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 관객으로서의 삶

나의 최선은 완벽할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by 박동현

4개월 만에 브런치 앱을 켰다. 열심히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의 의지는 쉽게 무너지고,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첫 글을 작성하면서 했던 다짐들이 몇 가지 떠오르는데 지켜진 것이 많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변명과 핑계를 약간 대보자면, 계획을 싹 다 갈아엎고 다시 세웠다.


글의 제목인 "아름"은 순우리말로 나라는 뜻이다. 아름답다는 말은 나답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를 얼마나 아껴주고 있을까, 나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일까, 인생을 아름답게 살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고민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나의 인생에서만큼은, 주연이 되어야 한다. 세계사라는 거대한 흐름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조연, 아니 어쩌면 엑스트라의 역할조차 받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거대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역사가 된다. 우리는 모두 그 거대한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 거대한 이야기에 주연은 없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인물들에 의해 구성된 이야기, 바꿔 말하면 이야기를 구성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주인공이다.


거대한 이야기 안에 80억이 넘는 개인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지닌 채 살아간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짤막한 나의 인생을 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내가 내 인생의 주도권을 잡고 열심히 노력하는 말 그대로 주인공 같은 인생을 살 때는 자신감이 넘치고 세상이 참 밝게 보였는데 그와 반대되는 삶을 살아갈 때는 창피하고 자신감도 없고 세상은 아름다운데 혼자 우중충한 내 모습이 더럽게 초라해 보였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방법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생각들을 한 단어로 압축하고 싶어졌다. 우연히, 어느 날 정말 우연히 알게 된 "아름" 내가 찾던 바로 그 단어였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으로 보기에 즐거움을 주는 형태. 아름답다의 사전적 의미이다.


주인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누구나 보편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닐까, 그런데 그런 아름답다는 말이 나답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고민 없이 아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철저하게 조연,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못한 처참한 인생을 살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야기를 이루는 구성 요소는 크게 이야기를 관람하는 관객, 이야기가 펼쳐질 무대를 준비하는 스텝, 무대 위에서 주연을 빛내는 조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를 장식하는 주연, 이렇게 네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는 넷 중 그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아름"은 하나의 프로젝트다. 내 인생 전체를 가장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행복해지기 프로젝트


관객->스텝->조연->주연의 순서대로, 그 역할에 맞는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기한은 행복해질 때까지, 무한이다.


앞으로 매주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고서가 올라갈 예정이다. 이제 막 시작할 마음을 먹은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관객이다.


철저하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관람하고 의문을 가지며 제삼자 혹은 이야기의 주인공과 묻고 답하면서 의문을 해소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통해 성장하며 자신을 일궈가는 단계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관람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부 관람한 나의 감상문이 이곳에 올라갈 것이다.


언젠가 아름다워질 우리를 위하여.





2025.08.29 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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