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딱 그 정도? 그만큼 꼭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게 하고 싶은 건지 아닌지도 잘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모르고 입 밖으로 내뱉어보지도 못하고 살다가 죽기 싫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적어보려고 했다. 적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내가 모른 거다. 아주 거창해야 하는 줄 알았다. 입 밖으로 내뱉으면 꼭 해내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적을 수가 없었다. 작은 것부터 적어보기로 했다.
오늘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
커피도 한잔하고 싶다.
산책하러 가면 좋겠다.
그러자 하고 싶은 일들이 점점 떠오른다. 할 수 있는 일이든, 할 수 없는 일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다. 꼭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 이젠 내 속마음이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항상 나의 처음은 하고 싶으니까 하자보다는 그냥 ‘해보자’ 였다.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핸드폰으로 숏폼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던 중에 어느 운동센터의 바디프로필반 모집 글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참 그렇게 행동력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바로 전화를 걸었고 체험 수업 날짜를 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한 것 같다. 그렇게 체험 수업을 진행하고 바로 6개월짜리를 등록하고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민 따위는 없었다. 일사천리로 이뤄진 일이었다. 특히나 그때는 내가 필라테스 강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여서 다른 운동에 눈 돌릴 틈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때의 나의 하고 싶음은 ‘살을 빼고 싶다’ 였던 것 같다.
바디프로필의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실패였다. 물론 살은 빠졌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바디프로필처럼 근육이 선명하게 보인다던지 엄청 늘씬하다던지의 결과는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운동을 그만뒀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바디프로필 촬영 이후에 운동의 매력에 더욱 깊이 빠지게 되었고, 잘하지는 못해도 즐겁게 했던 것 같다. 나의 다음 하고 싶음이 생긴 것이다. 이 운동을 더 잘하고 싶다. 또 다른 운동들도 접해보고 싶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의 하고 싶음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점점 커져 나가고 점점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을 시작하고 난 많은 것을 얻었다. 운동하면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던 나에게 도전 의식과 성취감에서 오는 만족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해보고 싶은 운동이 생기면 일단 경험해 봤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들은 줌바, 폴댄스, 테니스이다.
줌바는 기존에 크로스핏과 함께하고는 있었지만, 크로스핏을 하기 위해 몸에 열을 내는 웜업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사실 춤은 젬병인지라 부끄럽기도 했달까? 그다지 적극적으로 즐기지 않았었다. 그런데 음악선택이나 수업 스타일이 나와 코드가 맞는 선생님을 만나고부터는 굳이 시간을 내서 수업을 들으러 갈 정도로 애정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무도 거의 다 외우다시피 해서 수업에 참여할 정도로 꽤 열광했었던 것 같다. 수업을 들으면서 줌바 강사 자격증도 따볼까?라는 생각도 살짝 하기는 했지만, 내향적인 나의 기질은 어쩔 수 없기에 에너지 넘치는 선생님의 수업에서 그 열기를 느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폴댄스는 크로스핏을 하는 중에 정체기라고 해야 할까? 뭔가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 흔히 말하는 운테기가 와서 살짝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운동이었다.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폴댄스 특성상 살의 마찰로 동작하는 운동이라 운동 의상 자체가 노출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내 몸에 자신이 없어서 미루고 미뤄왔던 나의 하고 싶은 운동 중 하나였다. 뭐 그 당시에도 몸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운동에 대한 열정이라고 할까?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었다. 물론 첫 수업에서 센터에 들어갔는데 비키니만 입고 대기 중이시던 선생님을 뵈었을 땐 살짝 당황한 건 사실이다. 선입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수업하고 나니 진짜 색다른 경험이었다. 기존에 쓰지 않던 부위의 근육을 쓰니 힘도 잘 안 들어갔다. 비록 3부 레깅스를 입었지만 그 조차도 폴을 잡기에 너무 길었다. 폴을 더 잘 타고 싶고 더 잘 배우기 위해서 나는 첫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폴웨어까지 구매했다.
