수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어를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비정기적으로 수어학원에 갑니다.
하루는 수어학원에서 만난 젊은 남자를 붙잡고 수어를 배우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청각장애인도 아니고 다른 할 일도 많을 것 같은데 일과를 마치고 나서 피곤한 저녁에 수어학원에 오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분은 명쾌하게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배운다고 대답했습니다. 수어를 막연히 소통의 도구라고 생각해왔던 터라 조금 놀랐습니다. 배운 지 이 년이 넘었다는 그분의 수어는 수어 선생님도 놀랄 정도로 뛰어나 눈에 띄었습니다.
코로나 시절을 거치며 농인들을 위한 방역 안내로 방송에 수어통역사가 등장했습니다. 그동안 뉴스 화면의 콩알만한 원에 수어통역사가 가끔 보였던 것과 비교해보면 획기적인 변화였습니다. 수어통역사가 자주 눈에 띄다 보니 수어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많아져서 수어교육원의 강의 신청이 어려워졌습니다. 수어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니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수어를 배워본 적이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수어는 듣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언어지만 멀리 떨어져서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일 때 소통하기에 좋습니다. 이 삼십 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도 손만 보이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가끔 야구 감독이 보내는 사인에 수어가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해 뚫어져라 보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비밀 연애를 하는 분이 계시다면 수어를 배워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간단한 수어 몇 개로도 둘이서만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몸으로 표현하는 말인 수어를 하다보면 성격이 변하기도 합니다. 수어학원에 가면 청각장애인보다 잘 듣는 분이 더 많으니 혹시 수어를 배우고 싶은데 망설이는 분이 계시다면 용기를 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