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희로애락을 다 겪고 온 듯한 한 편의 기나긴 시+ 부여 기행문
부여로 2박 3일 여행을 떠났다. 백제의 보물 금동대향로 하나만 보고 별 다른 계획도 없이 떠난 배낭여행이었다.
마음의 쉼을 얻고 싶은 욕구도 작지 않았다. 낯선 땅에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로운 감정이 올라오니까.
여행은 재밌었다. 금동대향로를 실물로 봤을 때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래도 계획도 안 세웠고 목적지도 두 개 정도만 알아보고 무작정 간 여행이다 보니 그저 한 곳에서 가만히 멍을 때리거나, 일찍 숙소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멀리 떨어진 목적지까지 생각을 비우고 걷거나, 여행담이라고 할 만한 에피소드도 크게 없었다.
이번 2박 3일간의 여행 이야기는 너무나 짧고 보잘것없다.
그 대신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선 치킨을 한 마리 사들고 들어와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숙소의 TV로 시청했다.
봐야지, 봐야지 하며 미루고 미루었던 드라마, 사실은 조금 더 살아보고,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이 공감하고,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꾹 참고 묵혀두었던 드라마.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좀 더 빨리 볼 걸.. 하는 마음이 솟구치듯 올라왔다. 단순히 도파민을 자극하고 재미만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드라마와는 달랐다.
우리의 삶, 우리의 이야기, 드라마라서 일어나는 판타지가 아니라 정말 현실에서 일어났을 것 같은 에피소드, 마치 어딘가에선 애순이가, 관식이가, 금명이 가 어디선가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아니, 우리가 애순이었고, 관식이었고, 금명이었다.
연극, 영화, 드라마, 소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분야의 무대가 존재하고, 관객은 그 모든 무대를 관람하고 저마다의 평가를 내린다.
그것은 관객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것이 즐겁긴 했지만 나에게 주어진 그 권리에 대해서 한 번도 큰 가치를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드라마를 감상하고 난 후 처음으로 내가 관객으로서 이 무대를 관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보면 웃다가, 울다가, 어떤 장면에서는 애순이에게, 어떤 장면에서는 관식이에게, 이렇게 모든 등장인물에게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영상매체를 지금까지 태어나서 본 적이 없다.
가족애, 그 흔하디 흔한 소재로 이 정도의 감동을 이끌어낸 작가와 감독에게 진심으로 감탄했다. 워낙 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고, 이미 너무 많은 영화나 문화적인 매체에서 다뤄진 소재이다 보니 뻔하고 식상하게 느껴지기 쉽다.
게다가 항상 등장하는 뻔하고 억지스러운 신파 장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도 참 많았다.
공감을 얻지 못해서 그런지 슬픈 장면이 나오더라도 사람들은 무감각하며 심지어는 그 장면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비난을 뱉기도 한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런 장면이 없다는 것, 장르는 분명 신파 요소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감독과 작가가 필요 이상으로 디테일과 개연성을 신경 쓴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작중에서 슬픈 장면이 나왔을 때 눈물이 흐르고 슬픈 기분이 막 올라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기뻐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 내 마음도 풍족해지고 답답하고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올 때는 내 이야기처럼 짜증이 확 올라온다.
정말, 실제로 살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고 온 것처럼 그냥 이 상황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험을 드라마로 체험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제작자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절로 나왔다.
폭싹 속았수다의 장점을 꼽으라면 셀 수도 없이 많이 있지만, 나는 작가가 풀어낸 모든 대사들과 극 중 애순이가 작성하는 모든 시들이 참 마음 깊은 곳에 남는다.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리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소중한 이가 아침에 나간 문으로 매일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은 매일의 기적이었네.]
극 중 16화(마지막 회차)에서 50년 넘게 함께한 남편 관식을 떠나보낸 애순이 남긴 짧은 문장이다. 항상 옆에 있는 사람이기에 우리는 종종 그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망각하며 살아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옆을 지키고 앉아, 온갖 고난과 역경을 함께 짊어져주는 든든한 삶의 대들보를, 우리는 기둥 지나치듯이 무시할 때가 많다.
작가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아름답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 곁에 소중한 사람으로서 남아있어 주는 것 자체로 이미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기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엄청난 기적을 매일 같이 겪으면서, 한 번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관식이 죽은 후 관식의 딸인 금명은 이런 해설을 한다.
[아빠의 짝사랑이 끝나고, 나의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항상 곁에 있던 소중한 아빠에게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을 뱉는 금명의 모습은 우리의 지난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금명의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항상 내가 1등인 부모님과는 다르게 항상 부모님은 뒷전인 우리의 모습이 계속 보이니 금명에게 괜히 미운 감정도 들고 그런다.
그렇게 아버지가 사랑을 표현할 때는 지독히도 외면하고, 더 이상 그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사랑을 주고 싶어도 사랑을 주지 못하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전하지 못한 마음이 속에 아련하고 쓰리게 남는다.
그런 마음을 짝사랑으로 표현한 해설을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과 감탄이 나왔다.
슬프고 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너무나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묵묵히 그 아린 짝사랑을 속에 품고 계속 삶을 살아갈 우리의 미래를 떠올리면서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수많은 설명과 표현을 가져다 붙히더라도 쉽게 열리지 않는 것이, 쉽게 울리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작품의 작가는 단 한 문장으로, 단 하나의 단어로 그 마음의 문을 열었고 마음의 종을 울렸다.
한동안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그 작품에 나오는 표현들을 인용하게 될 것 같고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내려고 노력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체감이 되는 부분이다.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할 지 잘 모르겠다. 인상깊게 남은 특정인물, 혹은 작품의 말투나 행동, 분위기를 따라하게 되는 현상.
관객으로서 삶을 살아보며 수 차례 겪은 경험인데 아직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경계를 해야하는지 명확한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을 이어가보니 지나치게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되겠지만, 마치 그림을 그릴 때 타인이 그린 작품을 따라그리는 모작을 하는 것처럼, 이것도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나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분명 정체되어 있다. 그리고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는 법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주어진 힌트는 생각없이 그냥 해보는 것이었다. 생각을 비우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명확한 계획이나 동기가 없어도 그냥 부딪혀보는 거다.
[아니다 싶으면 빠꾸, 냅다 튀어와.]
이 대사가 정말 웃음이 나면서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래, 아니다 싶으면 냅다 튀면 그만이다.
나에게도 관식을 아빠로 둔 금명이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있으니까.
생각없이 떠난 여행에서 에상치 못한 수확을 얻고, 기대하지 않은 여행에서 정말 가치 있는 경험을 한다.
부담을 가지고 앞서가는데에만 급급하면, 길 바닥에 널려있는 보물을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느긋하고 여유롭게 걸어보기로 했다.
나는 관객이다. 아무도 날 재촉하지 않고,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자. 실패하면 있는 힘껏 도망도 쳐보자. 이번 여행에서 얻은 수확이다.
이번 이야기에서 내가 내리는 감상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