"아니 벌써 입을 수 있다고요? 전 폴웨어 입는 데 2년 걸렸어요. “
나에게 늘 폴댄스를 추천해 주고 예찬해 왔던 친구도 깜짝 놀라며 기록용으로 올린 SNS 영상에 댓글을 달았을 정도였다. 폴에 매달려서 동작을 만드는 것 하나하나가 챌린지였고 내가 가지고 있는 레깅스를 입고 운동하기에는 동작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움 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을 정도로 잘하고 싶었다. 수업마다 새로운 동작을 배우고 성공하는 과정은 나의 승부욕을 자극했고 나의 운테기는 이렇게 잘 넘어가게 되었다. 한 가지 폴을 배우면서 가장 걱정이었던 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유난히 멍이 잘 드는 체질이라는 것이다. 역시나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서 한 달이 되는 시점 아쉽지만 일단정지를 하게 되었다. 마찰해야 하는 모든 부위에 멍이 생겨서 수업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제대로 배워보리라 결심했고 하고 싶은 일 목록에 폴댄스를 적어두었다. 아! 폴댄스와 함께 요가도 함께 적어두었다. 폴을 배워보니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요가와 병행을 하면 정말 아름다운 폴이 완성될 것 같았다.
나의 운동 욕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금은 테니스를 배우고 있다. 사람들마다 본인이 좋아하는 운동 장르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축구나 농구 같은 구기종목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스피드를 즐기는 러닝이나 라이딩을 좋아하고 또 누군가는 정적인 필라테스나 요가를 좋아한다. 나는 달리는 것과 도구를 이용해서 공을 맞히는 운동을 싫어했다. 달리는 것은 숨이 차서 죽을 것 같고, 공은 맞히기 너무 어려워서 싫었다. 심지어 난 왼쪽 발목을 다쳐서 인대가 심하게 끊어진 적도 있고 무릎의 반월상연골판이 찢어져서 절제 수술까지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뛰는 것 자체를 굉장히 피하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싫어하는 두 가지가 접목된 테니스를 하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크로스핏을 할 때 나는 함께 운동하는 무리 중에서 최약체였다. 몸을 많이 사려서일수도 있을 테지만 암튼 무리 중에서는 가장 체력도 스킬도 약했다. 그렇다고 해서 주눅이 들거나 남들과 비교하진 않았다. 나는 나의 속도로 즐기고 있었으니깐. 어쨌든 나는 나의 운동 수준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테니스 코치님으로부터 나의 체력회복 속도가 좋다고 칭찬받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테니스 레슨을 시작하신 분 중에서 백스텝이 되는 사람도 내가 유일하다고 하셨다. 기분이 좋았고 나의 크로스핏 경력은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아직도 급하게 방향을 바꾸고 빠르게 달려 나가서 공을 치는 동작은 어렵고 힘들지만, 테니스라는 운동 또한 나의 약한 부분을 강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기대감이 날 즐겁게 한다. 여러 운동들을 경험해 보니 새로운 길이 보인다.
사실 다른 운동들이 재미있어서 필라테스가 하기 싫었다. 그래서 소홀히 했고 집에 기구가 있음에도 고가의 장식품처럼 손도 대지 않았다. 이젠 필라테스와 함께 다른 운동을 접목하여 운동을 가르칠 수 있는 강사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다시 필라테스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욕심일 수도 있다. 하나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텐데 뭘 이렇게 이것저것 하냐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욕심 좀 부리면 어떤가? 내가 하고 싶은데. 그럼 해야지. 아직 나는 여전히 욕심을 내어 본다. 지금은 새로운 자격증에 도전 중이고 언젠가는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운동 크로스핏 코치 자격증에도 도전할 것이다. 크로스핏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말 무심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을 때 이어지는 시너지가 이렇게나 크고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것이고 계속 성장하는 것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살고 싶다.