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우리 집 강아지는 복슬강아지

개한테 배운다.

by 박동현

우리 집에는 올해로 7살 먹은 강아지 한 마리가 살고 있다.


반려견 사진은 못생기게 나올수록 귀엽다고 생각한다.


이름:태양이(엄마가 성은 붙이지 말라고 한다.)


나이:7세


성별:암컷


특징: 온몸에 내재된 실전압축근육


특기:음식 안 씹고 삼키기, 골반 돌리기 댄스, 꼬리로 연주하기



1. 개한테서 뭘 배워?


태양이는 놀랍게도 아름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제 즉 내가 관람할 첫 번째 이야기이다.


정확히는 관람해 온 이야기가 더 좋은 표현일 것 같다.


의아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저번 글에서 그렇게 거창하게 표현했으면서, 사람도 아니고 강아지가 주인공인 이야기라니 내가 봐도 조금 우습다고 생각하지만


전 글에서 내가 빼먹은 사실이 하나 있다. 이 세상에는 인류 외에도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채 살아간다는 점이다. 살아 숨 쉬고 움직인다면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집 개한테도 당연히 이야기가 있다. 7년 동안 내가 아는 이야기만 수십 편이고 모르는 건 아마 더 많을 것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사람보다 괜찮은 점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닮고 싶은 부분도 많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7년 동안 녀석과 함께 살면서 관람한 에피소드와 그에 대한 나의 감상평을 시작하겠다.



2. 에피소드


1. 첫 만남


태양이가 처음 온 날부터 이야기하자. 태양이는 태어난 지 2개월쯤 되었을 때 우리 집에 왔는데 이 녀석 출신이 심상치 않았다.


녀석의 부모 되는 개들을 우리가 2년 정도 맡아서 길러주었는데, 엄마는 제주 토종개, 아빠는 멧돼지도 잡는다는 풍산개였다.


그 아빠 되는 풍산개가 물어 죽인 우리 집 가축이 5마리 정도 되는데, 사람으로 치면 원수도 저런 원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 집은 원수의 딸을 받아서 키운 셈이 된다. 꽤 재밌는 첫 만남이 아닐까?


태양이가 처음 온 날엔 낯선 환경이 어색했는지 마루 밑에 쏙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근데 그것도 잠시, 몇 시간 지나고 긴장이 좀 풀리자 금세 우리를 따라서 하루 종일 같이 뛰어다녔다.


태양이를 기를 당시에는 승곡 마을이라고, 산 중턱에 위치한 시골 동네에서 살았던 시절이라 묶어두는 것도 딱히 없이 그냥 풀어놓고 키웠다.


그래서 당시 태양이의 영역은 대충 계산해도 근처 땅 100평은 넘게 나올 것이다. 생후 2개월도 안된 놈이 신나게 돌아다닌 결과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태양아~" 하고 부르면 한 5분 뒤에 투다다닥 하면서 달려오곤 했다. 자기 영역을 돌아다니다가 내 부름에 달려오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일을 지금 생각해 보니 일상처럼 경험하고 있었다.



2. 가출 사건


태양이가 우리 집 막내둥이로 완전히 자리 잡고 귀여움을 한창 받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한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우리 집은 산 위에 위치해 있어 마을 밖으로 나가려면 1km 정도 되는 거리를 내려가야 했다.


태양이는 우리가 마을을 나가려고 밑으로 내려갈 때면 종종 따라서 오고는 했는데, 차를 타고 나갈 때는 거의 사냥감을 쫓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달려서 따라왔다.


항상 중간쯤 따라오고 말았던지라 우리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좌시하고 있었는데 그게 화근이 되어서 녀석이 사라져 버렸다.


태양이가 사라진 날에 엄마 아빠가 새벽에 갈 곳이 있어 차를 몰고 아침 일찍 떠났다. 하필 태양이가 그 차를 따라간 것이다.


원래라면 중간에서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시내로 가는 도로까지 따라나선 모양이다.


낯선 장소에 홀로 뚝 떨어져 버렸으니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차를 따라가자니 이미 놓쳐버렸고, '내가 태양이었다면' 이렇게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든다.


3주 동안 우체부 아저씨를 수소문하기도 하고 온 동네를 다 뒤져봤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뭔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태양이와는 그렇게 영영 이별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에 학교를 마치고 데리러 온 아버지의 차에 타자 홀쭉하게 말라서 쪼그라든 태양이가 꼬리를 흔들면서 내 품으로 쏙 들어왔다.


아버지가 시내에 용건이 있어 가는 중 하얀색 개 한 마리를 만났다고 한다. 오랫동안 떠돌아서 구질구질하고 비쩍 말라있어 한눈에 태양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양아~" 하고 부르니 그제야 자기 주인인 줄 알고 달려왔단다.


3주였다. 차도 돌아다니고 풀숲에는 야생동물들이 설치고 다니며, 특별히 먹을 것도 없는 도로 한복판에서 용케도 살아남아서 집으로 돌아온 녀석을 보며 보통 머리가 좋은 놈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 뒤로는 집을 나갈 일이 있으면 잠시 묶어놓고, 차가 떠나면 남은 사람이 다시 풀어주는 식으로 잘 대처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자 꼬리를 흔들면서 오줌을 지리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기억에 남는다.


태양이를 기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가출 사건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3. 꾀병...?


승곡마을을 떠나서 주택으로 이사 온 후의 이야기다. 100평이 넘는 땅이 다 자기 거였는데 갑자기 생활공간이 확 축소되었으니 그 답답함이 오죽할까, 아무리 산책을 자주 시켜줘도 충족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겠다 생각하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 손님들이 오셔서 대접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태양이의 상태가 영 이상했다.


걸음걸이에 힘이 하나도 없고, 얼마 안 가선 토까지 했다.


중학교에 막 입학해서 어렸던 나는 깜짝 놀라서 이것저것 해봤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엔간하면 먹을 것 앞에서는 기운을 차리고 날뛰는 녀석이 간식을 줘도 반응이 없으니, 너무 더운 날씨에 더위를 먹은 건가 생각하던 차에 이제는 아예 픽 쓰러져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철렁해서 당장 태양이를 안아 들고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하필 일요일이라 영업을 하는 병원이 없었는데 다행히도 집 근처에 딱 한 군데가 문을 열어서 급히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절반쯤 가고 있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부스스 일어나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것이 아닌가.


방금까지 아팠던 녀석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함부로 차량에 태운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병원에서 주사까지 맞으니까 완전 짜증이 나서 그날은 나를 좀 피해 다녔다.


아직도 그날의 진실은 잘 모르겠다. 토까지 한 걸 보면 꾀병은 아닌 것 같은데 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에도 갑자기 멀쩡히 일어났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병원에서 문제가 없다고 진단을 내렸다.


병원으로 급히 갈 만큼 아팠던 적이 없어서 이 날의 기억은 꽤나 강렬하게 남아있다.



3. 개한테서 배운다.


감상평이라고 올려놓았긴 하지만 역시 이번 주제는 그리 대단하다 칭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아무리 다시 읽고 고쳐보려 해도 흥미가 생길만한 주제도 아니고, 필자의 실력이 부족하여 글이 재밌고 쏙쏙 읽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공공연한 이 온라인 공간에 게시하는 이유는 하나다.


"아름" 프로젝트에서 내가 관객이 되어 관람할 이야기가 어떤 분위기를 가지는지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 어쩌면 이야기라고 생각해 본 적조차 없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야기.


태양이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서두에서 말했었다. 무엇을 배웠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밥을 깜빡하고 안 준다던지, 산책을 안 시켜줬다던지, 자신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자기가 필요할 때, 심심할 때, 관심을 받고 싶을 때 즉 무언가를 바라고 원할 때 주저하지 않고 나는 여기 있다. 나를 봐달라고 신호를 보낸다.


처음에는 작게 울음소리를 내면서 관심 좀 달라고 하고


좀 약하다 싶으면 아예 목을 힘차게 뻗어 웡! 웡! 하면서 짖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달라고 조를 줄도 알고, 들어주면 원 없이 즐긴 후에 후련하게 집으로 돌아가서 쉰다.


우리는 남들의 눈치를 보고 힘든 일이 있어도, 괴로운 일이 있어도 가슴에 꽉 눌러놓고 묵혀둔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언젠가 반드시 극독으로 변해서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태양이는 7살인 지금까지 더위 먹었던 그날을 제외하면 잔병치례도 거의 없고, 항상 건강했다.


그 비결은 속에 담긴 말을 하고 싶을 때 마음껏 하기 때문 아닐까?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온다. 내가 지치고 힘들 때 마음이 약해지면 몸의 면역체계가 더 빠르고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플 때에도 나 아프다고, 힘들다고, 시원하게 털어놓고 또 기운을 차려서 그래도 살아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살아봐야지 하고 마음먹는 사람들의 몸은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려고 쉬지 않고 움직이고 면역체계도 더욱 탄탄해져 경우에 따라선 불치의 병조차 이겨낼 수 있지 않은가.


태양이는 뭔가를 속에 담아두는 법이 없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힘들면 힘들다 아프면 아프다, 말만 못 하지 사람이 다 알아챌 수 있게 온몸으로 티를 낸다. 그래서 참 좋다. 걸리는 게 없이 사는 저 놈을 보면서 행복한 인생이란 뭘까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개한테서도 저렇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은데 타인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또 얼마나 많은 깨달음이 있을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분석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태양이 덕분에 하게 되었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고, 모르는 것도 많은 내가 더 알고, 더 배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개한테서 배운다. 개를 보고 배운다.


나아가 사람한테 배운다. 사람을 보고 배운다.


관객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관람하고 그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